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19. Day 18. 오직 예수 (요 8:32)
강사: 정요한 집사 & 김예나 집사
정요한 집사 (47세)
- 현) 한정협(한국기독교탈북민정착지원협의회) 홍보대사
- 전) 김정일 전용악단 단장 겸 악장
-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음악원 졸업
김예나 집사 (40세)
- 평양음악대학 졸업(피아노), 박사원 졸업
- 이화여자대학교 음악대학원 피아노 석사 졸업
평양에서 서울로, 북한에서 우리 주님의 나라 대한민국으로 와서 예수 믿고 구원받고 성령으로 거듭난 나는 정요한 집사이다.
'정요한'은 2014년부터 대한민국에서 활동하면서 지은 가명이다.
나는 평양에서 태어났고 4살부터 바이올린을 배우기 시작하여 5살에 전국 어린이 방송 예술 경연에서 1등을 한 계기로 사회적 이목이 집중되었고 조선예술영화에 아역배우로 출연을 했는데, 김정일이 영화에 특별히 관심이 있어서 나는 어릴 때부터 김정일의 신임과 관심 속에서 성장하였다. 음악학원을 걸쳐 평양음대를 졸업하고 러시아 차이코프스키 음악원을 졸업한 후에, 김정일 전용악단장으로 또 평양음대 바이올린 교수로 일했고, 탈북 전에는 동유럽 교환교수로 해외에 나와 있었다. 북한에서 잘 먹고 잘 나가는 경우여서 탈북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다.
평양시 만경대의 봉수교회, 평양시 선교구역의 장충성당, 묘향산의 큰 절 등 굵직한 종교시설이 북한에도 몇 군데 있는데 이들은 전 세계에 북한도 신앙의 자유가 있다는 거짓 쇼를 하기 위한 가짜 교회, 가짜 성당, 가짜 절이다. 나는 어려서부터 세뇌교육을 받아서, 유학시절이나 해외 공연을 위해 교육대표단으로 외국에 나갔을 때마다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기회는 많았으나 단호히 거부했다. 심지어 독일에서도 십자가가 있는 교회 옆을 지나갈 때는 적극적으로 나서서 '교회 안에는 남조선 괴뢰들이 숨어서 북한 사람들을 유괴하고 납치한다. 가까이 가면 안 된다. 나라와 당을 배반한 탈북자들이 저 안에 있다.'고 내가 선동했다.
어느 날 대학에서 모임 끝무렵에 외국인 교수가 불쑥 '왜 그렇게 얼굴색이 안 좋냐며 교회에 한 번 가보라'는 것이었다. 그런데 그 때 그 시간만큼은 교회에 가보라는 얘기가 굉장히 크게 들리고 마음에 와 닿았다. 그래서 평생 비밀로 간직하고 있었던 '사실은 우리 할아버지가 기독교 장로였다.'는 말을 했더니 그 교수가 깜짝 놀라 일어서 내게 와 귓속말로 속삭였다. "이것은 분명한 하나님의 섭리고 역사이다. 교회에 꼭 가보세요"라고 했다.
그래서 그 다음 주일에 난생 처음 교회에 갔다. 택시에서 막상 내리는 순간 겁도 나고 의심도 생겼다. '이것이 어떤 함정이 아닐까?' 그런데 예배 전의 찬양이 밖으로 들려 나왔고 그 멜로디에 마음이 편안해져 용기를 내어 교회 안으로 들어갔다. 교회 구석에 앉아서 예배와 찬양 시간을 보내고 숙소까지 돌아왔는데 아무 정신이 없었다. 왜냐하면 평생 처음 그렇게 울어봤기 때문이다. 눈물과 콧물이 나도 모르게 철철 흘러내렸다.
다음 날 새벽 눈을 뜨니, 북한에서 어려서부터 받아온 세뇌교육 때문인지, 내 마음에 의심이 생겼다. '어쩌다 한 번 좋은 찬양, 좋은 설교를 할 때 내가 우연히 참석한 것이 아닐까....? 한 번 가봐서는 잘 모르겠다.' 이렇게 다음 주일, 그 다음 주일.... 계속 주일마다 교회에 갔다. 내 작은 가슴에 복음이 들어오니 걷잡을 수 없었다. 이 때 내 마음을 사로잡은 성경구절이 바로 오늘의 본문 (요 8:32 진리를 알지니 진리가 너희를 자유롭게 하리라)이다.
