성경 본문: 데살로니가전서 5장 16~18절 ; 설교자: 김은호 오륜교회 설립목사 @20260125
[서론: 하나님의 뜻을 안다는 것]
신앙생활을 하면서 우리가 가장 많이 하는 질문 중 하나는 바로 "나를 향한 하나님의 뜻이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하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신앙생활에서 가장 큰 어려움 또한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어렵다"는 사실입니다. 간절히 기도하고 말씀을 묵상해도 하나님의 뜻을 선명하게 헤아리기가 쉽지 않습니다.
왜 하나님의 뜻을 알기가 그토록 어려울까요?
첫째, 우리가 마주하는 선택이 단순히 '선과 악'의 문제가 아니라 '선과 더 좋은 선' 사이의 고민인 경우가 많기 때문입니다.
둘째, 때로는 침묵하시는 하나님으로 인해 답답함을 느끼기도 합니다.
셋째, 내 생각과 하나님의 뜻이 쉽게 구분되지 않아 혼란을 겪기도 합니다.
그런데 성경에는 우리가 그토록 찾아 헤매던 하나님의 뜻이 너무나도 분명하게 기록된 말씀이 있습니다. 바로 오늘 본문입니다. 이 말씀은 암송하기는 쉬우나 적용하기는 무척 부담스럽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는 이 명령을 '내 의지'로 수행하려 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도 바울은 이 세 가지 명령 뒤에 아주 중요한 열쇠를 붙여두었습니다. 바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En Christo)'입니다.
오늘 성경 본문을 '엔 크리스토(En Christo)'의 신비 속에 담긴 하나님의 뜻 세 가지로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항상 기뻐하라 — En Christo, 기쁨의 원천과 연합하라]
첫 번째 하나님의 뜻은 "항상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많은 성도가 이 말씀 앞에서 좌절합니다. "하나님, 세상 물정을 너무 모르시는 것 아닙니까? 지금 제 상황이 이 모양인데 어떻게 항상 기뻐합니까?"
그렇지만, 예수님은 세상이 결코 만만치 않음을 잘 아셨습니다.
우리를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다"(마 10:16)고 하셨고, 세상에서 너희가 환난을 당할 것이라고 확정적으로 말씀하셨습니다(요 16:33). 인생은 수고와 슬픔뿐이라는 사실도 알고 계셨습니다(시 90:10).
그럼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항상" 기뻐할 수 있을까요? 그 비결은 18절의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En Christo)"에 있습니다.
기쁨은 감정이 아니라 '관계의 상태'입니다. '엔 크리스토'는 포도나무 가지가 나무에 붙어 있듯 우리가 주님과 신비적으로 연합되었음을 의미합니다. 내 기쁨의 근거가 내 환경에 있다면 우리는 결코 항상 기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 기쁨의 근거가 '변함없으신 주님'께 있다면 상황은 달라집니다.
바울 서신에서 "En Christo"는 약 81~172회 등장합니다. 이는 성도들이 그리스도와 영적 연합(sphere of Christ)을 통해 구원받고 살아간다는 바울 신학의 핵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새로운 피조물이 되며, '하나님 나라' 대신에 '예수 안에서'를 사용해서 정치적 오해를 피하고 그리스도를 통한 하나님의 통치 영역을 나타내기도 했습니다. 또한 그리스도 안에서 생명의 성령의 법이 우리를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킨다는 구원로적 의미로도 많이 사용하였습니다. 물론 '교회 공동체'를 세울 때도 초점이 됩니다.
왜 '엔 크리스토'의 사람은 항상 기뻐할 수 있습니까?
- 내 안에 계신 주님이 세상보다 크시기 때문입니다.
(요일 4:4) '세상에 있는 자'인 사탄보다 내 안에 연합된 주님의 능력이 훨씬 크십니다. 창조주이신 주님이 내 인생의 주소(En Christo)가 되셨기에 우리는 승리를 확신하며 기뻐할 수 있습니다. - 주님으로부터 모든 능력이 공급되기 때문입니다.
(빌 4:13) 바울이 감옥에서도 기뻐할 수 있었던 이유는 그가 '주 안에(En Christo)' 있었기 때문입니다. 주님과 연합될 때, 우리는 어떤 형편에서도 자족할 수 있는 초자연적인 힘을 공급받습니다.
빌립보서 4장 13절("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은 아마 성경 전체에서 가장 사랑받으면서도, 동시에 가장 본래 의미와 다르게 사용되는 구절 중 하나일 것입니다.
이 구절은 '무한한 긍정'이나 '소원 성취'의 주문이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자족(Contentment)'에 관한 선언입니다.
1. 흔한 오해: "무엇이든 성취할 수 있는 마법의 열쇠"
많은 사람이 이 구절을 '성공을 위한 슬로건'으로 사용합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시면 내가 원하는 모든 목표(시험 합격, 사업 성공, 승진 등)를 반드시 이룰 수 있다"는 자기 계발적 신념으로 해석합니다. 이러한 오해는 맥락의 단절, 즉 앞뒤 문맥을 자르고 13절만 독립시켜서, '모든 것'을 '나의 야망과 소원'으로 치환해 버리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면 하나님을 수단화하여, 하나님을 내 꿈을 이루어주기 위한 '능력 공급처'로만 간주하는 경향이 생깁니다.
2. 바른 이해: "환경을 압도하는 자족의 능력"
이 구절의 핵심은 '할 수 있다'는 결과보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 있다는 상태와 '어떤 형편에서든지'라는 맥락에 있습니다.
