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 수 2:12~18, 21 설교자 - 주경훈 오륜교회 담임목사님 @20260215 주일예배 설교
그러므로 이제 청하노니 내가 너희를 선대 하였은즉 너희도 내 아버지의 집을 선대 하도록 여호와로 내게 맹세하고 내게 증표를 내라
그리고 나의 부모와 나의 남녀 형제와 그들에게 속한 모든 사람을 살려 주어 우리 목숨을 죽음에서 건져내라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의 이 일을 누설하지 아니하면 우리의 목숨으로 너희를 대신할 것이요 여호와께서 우리에게 이 땅을 주실 때에는 인자하고 진실하게 너희를 선대 하리라
라합이 그들을 창문에서 줄로 달아 내리니 그의 집이 성벽 위에 있으므로 그가 성벽 위에 거주하였음이라
라합이 그들에게 이르되 두렵건대 뒤쫓는 사람들이 너희와 마주칠까 하노니 너희는 산으로 가서 거기서 사흘 동안 숨어 있다가 뒤쫓는 자들이 돌아간 후에 너희의 길을 갈지니라
그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에게 서약하게 한 이 맹세에 대하여 우리가 허물이 없게 하리니
우리가 이 땅에 들어올 때에 우리를 달아 내린 창문에 이 붉은 줄을 매고 네 부모와 형제와 네 아버지의 가족을 다 네 집에 모으라...
라합이 이르되 너희의 말대로 할 것이라 하고 그들을 보내어 가게하고 붉은 줄을 창문에 매니라
서론: 멈춰버린 일상, 예고된 심판
서기 79년, 로마의 찬란한 번영을 구가하던 도시 폼페이는 단 30분 만에 화산재 아래로 영원히 잠겼습니다. 1930년대 발굴된 폼페이의 모습은 충격적이었습니다. 사람들은 빵을 굽고, 목욕을 하고, 대화를 나누던 그 일상의 모습 그대로 박제가 되어 있었습니다. 하늘을 뒤덮는 검은 구름과 진동하는 대지의 경고가 있었음에도, 그들은 눈앞의 안일함에 취해 다가올 멸망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오늘날 우리가 살아가는 이 세상은 어떻습니까? 어쩌면 우리는 여리고성보다 더 타락하고, 폼페이보다 더 위험한 '멸망의 도시' 한복판을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 세상의 화려함에 취해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이 위기의 시대에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구원의 주인공이 될 수 있을까요? 여기, 멸망이 예고된 여리고에서 전혀 다른 삶을 선택했던 한 여인, 라합의 삶을 통해 그 해답을 찾고자 합니다.
1. 말씀을 듣고 들은 말씀에 인생을 걸다
그녀가 정탐꾼들을 숨겨주며 고백한 내용에는 놀라운 믿음의 통찰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라합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셨다고 선언합니다.
라합은 그들이 믿고 있는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라합은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했습니다: "여호와께서 이 땅을 너희에게 주신 줄을 내가 아노라." 그녀는 미래의 일을 마치 일어난 사실처럼 확신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역사를 기억했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아모리 왕들을 멸하신 40년 동안의 사건을 그녀는 마음속에 새기고 있었습니다.
라합은 하나님의 존재를 고백했습니다: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는 위로는 하늘에서도 아래로는 땅에서도 하나님이시니라." (상천하지의 유일신 고백)
수 1:9하, 수 1:11상, 심히 두려워하고,, 간담이 녹나니, 마음이 녹았고, 정신을 잃었나니….. 라합은 이 모든 것을 ‘들어서’ 알고 있었습니다.
사실 여리고의 모든 사람이 이 소문을 들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두려워 떨며 마음이 녹아내리는 데서 그쳤습니다.
오직 라합만이 그 '들음'을 '행동'으로 옮겼습니다.
"믿음은 들음에서 나며 들음은 그리스도의 말씀으로 말미암았느니라" (로마서 10:17)
말씀을 듣는다는 것은 귀로 들을 뿐만 아니라 우리의 행동을 포함하는 것이다.
이것이 바로 '들음'의 태도입니다.
멸망의 도시에 살면서 우리는 내 안위라는 ‘우산’, 체면이라는 ‘우산’, 바쁘다는 핑계의 ‘우산’을 쓰고 하나님의 음성을 차단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진짜 듣는다는 것은 비를 맞더라도 우산을 접는 결단입니다. 내 상황이 어떠하든 그 말씀을 내 인생의 유일한 생명줄로 붙잡는 것, 그것이 라합이 가졌던 ‘들음’의 태도였습니다.