이렇게 2개월 반을 비밀리에 교회에 출석했는데 감시 통제가 엄격한 상황에서 결국은 내가 교회에 가는 일이 대사관에 탄로났다. 도저히 다실 돌이킬 수 없는, 돌아갈 수 없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기도 중에 '이럴바에 마음껏 하나님을 믿을 수 있는 환경에서 살아보자'는 마음이 들었다. (2009년 탈북. 비용은 고가의 바이올린을 저당잡혀 마련)
이러한 운명적 변화의 순간은 우연히 온 것이 아니었다. 역사적 뿌리가 있었다. 내가 4살 때 처음 바이올린을 시작할 때도 할아버지의 기도로 시작했고 5살 때도 레슨 받으러 다닐 때마다 할아버지 손을 잡고 다녔다. 레슨 전에는 복도의 긴의자에 나늘 앉히고 내 머리를 감싸고 기도해주시던 할아버지의 모습을 아직고 기억한다. 그 할아버지는 잘 나가는 집안이었지만 기독교인이었기에 결국 평양에서 추방당한 후 갖은 핍박을 받다가 소천하셨다. 어느 날은 우리 집이 있는 버스 종점의 한 정거장 앞서서 나를 억지로 내리게 하시더니 손을 잡고 한 정거장 거리를 걸어가시면서 (대부분의 종점이 그렇듯이 사람들의 왕래가 뜸한 지역이었기에) 막 소리내어 기도하기도 하셨다. 내가 오늘 이렇게 주님의 나라 대한민국에 와서 다니엘 기도회에서 이 시간을 함께 하나님의 은혜를 나눌 수 있는 것도 우리 할아버지의 기도 덕분이라고 굳게 믿는다.
바이올린 협주곡 '사향가(思鄕歌)'를 연주하려 한다.
이 곡은 북한의 전 인민적 성가이다. '불후의 고전적 명작'으로 알려져 있다. (북한에서는 김일성/김정일/김정은 작사 작곡의 곡이어야 불후의 명곡이 된다. ) 모두가 쓸 수 있는 우리말 어휘들 중에서 어떤 것들은 북한에서는 아무나 쓸 수 없는 것들이 몇가지 있다. 예를 들면, '어버이'라는 말이다. 남한에 와서 깜짝 놀랐다. 어머이는 김일성 3대에나 쓸 수 있는 말이기 때문이다. 이름도 마찬가지다. 김일성/김정일 등의 이름은 그 누구도 사용할 수 없다. 남한에 와서 깜짝 놀랐다. 아나운서 김정일이라는 분도 있었다. 김정은이 정권을 쥐자 마자 남녀노소 가릴 것 없이 북한에 있던 모든 김정은은 강제개명을 해야 했다. 사람이 먹고 사는 일은 어느 곳이나 비슷한 처지일 수 있다. 그러나 북한은 초보적인 말과 글에서부터 묶여 있는 현대판 노예국가요 철창 없는 감옥으로 전락했다. 625동란 때 서울이나 평양이나 폭격으로 모두 폐허가 되었지만, 북한과 남한의 순교자들, 우리 믿음의 조상들의 기도로 하나님의 복을 받아, 남한은 60~70년만에 선진국으로 발전했지만, 북한은 농사부터 시작해서 되는 것이 하나도 없다. 그러나 북한도 하나님의 약속의 땅, 소망의 땅이 될 것을 굳게 믿는다.
이 음악은 북한의 다부작 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에 수록된 곳이고 내가 군위 교향악단 솔리스트로서 협연해서 영화에 사용되었다. 내 애착이 큰 곡이었는데 '김일성 작사 작곡'으로 되어있지만 사실은 1916년도에 '정사인'이라고 하는 서울 사람이 작사 작곡을 한 것이다.
독주 파트는 내가 다 외우지만 반주악보가 없어서 곤란하던 중에, 북한을 위해 매주 중보기도하는 모임에 참석했는데 거기에서 우연히 탈북 피아니스트를 만났다. 그 자매는 북한에서 태어나 평양음악대학을 마치고 활동하다가 어머니와 탈북해서 서울의 이화여대 피아노 석사과정을 마친 분이었는데, 내가 사향가 얘기를 하니 자기가 그 피아노 반주를 다 외우고 있다는 것이었다. 깜짝 놀랐다.
