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19. Day 20.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고린도후서 12:9)
강사: 최려나 성도
현) 위드어스 (청년 화상 경험자 모임) 공동 대표
이화여자대학교 일반대학원 사회복지학 석사 (예정)
오늘 나는 내 삶에 역사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 나누고자 한다.
중국(지린성)에서 태어난 나(재중국동포, 조선족)는 초등학교 4학년 11살 때 (2003년 7월 31일) 가스폭발사고로 전신 95%에 3도 화상을 입었다. 사고 당시 집에는 엄마(당시 37세)와 나, 단 둘이 있었고(9살 때 부모님 이혼) 엄마의 비염으로 인해 밤새 가스가 누출된 것을 모르고 가스불을 켰다가 폭발한 것이다. 나는 주변 이웃들의 도움으로 병원(연변병원)으로 이송되었으나 그 때부터 상상할 수도 없는 고통의 시간이 시작되었다.
전신 95%의 3도 화상이란 온 몸에 다치지 않은 곳이 5% 밖에 없다는 뜻이며 살아날 가망이 5% 밖에 안된다는 것이 어느 의사선생님의 해석이었다. 3도 화상이란 피부를 구성하고 있는 표피, 진피, 피하지방층 모두가 손상되어 그 손상된 피부를 제거하고 그 위에 새로운 좋은 피부를 이식시켜야 되는 상황이다.
아무도 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하지 않았고, 살아도 사는 게 아닐 것이라는 말을 가족들은 들어야 했다. 그 때까지만 해도 화상이 무엇인지 모르던 우리 가족들은 내가 수술을 받고 또 치료를 받으면 완쾌가 되는 줄만 알았다. 그런데 시간이 지날수록 화상입은 피부의 특성상 피부는 수축이 되고 변형이 되어 갔다. 나는 어린이였기 때문에 시간이 흐를수록 뼈는 성장하는데 피부는 수축이 되다보니 몸에 변형이 오기 시작했다. 결국 나는 앉거나 설 수도 없이 24시간을 누워서 지내야만 했다. 처음에는 내게 일어나고 있는 그 일들이 한 순간의 악몽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것은 절대 피할 수 없는 현실이었다.
학교가 아닌 병원에서, 매일 매일 극심한 고통속에서 치료를 받아야 했고, 모든 사람들은 살 수 없을 것이라고 했지만 그 속에서도 나는 살아났다. 모든 의료진이 포기한 나였지만 하나님은 나를 살리셨다. 모두가 기적이라고 했다.
수술을 한 번 받고 나면 체력이 떨어지므로 계속 수술을 받을 수도 없었다. 치료받은 피부도 쉬는 시간이 필요했다. 그래서 일정 기간 집에서 요양하고 다시 치료 받는 과정들을 반복했다. 집에 갔더니 거울이 하나도 없었다. 걸어 놓은 거울은 치워졌고 뗄 수 없는 거울 위에는 종이가 붙여져 있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에 내가 충격을 받을까봐 취해진 조치였다. 그래서 나도 궁금해도 참기로 했다. 그러나 완벽한 차단은 어려웠다. 식사할 때 숟가락에 내 모습이 비치고, 엘리베이터를 타면 옆면에 반사가 되어 어렴풋이 내 모습이 보였다. 그 내 모습은 빨갛고 상처 투성이로 정말 이상했다. 내가 잘못 본 것이라고 스스로의 모습을 지우려고 많이 노력했다. 그러나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은, 이제 나는 예전의 내 모습으로는 돌아갈 수 없다는 것이었다.
그렇게 매일 매일 어렵게 치료를 이어가고 있을 때, 치료비도 떨어져 희망을 잃어가고 있었는데, 어느 한인교회 장로님이 도와주고 싶다는 고마운 연락을 주셨다. 하나님은 놀라운 분이셨다. 나에 대한 인터넷 기사 한 줄http://news.naver.com/main/read.nhn?mode=LSD&mid=sec&sid1=001&oid=001&aid=0000609359은 흘려 보내기 십상인데, 하나님께서 그 장로님께 '저 아이를 찾아가 보라'는 마음을 주셨다고 했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뒤에서 묵묵히 응원해주고 계시다. 그 분께 처음 하나님을 소개 받았는데, 성경책을 선물로 주시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아주 많이 사랑하신다고 말씀해 주셨다.
