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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세20. Day 4. 진짜 나를 찾다 (마 3:16~17)

Jesus Christ/다니엘 기도회 2020. 11. 4.

강사: 권호 교수
합동신학대학원 설교학 교수
'본문이 이끄는 설교' 한국 공동 대표
Southwestern 신학교 졸업(Ph.D)

<소리...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우리는 어떤 '소리'를 듣는다. 그 소리를 듣고 어떤 행동을 하게 된다.
10년 전 쯤에 잘 되던 사업체가 부도가 나서 모든 재산을 잃고도 남은 빚 독촉을 받아 괴로워하던 한 집사님이 있었다. 아파트 베란다 밖을 내려보다가 마음 속으로부터 아파트에서 뛰어내리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다고 한다. (이러한 사탄의 잘못된 소리에 귀를 기울이면 안 된다.)

오늘 본문에서는 어떤 예수님의 모습이 보이는가? 
겸손한 모습이다. 하나님의 아들이 공생애를 시작하는 중요한 시점에 광야의 세례요한에게 세례를 받으러 나오시는 겸손한 모습이다.
대개 자녀가 중요한 일을 시작하려 할 때 육신의 부모님은 사랑의 선물을 준비하시는데, 창조주 하나님은 아들 예수님에게 무엇을 주려 하셨을까?
(마 3:16,17 예수께서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실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 같이 내려 자기 위에 임하심을 보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예수님이 물에서 올라오시자 하늘이 열리고 강력한 성령의 임재가 시각화되어 비둘기처럼 예수님께 내렸다. 그리고, 하나님이 준비하신 것은 돈도, 권력도, 힘도 아니었다. 단지 짧은 '소리'가 있을 뿐이었다. 이 소리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알려주신 것이었다.
예수님은 평생 그저 외진 곳 나사렛 목수의 아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이 주신 '소리'는 예수님이 단순한 목수가 아니라, 하나님이 사랑하시고 기뻐하시는 사람이라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이 소리를 통해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증거하셨다.

마 17장에도 소리가 있다. 변화산에서의 모습이다. (마 17:5 말할 때에 홀연히 빛난 구름이 그들을 덮으며 구름 속에서 소리가 나서 이르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니 너희는 그의 말을 들으라 하시는지라) 예수님은 하나님께서 사랑하는 아들이요 기뻐하는 자라는 동일한 소리를 공생애의 막바지에서도 다시 들려 주셨다.

바로 공생애를 앞 뒤에서 싸매는 봉투기법(Inclusio)으로 예수님 인생의 중요한 두 가지 사건을 하나님께서 동일한 소리로 증거하고 계신 것을 알 수 있다.

<몸과 영혼을 살리는 하나님의 소리를 듣다>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잘못된 소리를 들으면 내가 누구인지 모르게 되고, 우리의 몸과 영혼이 죽게 된다.
그러나 인생의 중요한 순간에 하나님이 주시는 소리를 들으면 내가 누구인지 알게 되고 우리의 몸과 영혼이 살아나게 된다.
나는 이것을 성경 말씀 뿐만 아니라 내 삶을 통해 뼈저리게 알게 되었다.

나는 가난했다. 가난은 불편함뿐만 아니라 부끄러움이었다. 어디에 가면 분식값 한 번 낼 수 없었고, 비가 오면 받을 우산도 변변치 못했다.
나는 공부를 못했다. 누나들과 형은 전교 10등 내에 들었으나, 나는 꼴찌에서 10등 안에 들었었다.
나는 외모가 아픔이었다. 고등학교 졸업할 때까지 키가 160센티가 되지 않았고 매우 말라깽이여서 별명이 '뼈'였다. 또 왜소한 몸에 비해 코가 지나치게 컸다.

여러분은 무엇으로 힘든가? 모두 비슷하지 않은가? 재정적 어려움, 공부, 외모 등으로 열등감을 갖고 마음에 상처를 받지 않는가? 웃고 있으나 웃는 것이 아니다.
나는 내 생각의 소리, 다른 사람들의 판단의 소리로 인해 무척 괴로웠다. 그래서 생각한 것은 바로 '죽는 것'이었다. 삶을 끝내겠다고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우리나라는 지금도 청소년 자살율이 높고, 노인 자살율도 매우 높지 않은가?

한 친구가 수련회로 초대를 해서 참석했지만 찬양과 기도하는 모습이 너무 낯설어서 마음이 힘들었다. 특히 독실한 불교 신자였던 어머니에게 양육된 나로서는 교회 수련회의 설교와 모습들이 매우 불편했다.
그런데 갑자기 마음이 울렁울렁하다가 '내가 이 세상에 우연히 존재하는 것은 아닌 것 같고 누군가 나를 만든 존재나 힘이 있을텐데 그것을 모르는 것이 문제가 될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 때 내 인생 처음으로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다. 귀에 음성이 들린 것이 아니라, 내 생각을 통해서 들었다. 
'내가 너를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 가난해도, 못났어도, 공부를 못해도 있는 모습 그대로 사랑한다.'는 말이 들려왔다. 
평생 들어보지 못한 말이었다. 그래서 나는 무너져 엉엉 울게 되었다. 친구들은 나를 붙들고 흔들며 기도를 했다. 
'저도 하나님을 사랑해요.'라고 조용히 대답했는데, 하나님의 음성이 점점 깊어졌다. '내가 너를 더 사랑해'라는 음성을 듣고는 바닥에 누워버렸다.
바닥에 누워 울면서 그동안 사람들이 말로써 내게 상처를 주고 내게 박았던 유리조각들이 빠져나가는 것을 느꼈다. 한 시간 반 가량이 지난 후에야 일어날 수 있었다.