이것은 기적과 같은 일이어서 그 자매에게 '완전히 꽂혔다' 그래서 온갖 구애 작업과 정성을 들인 끝에 결혼까지 성공(2011년 결혼)하게 된 내 아내 '김예나' 집사를 소개한다. 참 좋으신 하나님은 이렇게 사랑도 맺어주셨다. 바이올리니스트에게 환상의 짝꿍은 피아니스트이다.
(아내는 일곱 살 때부터 피아노를 연주했다. 어릴 적 밥상머리에서 가족들이 숟가락을 들 때 어머니 혼자 멍하게 허공을 바라보는 모습에 의아해했다. 어머니는 지하교인이었다. 아침에 피아노 연습을 할 때면 약음기(弱音器)를 끼우고 찬송가부터 치게 했다. 아내 역시 평양음대에서 피아노를 전공했다. 목숨 걸고 얼어붙은 압록강을 뛰어 건널 때 아내가 품에 지닌 것은 악보책 한 권뿐. 함께 탈북한 장모님은 "그때 멍 때렸던 게 식사기도였다"고 털어놨다.)
우리 장모님 집안도 순교자 목사님 집안이다. 장모님(최정선, 남한에서 리얼 스토리 1인 연극 '빛으로의 긴 여로'를 공연)은 북한의 유명한 연극배우이기도 했지만 지하교회 교인이기도 했다. 외국에 다녀올 때마다 목숨 걸고 성경을 들여가 지하 교회에 배포를 했다. 아내가 어려서 피아노 연습을 할 때도 매번 찬송가를 한곡씩 치고 원래의 피아노 연습에 들어가도록 하셨다. 피아노 안에는 찬송가 책을 감쳐 두셨다. 역사의 주관자이신 하나님이 그 목사님의 옛 기도를 들으셔서 이 모녀를 대한민국에 오게 하시고 기독교 장로의 손자이지만 홀로 넘어온 나를 믿음의 반려자로, 축복의 가정으로 굳게 맺어 주신 것으로 믿는다.
사향가의 가사는 이렇다.
----+---
내 고향을 떠나올 때
나의 어머니 문앞에서 눈물 흘리며
잘 다녀오라 하시던 말씀
아-... 귀에 쟁쟁해
우리 집에서 멀지 않게 조금 나가면
작은 시내 돌돌 흐르고
어린 동생들 뛰노는 모양
아-... 눈에 삼삼해
아-... 아-...
꿈결에도 잊지못할 내 고향이여
---+---
고향을 그리워하는 이 노래의 첫머리는 역시 어머니로 시작한다.
우리 모두에게 자기를 낳아준 어머니는 오직 한 분이다.
우리의 구원자도 오직 예수 한 분이심을 굳게 믿는다.
이제는 사라사테의 찌고이네르바이젠을 연주하겠다.
카네기홀이나 예술의 전당에서도 듣기 힘든 연주이다.^^
김일성 김정일이 숱한 돈을 들여 애지 중지 키워서 이렇게 주님의 자녀들이며 제자들인 여러분 앞에 하나님이 강권적으로 세우셨음을 굳게 믿는다.
나라와 민족을 위한 이 은혜의 자리에서 간곡히 부탁을 드린다. 기도제목 3가지이다.
첫째, 지금 북한에서 언제 붙잡혀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도 오직 주님만 경배하고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하는 북한의 지하교회 교인들을 위해 많은 기도를 부탁한다.
둘째, 지금 지구상에 하나 밖에 남아 있지 않은, 이 삼천리 아름다운 금수강산의 분단의 비극이 더 이상 후대에게 넘어가지 않고 하루 빨리 복음으로 평화적으로 하나님의 방법대로 통일시켜 달라고 기도를 부탁한다.
셋째, 2000년대 들어서 수많은 탈북민들이 남한으로 내려 왔다. 남한에서 잘 먹고 잘 사는 것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앞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신갑주를 입게 해달라고 기도 부탁한다. 영적으로 탈북민을 끌어안고 기도해주는 것이 작은 통일이라고 굳게 믿는다.
통일의 날이 멀지 않았다.
대한민국에 와서 가장 부러운 것은 '가는 곳마다 예배하고 찬양하고 기도할 수 있는 교회당들이 정말 많다는 것이다.' 북한에 38,000개의 김일성 동상의 우상으로 서 있는 반면 지하로 들어간 우리 교회들이 어서 밖으로 나와서 함께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는 그 날이 오도록 기도 부탁한다.
내가 대한민국에 와서 잘 한 일 두 가지가 있다.