평양 칠곡교회 이야기를 모티브로 한 '신의 악단'이라는 영화를 보면 박교순이 "가짜로라도 찬양하면 진짜로 믿게" 되는 인물로 나옵니다. 억지로 붙든 말씀이 어느덧 나의 천성이 되고, 나를 살리는 생명줄이 됩니다. 억지로라도 말씀을 붙잡읍시다. 순종은 원래 힘든 것입니다. 그러나 순종하면 그 순종이 내 제2의 천성이 됩니다.
2.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 안에 거하라.
"창문에 붉은 줄을 매고, 절대로 그 집 밖으로 나가지 마라."
이 명령은 오늘날 우리에게 주시는 강력한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첫째, 가정에 붉은 줄을 매라
이는 출애굽 당시 문설주에 발랐던 유월(PassOver)절 어린 양의 피와 맥을 같이 합니다.
또한 '줄'을 뜻하는 히브리어 '티크바 (Tikvah)'는 놀랍게도 '소망'이라는 의미를 동시에 가집니다.
예레미야 29:11의 '소망' 역시 티크바입니다.
안전한 성이 우리를 보호하는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보혈이 우리의 소망이 됩니다.
둘째, 절대로 집 밖으로 나가지 마라
성벽 위에 지어진 라합의 집은 가장 먼저 무너질 것처럼 위태로워 보였을 것입니다. 인간적인 생각으로는 집 밖으로 뛰쳐나가는 것이 더 안전해 보였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구원은 오직 "그 집 안"에 머무는 자에게 약속되었습니다. 그들은 집이 안전해 보이지 않는 그 순간에 오직 하나님의 구원만 붙잡고 있었던 것입니다.
세상이 요동치고 환난의 바람이 불어올 때, 내 판단으로 복음 밖을 기웃거리지 마십시오.
하나님 나라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 세상에서 가장 똑똑하고 지혜로운 사람입니다.
주님의 보혈 아래 머무는 결단이 여러분과 여러분의 가족을 살릴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 안에 머무를 때 비로소 구원을 받게 됩니다.
하나님 나라에 대한 믿음이 있는 사람이 진짜 똑똑하고 준비성이 있는 사람입니다. 향후에 도래할 하나님 나라에 인생을 거는 사람이 가장 확실한 지혜의 사람이 됩니다.
멸망의 도시에서 피어난 거룩한 족보
라합의 순종은 본인 한 사람의 구원으로 끝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은 멸망의 도시에서 건져낸 그녀를 이스라엘의 가장 영광스러운 가문의 심장부에 심으셨습니다.
라합의 남편, 살몬(Salmon)은 유다 지파의 지도자 나손(Nahshon)의 아들이었습니다.
나손이 누구입니까? 광야 길에서 유다 지파를 이끌었던 족장이자, 성막 봉헌 때 가장 먼저 헌물을 드렸던 인물이며, 대제사장 아론의 처남이었습니다. 즉, 이스라엘에서 가장 고결하고 영향력 있는 가문의 장자 계열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여리고의 기생이었던 라합을, 이스라엘 최고의 명문가 자제인 살몬과 맺어주셨습니다. 이것이 복음의 파격적인 은혜입니다. 과거가 어떠했든, 보혈 안에 들어온 인생은 새로운 피조물이 되어 왕의 가문에 입성하게 됩니다.
라합과 살몬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이 바로 보아스입니다. 보아스가 훗날 이방 여인 룻을 맞이할 때 인자함(헤세드)을 베풀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어머니 라합이 이방인으로서 어떻게 이스라엘 공동체에 용납되고 사랑받았는지를 보고 자랐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라합 → 보아스 → 오벳 → 이새 → 다윗 왕 → … → 예수 그리스도로 라합이 매단 그 붉은 줄은 결국 다윗의 자손,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으로 이어지는 ‘생명의 족보’가 되었습니다. 그녀가 창문에 매단 것은 일시적인 피난처가 아니라, 인류를 구원할 메시아의 길을 예비한 거룩한 헌신이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가 살아가는 이 도시가 아무리 타락하고 소망이 없어 보여도 낙심하지 마십시오.
- 말씀을 들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에 여러분의 인생을 던지십시오.
- 보혈의 줄을 매십시오. 그리고 어떤 위기 속에서도 주님 품 안을 떠나지 마십시오.
세상이 흔들릴 때 끝까지 그 자리를 지키는 자를 통해, 하나님은 새로운 구원의 역사를 써 내려가실 것입니다. 이번 한 주, 여러분의 창가에 구원의 '붉은 줄'을 매고 승리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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