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 본문: 여호수아 2:1~11 설교자: 주경훈 오륜교회 담임목사 @20260208
1. "누가 우리 편인가"라는 질문의 전환
우리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늘 승리를 갈망합니다. 운동 경기장에서 들리는 익숙한 응원 구호가 있지요. “싸워라, 이겨라, 이기는 편 우리 편!” 이 구호 안에는 냉정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싸움에서 중요한 것은 나의 실력보다 내가 어느 편에 속해 있느냐는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종종 하나님께 이렇게 기도하곤 합니다. “하나님, 제발 내 편이 되어 주세요. 이번 일에서 제가 승리하도록 제 뒤를 밀어주세요.”
오늘 본문은 우리의 이 기도를 뒤집으라고 말씀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주시길 구하기보다, 내가 온전히 하나님 편에 서 있는지를 점검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언제나 그분의 자리에 계시며, 우리가 그 안으로 들어갈 때 승리는 이미 보장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내 삶에 승리를 주시기를 기도하기보다, 내가 하나님 편에 서게 하시기를 기도하는 성도가 되길 소망합니다.
많은 성도들이 이렇게 기도합니다.
“하나님, 제 편이 되어 주세요. 이번 일만 이기게 해 주세요. 이번 시험만 붙게 해 주세요. 이번에만 도와주세요.”
그런데 성경은 정반대로 말합니다.
하나님이 내 편이 되어 달라고 구할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 편에 서야 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이미 우리 편이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변하지 않으십니다. 변해야 할 것은 나입니다.
2. 인간의 두려움이 만든 ‘비밀 정탐’
여호수아서 1장에서 하나님은 여호수아에게 "강하고 담대하라"고 거듭 말씀하셨습니다. 하지만 여호수아도 인간이었습니다. 여호수아 1장 11절에서 그는 사흘 안에 요단을 건너겠다고 선포했지만, 실제 기록을 보면 1주일이 훌쩍 넘게 걸립니다. 왜 지체되었을까요?
여호수아는 두려웠던 것입니다. 그래서 2장 1절을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 '몰래(헤레쉬)' 정탐꾼을 보냅니다. 40년 전 정탐의 비극을 기억했던 여호수아는 공동체 모르게 이 일을 진행하려 했습니다. 사실 이 정탐은 군사적으로 큰 필요가 없었습니다. 하나님이 이미 주시겠다고 약속하셨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자꾸만 인간적인 증거를 수집하게 만듭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엄습하는 두려움, 그것이 여호수아와 우리의 솔직한 모습입니다.
3. 실패한 정탐꾼, 그러나 예비된 은혜
그렇게 몰래 보내진 정탐꾼들의 실력은 어떠했습니까? 그들은 여리고성에 들어가자마자 발각됩니다. 40년 광야 생활을 한 그들의 말투와 행색은 여리고의 완벽한 방어 체계를 뚫기에 역부족이었습니다. 그들은 두 번째 성벽을 넘기도 전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라합의 집에 숨어들었습니다.
그들이 머문 라합의 집은 성벽 위에 있었습니다. 당시 성벽 사이에 사는 사람들은 사회의 주류가 아닌, 전쟁 시 가장 먼저 위험에 노출되는 '안전 사각지대'의 사람들이었습니다. 세상의 눈으로 보면 가장 비천하고 약한 곳이었지만, 하나님은 바로 그곳에 '하나님 편에 서기로 작정한 한 사람'을 예비해 두셨습니다.
정탐꾼들은 정보를 얻으러 갔지만, 오히려 그곳에서 라합의 신앙 고백을 듣고 '전도'를 당합니다.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수 2:11)
정탐꾼들은 자신들의 간담이 녹아 두려워 떨고 있었지만, 라합의 입술을 통해 선포되는 하나님의 위엄을 듣고 다시금 깨닫게 됩니다. "아, 이 전쟁은 정보의 문제가 아니라 하나님의 문제구나!"
“내가 너희를 숨겨준 이유는너희의 하나님이 진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놀라운 것은 여기서부터입니다.
정탐꾼들이 정보를 얻으러 왔는데, 오히려 라합에게서 하나님에 대한 정보를 얻습니다.
4. 모든 것을 건 라합의 결단
기생 라합은 단순히 이스라엘이라는 나라를 선택한 것이 아닙니다. 그녀는 여리고냐 이스라엘이냐의 정치적 선택을 한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냐 아니냐의 영적 선택을 한 것입니다.
그녀는 자신의 생명과 가족의 안위를 모두 걸고 하나님 편에 섰습니다. 홍해를 마르게 하시고 아모리 왕들을 전멸시키신 하나님의 소문을 들었을 때, 그녀는 그것을 단순한 뉴스로 듣지 않고 '나의 하나님'으로 영접하는 믿음으로 반응했습니다.
라합의 이 결단이 오늘 우리의 결단이 되기를 원합니다. 세상이 주는 안정감이라는 성벽 안에 머무는 것이 아니라, 비록 성벽 끝에 매달린 위태로운 삶일지라도 하나님 편에 서는 것을 기뻐하는 믿음 말입니다.
5. 우리는 하나님의 '포이에마(걸작품)'입니다
사도바울은 에베소서 2장 10절에서 우리를 '포이에마(Poiema)', 즉 하나님의 걸작품이라고 불렀습니다. 레오나르도 다빈치의 모나리자를 사람들이 지극정성으로 보호하듯, 하나님의 걸작품인 여러분은 하나님의 날개 아래 보호받고 있습니다.
여호수아는 훗날 인생의 마지막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직 나와 내 집은 여호와를 섬기겠노라" (수 24:15)
오늘 이 설교를 듣는 여러분께 권면합니다.
- 나의 실력과 상황에 매몰되지 마십시오.
- 하나님의 시선에 나의 시선을 담으십시오.
- 내가 사는 목적이 오직 내 삶을 통해 하나님이 드러나는 것이 되게 하십시오.
우리가 온전히 하나님 편에 서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실패마저도 라합의 만남처럼 놀라운 승리의 재료로 바꾸어 주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간, 세상의 어떤 소리보다 하나님의 약속을 붙들고 "나는 하나님 편입니다"라고 당당히 선포하는 모두가 되시길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함께 나눌 기도 제목:
- 내 뜻에 하나님을 맞추려 했던 교만을 회개하고, 내가 하나님 편에 서게 하소서.
- 두려움 때문에 인간적인 방법(정탐)에 의지하기보다, 주님의 약속을 온전히 신뢰하게 하소서.
- 라합처럼 나의 모든 것을 걸고 주님을 고백하는 믿음의 결단을 주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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