① '모든 것'의 진짜 범위
13절 바로 앞인 12절에서 바울은 자신이 처했던 구체적인 상황들을 나열합니다.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
여기서 말하는 '모든 것'은 내가 하고 싶은 모든 일이 아니라, '나에게 닥친 모든 환경'을 의미합니다. 즉, 굶주림, 감옥에 갇힘, 비난받음, 혹은 반대로 아주 풍족함 등 그 어떤 외부적 조건도 포함됩니다.
② '능력'의 실체
여기서 주시는 능력은 환경을 내 뜻대로 바꾸는(예: 감옥 문을 부수고 나가는) 능력이 아닙니다. 오히려 어떤 환경 속에서도 그리스도 한 분만으로 만족하며, 그 환경에 매몰되지 않고 평안을 유지하며 견뎌내는 영적인 복원력을 의미합니다.
③ '자족'의 비결 (Self-Sufficiency vs. Christ-Sufficiency)
그리스 철학(스토아 학파)에서 말하는 자족은 '외부 도움 없이 나 스스로 만족하는 것'이지만, 바울이 말하는 자족은 '그리스도께서 내 안에 계시기에 그분으로 인해 충분한 것'입니다.
"주님 한 분만으로 난 만족해~~~~"
결국 빌립보서 4장 13절은 "하나님이 내가 원하는 대로 상황을 바꿔주시기 때문에 행복한 것이 아니라, 상황이 어떠하든지 상관없이 나를 붙드시는 주님 한 분만으로 나는 충분히 행복하며, 그 어떤 상황도 능히 통과해낼 수 있다"는 위대한 신앙의 고백입니다.
[둘째: 쉬지 말고 기도하라 — En Christo, 영적 호흡으로 주님께 거하라]
두 번째 뜻은 "쉬지 말고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이것은 24시간 입으로 소리 내어 기도하라는 뜻이 아니라, 우리의 영적 주소를 늘 '주님 안(En Christo)'에 두라는 뜻입니다. 기도는 주님과의 연합을 유지하는 영적 호흡입니다.
우리가 기도해야 하는 이유는 기도가 위로부터 임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을 우리 삶으로 끌어오는 통로이기 때문입니다. '엔 크리스토'의 삶을 실재가 되게 하는 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다"(막 9:29)고 하셨습니다. '이런 종류'는 인간의 힘으로는 절대 불가능한 영역을 의미합니다.
- 영적 전쟁: 심리 상담이나 인간의 수단으로는 더러운 귀신을 몰아낼 수 없습니다. 오직 기도하며 주님의 권세 안에 머물 때 사탄의 왕국이 깨집니다.
- 유혹과 시험: 우리 안의 죄성은 우리를 끊임없이 주님 밖으로 끌어내려 합니다. 그래서 주님은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마 26:41)고 하셨습니다. 기도할 때 우리는 비로소 '엔 크리스토'의 보호막 아래 머물게 됩니다.
- 하늘의 능력: 주님은 성령의 능력이 입혀질 때까지 기도하며 기다리라고 하셨습니다(눅 24:49). 기도하는 자만이 위로부터 오는 능력을 덧입어 풍랑을 딛고 물 위를 걷게 됩니다.
[셋째: 범사에 감사하라 — En Christo, 성령 충만으로 통치를 인정하라]
마지막 하나님의 뜻은 '범사', 즉 모든 상황과 환경 속에서 감사하는 것입니다(골 3:15).
마르틴 루터는 "마귀의 세계에는 감사가 없다"고 말했습니다. 불평은 주님 밖(Extra Christum)에 있을 때 나오지만, 감사는 오직 주님 안(En Christo)에 있을 때만 가능합니다. 어떻게 고난 중에도 감사할 수 있을까요?
비결은 '성령의 충만함'을 통해 주님의 통치를 온전히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에베소서 5장 18~20절을 보면 성령 충만의 결과로 '범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감사하는 것'이 나옵니다. 성령은 그리스도의 영입니다. 성령 충만하다는 것은 곧 '엔 크리스토'의 상태가 극대화됨을 의미합니다.
때로는 의지적인 결단이 필요합니다. '볼펜 물기 실험'처럼 억지로라도 웃음을 지을 때 뇌가 반응하듯, 우리가 주님의 선하심을 믿고 '엔 크리스토'의 확신으로 감사를 선포할 때 성령께서는 우리 마음을 감사의 기적으로 채워주십니다. 감사는 우리가 주님의 통치 아래 있다는 가장 강력한 증거입니다.
[결론: 하나님의 뜻을 따라 사는 인생의 비결, En Christo]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하나님의 뜻은 멀리 있지도, 복잡하지도 않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가 '엔 크리스토(En Christo)', 그리스도 예수 안에 거하는 것입니다.
주님과 연합되어 기뻐하십시오. 주님 안에 머물며 쉬지 말고 기도하십시오. 주님의 통치를 신뢰하며 범사에 감사하십시오.
물 위를 걷던 베드로가 주님을 바라볼 때는 풍랑을 이겼으나, 주님을 놓치고 환경을 바라볼 때 물속으로 빠져들었습니다. 우리의 시선이 주님께 고정되어 있을 때, 즉 우리가 '엔 크리스토'의 자리에 머물 때 우리는 세상이 감당치 못하는 '물 위를 걷는 자'가 됩니다.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우리를 향하신 하나님의 가장 선명한 뜻입니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의 존재의 주소를 늘 주님 안에 두십시오. 주님과 함께 물 위를 걷는 영광스러운 승리가 여러분 모두에게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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