그러나 그 말씀을 듣는 순간 너무 화가 났다. 이 많고 많은 사람 중에 왜 하필 나여야 하는가? 또 하필이면 왜 화상이어야 했는가? 내가 무슨 큰 잘못을 했다고 나와 내 가족에게 이런 힘든 시간을 주시는가? 그것이 만약 하나님의 사랑이라면 나는 그 사랑을 받지 않겠다. 많이 원망스러웠다.
그래도 선물로 주신 책이니 예의상 펼쳐봤으나 창세기 1장 1절부터 잘 이해되지 않았다. 이해도 못하면서 문자적으로 한 장을 읽기까지 한 달 가량 걸렸다. 그렇게 성경책을 마주 했고 나는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
전라남도 광주의 한 성형외과 (전남대학교병원 건너편 '서현메카성형외과') 원장님이 치료해주시겠다는 연락을 주셨다. (2004년) 당시 나는 겨우 휠체어로만 이동할 수 있었기에 언제 또 다시 위험한 상황이 될 지 몰랐다. 나를 낫게 하겠다는 일념으로 할아버지(최병권)와 할머니는 한국행 비행기를 탔다. 나는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나를 살리셨다고 생각한다. 두 분 모두 직장에서 은퇴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내 사고가 났고 나로 인해 두 분은 쉬지 못하고 많은 수고를 하셔야 했다. 치료 과정의 수 많은 고비마다 언제나 내 곁을 지켜 주셨다. 지금도 두 분과 자주 영상통화를 하며 감사한 마음으로 살아가고 있다.
전남 광주에서 1년 동안 무상으로 치료를 받았다. 신자였던 원장님은 우리 가족의 1년 생활비도 책임져 주셨고 중국 출장 때마다 내게 먹고 싶은 것이 있는 지 물어보시고 사다주시곤 했다. 하나님은 아무 대가 없이 베푸는 무조건적인 하나님의 사랑을 그 원장님을 통해 보여 주셨다. 비록 치료 과정은 고통스러웠지만 외롭지는 않았다. 왜냐하면 세계 각국에서 응원의 메시지를 받았고 이름도 얼굴도 모르는 많은 분들이 찾아오셔서 기도를 해주셨다.
기억에 남는 장면이 있다. 눈 주위에 수축이 와서 다시 이식수술을 한 후에 얼굴 전체를 붕대로 감고 있던 때였는데, 교회 청년부 오빠와 언니들이 찾아와 '당신은 사랑받기 위해 태어난 사람~' 찬양도 불러 주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생일 축하 노래가 들리고 촛불이 켜진 내 생일 축하 케익과 사람들이 축하해 주는 그 풍경을 자세히 설명해 주었다. 감사하고 기뻐서 아무도 볼 수 없는 그 휘감긴 붕대 아래서 나는 펑펑 울었다. 우는 것은 피부에도 좋지 않아서 금기 사항이었지만 감사와 기쁨을 참지 못했다.
(화상 치료는 1회성에 그치는 치료가 아니라 지속적으로 해줘야 하는 치료에요. 평소에도 보습제를 자주 바르고 운동도 하면서 케어를 해줘야 하고, 피부가 당긴다는 느낌이 들거나 상처가 생기면 수술을 받아야 하고요. 사실 피부가 많이 남아 있으면 그걸 떼어서 피부이식을 하면 상처가 예쁘게 아무는데 저는 피부가 많이 없어서 그게 좀 힘들어요. 보통 2주면 수술한 부위가 아물지만, 움직임이 많은 부위는 회복이 좀 느린 편입니다.
수술을 하거나 치료를 받을 때는 공부를 할 수가 없습니다. 눈이나 입 부분에 상처가 생기면 얼굴을 붕대로 감고 있어야 하기 때문에 눈을 뜰 수가 없고, 발에 상처가 생기면 걸을 수 없기 때문에 병원에 누워만 있어야 했거든요. 그래서 공부는 퇴원을 하고 난 이후에야 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알게 되며 내 시선이 원망으로부터 조금씩 하나님께로 옮겨지기 시작했다. 하나님은 절망 속에서도 항상 최선의 방식으로 치료를 해주고 계셨다. 치료비 등 여러 문제를 열어 주셨다.