그 일 이후에도 내 상황은 아무 것도 변하지 않았으나, 단 하나의 변화는 내가 누구인지를 알게 된 것이었다. '나는 하나님의 아들이다!' 눈물이 흘러내렸다.
그 소리가 나를 바꿨다. 삶은 비록 여전히 쉽지 않았지만 '너는 내 아들이다'는 음성을 붙들고 한 걸음씩 걸어 나갔다. 외모는 바뀌지 않았으나 표정이 바뀌었다.

<세상의 소음(noise) 속에서 기도로써 하나님의 소리(signal)를 구별하여 듣자>

우리는 모두 어떤 소리를 들으며 살아간다. 그 소리로 인해 내가 누구인지 생각하며 행동을 한다. 지금 어떤 소리를 듣고 있는가? 어떤 소리에 시달리다 왔는가?

어떤 이는 자기 생각의 소리에 매여 산다. '역시 나다~'라는 자랑을 하다가 조금만 어려우면 흔들린다. 흔들리는 정체성이다.
어떤 이는 주변 사람들의 소리에 매여 산다.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사람들의 평가에 예민하고 쉽게 분노하며 살아간다. 의존적 정체성이다.
어떤 이는 세상의 소리에 매여 산다. 세상의 가치에 얾매여 자기를 실패한 인생으로 취급한다. 

제일 무서운 것은 사탄의 소리를 듣는 것이다. '너도 알지? 너 더러워.... 돌이키기는 글렀어. 그냥 살아. 죽으면 끝이야...' 이런 소리를 듣다가 실패자, 죄인의 정체성을 갖게 된다.
그러나 하나님의 소리는 다르다. 하나님의 소리는 우리가 누구인지 가르쳐 주신다. 우리를 일으켜 세워 회복시켜 주신다. 가진 것이 없고 배운 것이 없고 병들었더라도, 나이가 들었어도 우리는 하나님의 아들이요, 딸임을 말씀하신다. 아무리 악한 죄를 지었어도 포기하지 말고 돌아오라고 말씀하신다. 그를 통해 우리가 잊고 있었던 진짜 우리의 모습을 되찾게 된다.

사탄이 우리를 좌절시키는 가장 좋은 방법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하시는 말씀을 우리로 하여금 듣지 못하게 하는 것이다. 그를 통해 우리의 몸과 영혼까지도 죽이려 한다.
겸손하고 간절한 마음으로 하나님의 음성, 그 소리를 들어야 한다. 지금 이 곳에 우리와 함께 계시는 하나님이시다.

예수님은 30년을 목수로 살았으나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소리를 받아들이고 공생애를 살아가셨고, 십자가의 고난의 길에서 사람들이 저주 받았다고 말할 때 하나님의 아들로서의 사명을 완수하셨다.
세상의 소리는 내가 누구인지 말해줄 수 없다. 내가 다니는 회사나 학교, 옷, 집, 차가 나를 말해주는 것은 아니다.
오직 하나님이 말씀하시는 나, 그것이 바로 진짜 나이다.
하나님의 소리가 지금 들리는가? 하나님은 강사에게만 말씀하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 모두에게도 말씀하신다. (그것이 설교나 간증을 듣는 우리의 태도이다.)

어떻게 하나님의 소리를 들을 수 있을까?
(눅 3:21~22 백성이 다 침례를 받을새 예수도 침례를 받으시고 기도하실 때에 하늘이 열리며 성령이 비둘기 같은 형체로 그의 위에 강림하시더니 하늘로부터 소리가 나기를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 내가 너를 기뻐하노라 하시니라) 이 구절에 답이 나온다. 
'기도하실 때' 하늘이 열리며 성령께서 함께 하셨고, 하나님께서 주시는 음성을 듣게 되셨다. 절망하였는가? 예수님처럼 찬양하고 깊이 기도하며 하나님께 나아가자.
애쓰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정직한 것이다. 어머니 품에 안기듯이 정직하게 하나님께 나아가 안기자.
말씀을 듣는 것으로는 아무 것도 일어나지 않는다. 말씀을 듣는 사람은 '군중'이다. 말씀에 반응하는 사람이 '제자'이다.
하나님 제가 여기에 왔습니다. 내가 누구인지 몰라서 힘들던 제가 여기에 있습니다. 제 정직한 마음을 받아 주소서.
이제 우리의 기도가 점점 깊어지게 하소서. 주님을 더욱 사랑하게 하소서.


적용기도:
아무리 방황하며 어둠 가운데 있는 사람도 하나님의 소리를 들으면 내가 누구인지 발견하게 된다.
우리 자녀들과 가족들이 이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 하나님의 사람으로서의 정체성을 갖도록 기도하자.
내가 누구인지 알면 사람들과 비교하지 않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으면 세상의 소리나 자기의 소리, 사탄의 소리에 흔들리지 않는다.

감사함으로 기도할 때 기적이 일어날 것이다. 우리 인생 가운데 감사의 습관이 다니엘 기도회 기간 동안에 만들어지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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