첫째, 한정지협(한국 기독교 탈북민 정착 지원 협의회)의 홍보대사로 5년째 사역을 하고 있는 것,
둘째, 북한 어린이 영혼 구원을 위해, 복음 통일의 주인공들인 북한 어린이 컴패션 사역을 4년째 함께 하고 있는 것이다. 여러분들의 많은 기도와 협조를 부탁한다.
마지막 연주곡은 복음성가 '사명'이다. 요 3:16 말씀과 너무 일치가 되어서 편곡을 했다.
오늘 간증의 마무리는 성경 말씀으로 하려 한다.
(시편 57:7~8 하나님이여 내 마음이 확정되었고 내 마음이 확정되었사오니 내가 노래하고 내가 찬송하리이다
내 영광아 깰지어다 비파야, 수금아, 깰지어다 내가 새벽을 깨우리로다)
나의 힘이 되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적용기도 (김은호 목사 인도)
할렐루야! 아무데서나 들을 수 없는 귀한 연주를 집사님 내외를 통해 허락해주셔서 깊은 감동을 받았다.
감동 속에서 두 가지 생각을 했다.
첫째, 저 북한 땅에도 남아 있는 믿음의 그루터기가 있다.
둘째, 우리가 하나님을 찬양하고 예배할 수 있는 은혜에 감사하다.
사실 정요한 집사님은 북한에 가족들이 있고 그들의 생사를 알 수 없어서 은둔생활을 해야 하는데, 하나님이 주신 달란트를 가지고 복음을 전하기 위해 자신의 얼굴을 숨기지 않고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사명을 감당하고 있다.
하나님께 가까이 가는 것이 복이고 멀어지는 것이 저주다.
신앙생활을 오래 했지만 하나님께로 가까이 나아가지 못하는 요인들이 있다.
그것은 과거의 아픔, 과거의 상처, 쓴뿌리들이다.
사탄은 그것을 이용한다.
사탄은 과거지향적이다. 우리로 과거에 매이게 한다.
그러나 하나님은 미래지향적이다.
(렘 29:1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
(사 43:18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이전 일은 이미 지나갔다. 과거의 그 쓴뿌리와 상처를 끊어내야 한다. 그 부정적 이미지를, 수치를, 지워버리고 싶은 과거가 쌓이지 않도록 끊어내야 한다.
우리 안에 있는 아픔과 상처들을 주님께 올려드리고,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정결함을 받고, 예수 이름으로 끊어버리고, 하나님의 생명과 사랑과 빛으로 채울 수 있기를 바란다.
** 장모님인 최정선 님 관련 내용 추가
최정선은 1943년 황해도 안악군 초정리에서 농사를 짓던 부친과 기독교 신앙이 깊었던 모친과의 8남매 중 막내딸로 태어났다. 그녀는 동족상잔의 비극인 6.25 전쟁을 겪으며 행복한 유년기의 생활을 빼앗기고 고통을 받았지만 최정선과 그녀의 가족들은 전쟁의 아픔을 이겨낸다. 그리고 그녀는 개성에서 학창시절을 보내면서 예술에 눈을 뜨게 된다.
그 후 최정선은 조선의 제 1대 스타 무용가 최승희의 무용오디션에서 무용 실력을 인정받았고 평양무용대학에도 합격했지만 ‘무대 위에서 인간의 삶을 감동적으로 재현하는 연극이야말로 자신이 진정으로 하고 싶었던 예술이며 무용을 익힌 것이 연기에 큰 도움이 될 것’이라 판단, 개성 예술전문학교를 거쳐 평양 연극영화대학을 졸업한 후 남포 연극단에서 배우의 길을 걷는다.
주요 출연작으로 ‘지평선(탄실 역)’, ‘연풍호(남순 역)’, ‘고향의 봄(탄실모 역)’, ‘불새(영옥 역)’, ‘대하는 흐른다(마영기 어머니 역)’, ‘성황당(복순 역)’외 다수가 있으며 예술인으로 큰 명성을 쌓았다.
기독교가정 출신이라 북한식 표현으로 ‘토대’가 나빴던 한 여배우가 북한 최고의 주역배우로 황금시절을 구가하던 중 종교탄압으로 삶의 롤러코스트를 타게 되고, 그녀가 가진 종교적 신앙의 여정을 통해 현실의 고통과 시련을 극복해 가는 과정들을 남한에서 연극을 통해 펼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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