치료 목적이 아닌 최초의 미용 목적의 눈썹 문신을 한 후 처음으로 내 얼굴 전체를 거울로 보게 되었는데, 내 입에서 튀어나온 말은 '생각보다 괜찮네'였다. 가장 심한 화상을 입은 다리보다는 얼굴이 상대적으로 나았기 때문이기도 했다. 아뭏든 여러 해만에 거울을 보게 되자 늘 거울을 가까이에 두었다. 낯선 내 모습과 나 자신부터 친해지려고 노력했다.
한국에서의 1년간의 치료를 통해 휠체어 없이도 걸을 수 있을 정도로 회복된 후에 중국의 집으로 돌아갔다.
(최려나 성도는 걷기까지만 2년이 걸릴 정도로 크게 다친 것이다.)
초등학교 4학년 이후 끊어진 친구들의 소식이 궁금했다. 연락처는 있었지만 연락을 할 용기가 없었다. 누워있을 때는 밖에서 걷는 것이 소원이었지만 막상 걸을 수 있게 되니 사람들 사이에서 그 낯선 시선을 감내하며 나가서 걸어다니기가 두려웠기에 집안에 박혀 살았다. 마침내 용기를 내어 중학생이 된 친구들에게 연락을 했는데 그 친구들이 집에 찾아 와서 펑펑 울며 반가워했다. 친구들은 나를 화상입은 최려나가 아니라 친구로서 대해주었다. 책을 통해서만 알던 '지선아 사랑해'의 주인공 이지선 자매도 직접 만나게 되었다. 예쁜 미소와 당당함으로 살아가고 있는 지선 언니는 내게 큰 위로와 멘토가 되었다. 이와 같이 여러 좋은 사람들과의 만남을 통해 나는 비뚤어지지 않고 곧은 시선을 하나님께 향할 수 있게 되었다.
10년 동안 치료에만 매달리다 보니 친구들은 대학생이 되었는데 나는 여전히 초등학교 4학년에 머물러 있었다. 나도 대학에 들어가고 싶어서 중국에서 공부를 시작하여 중학교 과정까지의 졸업장을 받고 한국에서 고등학교 검정고시를 준비하게 되었다. 국영수를 포함하여 총 8과목을 교회 언니 오빠들과 선생님들의 도움으로 공부를 해서 검정고시 합격 후 2014년에 이화여대 영어영문학과에 입학하게 되었다.(이화여대 14학번)
늘 엄마가 어떻게 되었는지 궁금했지만 엄마의 불찰로 일어난 사고였기에 할아버지 할머니께 죄송한 마음에 묻지 못하다가 내 사고에 대한 인터넷 기사에서 엄마는 나를 구하고 3일 만에 돌아가셨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아마도 속으로는 예상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기도 하고 엄마는 내가 겪은 그 힘든 시간을 겪지 않아서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어서, 조금은 슬펐지만 울지는 않았다.
그러나 1년이 가고 2년이 가고 시간이 흐를수록 엄마 생각에 주체할 수 없는 눈물이 흘렀다. 사람들은 엄마이기에 그 불길 속에서 딸의 손을 놓지 않고 나왔다고 했다. 내가 이화여대에 다니게 되었는데 우리 엄마의 이름이 '이화'다. (성이 이씨, 이름이 화) 그래서 학교 안에서 늘 엄마와 함께 하는 것 같았고 열심히 지냈다.
혼자 시작하는 유학생활이 걱정도 되었지만 설렘이 더 컸다. 전공책을 들고 캠퍼스를 걷고 싶었고 기숙사에서 친구들과 야식도 시켜 먹고 수다도 떨었다. 매년 화상 입은 어린이들과 함께 하는 캠프에 멘토로서 참여하기도 했다. 어린 나이에 화상을 입은 친구들은 누군가의 응원과 지지가 꼭 필요하다. 내가 겪은 일을 그들과 나누었는데 도움을 받기 보다는 오히려 내게 도움이 되는 일이었다. 누군가의 인생을 변화시키려는 멘토가 아니라 그냥 동일한 경험을 한 언니 누나가 내민 손이, 그런 공감이 아이들에게는 힘이 되기를 바랬다.
