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요한복음 3장 1~8절
설교자 : 오륜교회 박상모 목사님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C. S. 루이스는 하나님께서 사람을 변화시키시는 일을 집을 고치는 과정에 비유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불편한 부분만 고쳐 주시기를 바랍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낡은 오두막을 조금 더 편안하게 만드는 데서 멈추지 않으십니다. 하나님 자신이 거하실 집을 우리 안에 세우기 원하십니다.
우리는 문제 해결을 원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새롭게 하기를 원하십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올 때, 내 삶이라는 소박한 오두막집(Cottage)의 고장 난 창문을 고치고 도배를 새로 하는 정도의 '리모델링'을 기대합니다. "하나님, 이 문제만 해결해 주십시오. 깨어진 내 상황만 조금 수리해 주십시오."
그러나 일단 하나님이 우리 삶에 개입하시면, 우리의 예상을 깨뜨리고 기존의 벽을 부수기 시작하십니다. 천장을 뚫고 기둥을 다시 세우십니다. 우리는 고통스러워 부르짖습니다. "하나님, 왜 내 삶을 흔드십니까? 저는 편안한 오두막이면 충분합니다!" 그때 주님은 우리에게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나는 너를 작은 오두막으로 남겨둘 생각이 없다. 내가 친히 들어와 거할 '영광스러운 궁전(Palace)'을 짓기 위해 지금 재창조를 하고 있는 것이다."
성도 여러분, 이것이 하나님과 우리 사이의 거룩한 동상이몽입니다. 우리는 겨우 이 땅의 문제 하나 해결받기를 기도하지만, 하나님은 그 개입을 통해 우리 삶 전체를 바꾸시는 영광스러운 계획을 이루어가십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니고데모가 바로 그런 사람이었습니다.

1. 밤에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며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그는 지식과 지위와 종교적 열심을 갖춘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마음에는 풀리지 않는 질문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누구신가?”
“나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 위해 무엇을 더 해야 하는가?”
요한복음 2장 후반부를 보면, 많은 사람이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믿었으나 주님은 그들에게 몸을 위탁하지 않으셨다고 기록합니다. 표적만 바라보는 신앙은 껍데기에 불과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3장 1절은 "그런데(Now)"라는 단어로 니고데모를 조명합니다.
니고데모는 바리새인이자 유대인의 지도자였습니다. 그 역시 표적을 보고 예수님을 찾아왔으나, 단순한 호기심을 넘어선 영혼의 허기를 느꼈습니다.
인생의 밤, 정직한 영적 갈망을 마주할 때 (요 3:1~3)
니고데모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가 왜 밤을 택했는지 본문은 분명히 말하지 않습니다. 사람들의 시선을 의식했을 수도 있고, 예수님과 조용히 대화하기 원했을 수도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밤에 왔다는 사실이 아니라, 자신의 어둠을 안고 예수님께 나아왔다는 사실입니다.
인생의 밤은 누구에게나 찾아옵니다. 앞이 보이지 않고, 믿음이 흔들리고, 기도해도 응답이 없는 것처럼 느껴지는 시간이 있습니다.
그러나 밤은 주님을 찾을 수 있는 시간이기도 합니다.
니고데모의 믿음은 완전하지 않았습니다. 그의 질문도 정리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는 주님께 나아왔습니다.
우리의 변화도 거기에서 시작됩니다.
모든 의심을 해결한 다음 주님께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의심과 두려움을 그대로 안고 주님께 나오는 것입니다.
2. 수리가 아니라 새 생명입니다
니고데모는 예수님이 행하신 표적을 언급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표적을 설명하지 않으시고 곧바로 말씀하셨습니다.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거듭나다’라는 말(아노센 Anothen)에는 ‘다시’라는 뜻과 ‘위로부터’라는 뜻이 함께 담겨 있습니다.
니고데모는 자신의 삶에 새로운 가르침 하나를 더하면 된다고 생각했을지 모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의 인생을 조금 고치는 것으로는 충분하지 않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위로부터 새 생명을 받아야 한다.”
구원은 인간이 노력하여 하나님께 올라가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은혜로 우리에게 찾아오시는 사건입니다.
기독교 신앙은 조금 더 착한 사람이 되는 도덕적 개선만을 뜻하지 않습니다. 낡은 인생에 종교적인 장식을 더하는 것도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를 새롭게 하시는 재창조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야 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깨끗하게 하시고, 우리 안에 새 마음과 새 영을 주셔야 한다는 뜻입니다.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영으로 난 것은 영이니.”여기서 육은 몸 자체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자신의 능력과 공로를 생명의 근원으로 삼는 삶을 말합니다.
영으로 산다는 것은 하나님을 생명의 근원으로 삼는 것입니다.
겉모습의 개종을 넘어 속사람의 회심으로 (요 3:4~6)
예배와 기도와 봉사는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것으로 자신을 증명하거나 하나님을 움직이려 한다면 신앙은 다시 자기중심적으로 변할 수 있습니다.
중요한 것은 종교적 행위의 많고 적음이 아니라, 내 삶의 주인이 누구인가 하는 것입니다.
거듭남은 새 옷을 입는 정도의 변화가 아닙니다. 새 생명을 얻는 사건입니다.
외적인 생활이 달라지는 것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그보다 먼저 삶의 주인이 바뀌어야 합니다.