2016년 가을에는 미국에서 전세계 화상 환장들이 한 자리에 모이는 피닉스(불사조. 불 속에서 살아난 화상환자들의 모임) 소사이어티라는 학회에 참여했는데, 그 곳에는 나보다 훨씬 심한 상태의 분들도 많았다. 그들은 스스로를 화상환자가 아니라 화상생존자라고 불렀다. 심지어 자기의 상처를 자랑스러워하기 까지 했다. 과거에는 환자였지만 그 상처를 이겨낸 지금은 생존자인 것이 맞다고 생각한다. 화상생존자 또는 화상경험자라는 표현이 가슴에 와 닿았다.
또 그들은 그들의 흉터를 부끄러워하지 않고 당당하게 드러내 놓고 다니고 있었다. 화상으로 인해 한쪽 다리를 절단한 여성분이 있었는데, 자연스럽게 보이려고 바지를 입고 자연스러워 보이려고 노력을 했을텐데, 그분은 미니스커트를 입고 무대에 올라와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었다. 진정 자신을 사랑하는 사람에게서만 보일 수 있는 빛으로 빛났다.
수건 돌리기 같은 게임을 하는데 자신에게 위로를 준 사람, 용기를 준 사람, 사랑을 베푼 사람을 터치하는 것과 같은 게임이었다. 게임을 마치고 나니 모두 눈이 젖어 있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위로와 용기와 사랑의 존재가 된 것이었다. 마치 하나님의 자녀들이 하나된 것처럼....
그래서 한국에 돌아오자마자 바로 늘 쓰고 있던 모자를 벗었다. 내게는 큰 용기가 필요한 일이었지만 아무도 인식하지 못했다. 모두 나를 있는 그대로 봐주고 있었다는 사실에 기뻤다.
한국에 돌아와 우리가 할 수 있는 일들을 찾기 시작해서 'With Us (위드어스)'라는 청년 화상자 경험 모임을 만들게 되었고 지금까지 세 차례의 인식개선 캠페인을 벌였다. 많은 분들이 함께 해주었다. 내가 공동대표로 있다.
위드어스에서는 우리 흉터를 사진으로 찍어 전시하는 캠페인도 최근에는 했다.
화상 경험자의 어려움은 우리만 겪고 있다는 외로움이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은 그 모든 아픔을 몸소 겪으시고 이해하시는 분이시기에 큰 위로가 되었다.
전신 95%의 3도 화상으로 16년 동안 40여차례 전신마취 수술을 받고 병원생화을 하던 지난 생활은 결코 쉽지 않았다. 그러나 그 사고를 통해 하나님을 만난 것을 늘 감사하며 살고 있다.
예전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다는 생각을 전혀 하지 않은 것은 아닐지라도 지금 내게 주신 은혜를 감사하며 살고 있다. 사도 바울도 자신의 몸에 박혀 있는 가시를 빼내달라고 주님께 기도했지만 하나님은 허락하지 않으셨고 바울에게 더 필요한 다른 것을 주셨다. 우리에게 있어 가시는 비록 우리가 원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우리에게 '필요'하기에 하나님께서 그대로 두시는 경우가 있다. 왜냐하면 우리는 평안할 때가 아니라 가시에 찔렸을 때 하나님을 찾기 때문이다. 이제는 나만 위해 살지 않고 다른 사람을 위해서도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4년간의 대학생활을 잘 마치고 졸업식을 하게 되었다. 내 인생의 첫 졸업식이었기에 매우 의미깊은 날이었다. 꼭 갖고 싶었던 '졸업앨범'도 받았다. 지금은 이화여대 대학원에서 공부를 마치고 졸업까지는 논문을 남겨 놓고 있다.
하나님을 만난 이후 생각이 바뀌었다. 예고 없이 찾아온 불행이 오히려 내게 행운이 되었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예수님을 몰랐다면 나는 아마도 헛된 삶을 살고 있었을 것 같다. 그러나 사고로 인해, 또 하나님이 내게 베푸신 사랑을 통해 내 시선이 하나님의 시선으로 바뀌면서 고난을 축복이라고 고백하게 되었다. 유한한 것이 아닌 영원한 삶을 바라보게 된 것이 축복이라고 생각한다. 누구에게나 고난이 있지만 고난을 이기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과 함께 하는 것이다. 앞으로 또 다른 수술과 힘든 일들이 닥칠 수도 있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시기에 더 이상 두려움은 없다. 하나님은 오늘도 내일도 기적을 행하시는 분이시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바울의 기도를 거절하시면서 (고후 12:9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이는 내 능력이 약한 데서 온전하여짐이라 하신지라. 그러므로 도리어 크게 기뻐함으로 나의 여러 약한 것들에 대하여 자랑하리니 이는 그리스도의 능력이 내게 머물게 하려 함이라) 가시로 인해서 무조건 염려하지는 말라고 하신다. 그리고 바울은 가시를 심지어 자랑하겠다고 한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능력이 그에게 머물게 하기 위해서라고 한다.