내가 주인이던 삶에서 예수 그리스도께서 주인이 되셔야 합니다.
내 힘으로 인생을 고쳐 쓰려는 헛된 유혹을 버리고, 성령께서 부어주시는 새 생명을 얻으십시오.
3. 성령의 바람에 돛을 올려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
바람과 성령은 헬라어로 모두 ‘프뉴마(Pneuma)’라는 단어를 사용합니다.
바람은 눈에 보이지 않지만 그 흔적은 볼 수 있습니다. 나뭇잎이 흔들리고 구름이 움직이는 것을 통해 바람이 불고 있음을 압니다.
성령도 눈에 보이지 않지만 사람의 삶을 변화시키십니다.
자기 의를 자랑하던 사람이 은혜를 고백합니다.
미워하던 사람이 용서하기 시작합니다.
사람의 평가를 두려워하던 사람이 진리를 선택합니다.
자기 계획만 붙들던 사람이 하나님의 뜻을 묻기 시작합니다.
성령의 주도성 아래 산다는 것은 생각이나 계획을 포기하는 것이 아닙니다.
계획하되 하나님의 뜻 앞에서 수정받을 준비를 하는 것입니다.
결정하되 말씀의 기준에 자신을 복종시키는 것입니다.
성령의 바람에 돛을 올린다는 것은 거창한 일이 아닙니다.
잘못을 깨달았을 때 회개하는 것입니다.
사과해야 할 때 먼저 사과하는 것입니다.
용서하라는 말씀 앞에서 용서를 선택하는 것입니다.
손해를 보더라도 정직을 지키는 것입니다.
내 계획과 다른 길이 열릴 때 하나님의 뜻을 다시 묻는 것입니다.
우리가 돛을 올린다고 바람이 생기는 것은 아닙니다. 성령은 우리가 만들거나 통제할 수 있는 분이 아닙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말씀을 통해 우리를 부르실 때, 우리는 믿음으로 응답할 수 있습니다.
밤의 제자에서 낮의 제자로
니고데모의 삶에도 이런 변화가 나타났습니다.
처음 그는 밤에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러나, 요한복음 7장에서는 예수님을 성급하게 정죄해서는 안 된다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19장에서는 아리마대 요셉과 함께 예수님의 장례를 준비했습니다.
처음에는 밤에 숨어 찾아왔던 사람이 마침내 한낮에 담대히 나타나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섬겼습니다.
그의 변화가 한순간에 완성된 것은 아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조금씩 어둠에서 빛으로 나아갔습니다.
성령의 역사도 이와 같습니다.
때로는 작은 질문에서 시작됩니다.
말씀을 들을 때 마음이 찔리는 것으로 시작됩니다.
한 번의 회개와 한 걸음의 순종으로 시작됩니다.
그러나 성령께서 시작하신 변화는 한 사람의 삶의 방향을 바꾸어 놓습니다.
맺는말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인생의 한 부분만 고쳐 달라고 기도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말씀하십니다.
“네게 필요한 것은 수리가 아니라 새 생명이다.”
거듭남은 종교적인 장식을 더하는 일이 아닙니다.
성령으로 새롭게 태어나 예수 그리스도를 삶의 주인으로 모시는 것입니다.
지금도 우리 삶 속에 보이지 않는 성령의 바람은 불고 있습니다.
말씀을 통해 불어옵니다.
기도 가운데 불어옵니다.
회개와 용서와 순종의 자리로 우리를 부르고 있습니다.
바람이 불면 돛을 올려야 합니다.
회개의 바람이 불면 회개의 돛을 올리십시오.
용서의 바람이 불면 용서의 돛을 올리십시오.
순종의 바람이 불면 믿음의 돛을 올리십시오.
그리고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성령님, 제 삶의 겉모습만 고치지 마시고 제 마음을 새롭게 해 주십시오.
내가 쥐고 있던 인생의 핸들을 놓습니다. 내 힘으로 통제하려던 고집을 버립니다.
성령의 바람을 향해 온몸으로 믿음의 돛을 올려 그 흐름을 받아들입니다.
제가 주님을 제 계획의 조력자로 이용하지 않게 하시고, 예수 그리스도를 제 삶의 진정한 주인으로 모시게 해 주십시오.
성령께서 말씀하실 때 듣게 하시고, 부르실 때 믿음으로 돛을 올리게 해 주십시오.”
성령의 바람을 따라 어둠에서 빛으로, 두려움에서 믿음으로,
자기중심적인 삶에서 하나님 중심의 삶으로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성령의 주도성 아래 여러분의 삶을 내맡길 때, 내 힘으로 이룰 수 없었던 참된 감사와 기쁨이 회복될 것입니다.
모든 불안과 두려움은 사라지고, 위로부터 부어지는 거듭남의 은혜가 여러분의 삶에 가득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아멘.

'Jesus Christ > 주님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는 정말 예수님 복음을 믿고 있는가 (0) | 2026.07.31 |
|---|---|
| Prepare Empty Bowls - The Widow and the Oil (0) | 2026.07.29 |
| 창세기는 과학 교과서인가 (1) | 2026.07.26 |
|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은 무엇인가 (1) | 2026.07.26 |
| 예배는 얼굴을 향합니다 (0) | 2026.07.23 |
| 복음은 선포되는데, 왜 교회는 신뢰를 잃는가 (1) | 2026.07.22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