여기서 '머문다'는 것은 출애굽기에서 하나님의 성막이 세워진 후 하나님의 임재가 이스라엘 중에 머물렀을 때 사용된 단어다. 우리는 연약한 존재이지만 하나님의 능력이 우리 위에 장막을 치고 머물러 계신다는 것이다. 바울은 이렇게 크신 존재가 나를 버리지 않으시고 나를 이해하시고 나를 사랑하신다는 것을 깨닫는다. 우리들에게 있는 어떤 약함이나 결핍이나 가시도 우리를 하나님께서 계획하신 복되고 보람있는 인생을 이루는데서 장애물이 될 수 없다.
나는 화상으로 인해 하나님의 사랑을 몸으로 체험하면서 하나님이 내게 해주시는 것을 신뢔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 자체를 신뢰하는 마음이 생겼다. 참된 믿음은 내 화상을 낫게 해주는 하나님만 사랑하는 것이 아니다. 과거의 나는 '내일 아침 눈을 뜨면 흉터 하나 없는 과거의 나로 돌아가게 해주시기를' 기도했다. 그러나 왜 다 나아야만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고 하나님이 전능하시다고 생각해야 하는가?
하루 아침에 다 낫는 것이 기적일 수 있다. 그러나 미처 다 낫지 않고 살아가는 게 더 기적이다. (고후 12:10 내가 그리스도를 위하여 약한 것들과 능욕과 궁핍과 박해와 곤고를 기뻐하노니 이는 내가 약한 그 때에 강함이라) 고통의 가시를 품고도 기뻐하며 하나님의 위대한 역사에 사용된 바울을 보며, 내게 주신 가시를 품고 주님의 복된 사명을 이루시길 기도한다.
오로지 주님만을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의 삶에서 능력을 경험하게 하신다. 우리가 약한 존재에서 강한 존재가 될 수 있는 것이 아니고, 우리는 나약한 존재이고 주님만이 강한 존재라는 얘기다. 우리는 주님과 함께 할 때에만 강해진다. 주님만 의지할 때 하나님은 우리 삶에서 하나님의 능력을 경험하게 하신다. 약할 때 우리를 위로하시고, 낙심할 때 용기를 주시며 불가능을 가능하게 하신다. 이 믿음이 우리 모두에게 함께 하시길 기도드린다. 감사합니다.
□ 결어 및 기도
- 최려나 성도는 전신 95%에 3도 화상을 입고, 40여 차례의 수술을 받았다. 그 고통이 얼마나 컸겠는가?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당당하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간증을 해주신 자매에게 감사의 말씀을 드린다.
오늘 이 간증이 늘 낮은 자존감 때문에 힘들어 하는 많은 믿음의 형제와 자매들에게 위로와 소망이 되었을 것이다. 하나님을 만난 사람은 자신의 약함을 자랑한다.
사도바울도 그러했다. 사실보다 관점이 중요하다. 우리의 현실은 변하지 않을 수 있다. 현실을 인정해야 하는 상황도 있다. 이미 입은 화상을 부정할 순 없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사람은 하나님의 관점으로 내 자신을 바라본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관점으로 우리의 상황과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다. 자신을 경멸하고 나 같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존재 가치가 없고, 태어날 가치가 없다고 좌절하고 절망하는 사람이 있다면, 오늘 이 시간 하나님의 눈으로 여러분을 바라볼 수 있기 바란다. 여러분의 자녀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라. 기도의 제목이 달라질 것이다.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면 기도의 내용이 달라진다. 주님이 하나님의 눈으로 나를 바라보게 하셔서, 진정으로 나를 사랑하게 하시고, 나를 안아주는 자가 되게 하시고, 나의 시선이 하나님께로 옮겨져서, 나의 상황과 환경을 하나님의 눈으로 바라보게 기도하자. 또한 하나님의 눈으로 자녀를 바라보게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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