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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세20. Day 3. 지금 이 순간 주님을 사랑하고 있는가? (사 43:1)

Jesus Christ/다니엘 기도회 2020. 11. 5.

강사: 천정은 자매
86차 항암 치료 중
'나는 주님의 것입니다' 저자
경희대학교 피아노과 학사

강사소개영상 - 영화 '부활: 그 증거'의 일부인 듯하다. 이 영화에 천정은 자매의 삶이 나온다.

-두려움을 소망으로 바꾼 한 사람! 
천정은 자매다. 이 분의 병고는 진행형이다. 2020년 8월에 80차 항암치료였는데, 몇 개월만에 지금은 86차 항암치료 중이다.
'당시 제 상태는 허리, 가슴, 척추, 골반 쪽에 뼛속까지 암이 이미 퍼져 있었고... 나는 그럼 죽는거야? 살고 싶지 않다.'

-살고 싶지 않을 때 나를 찾아온 빛!
전화가 와서 '우리 교회 사람들이 널 위해서 중보기도 해주고 있어. 기도를 시작했어.'하는 타이밍부터 부작용이 없어진 것을 체험했다.

-죽음의 문턱에서 알게 된 살아있는 소망, 부활! 
'내가 암에 걸린 게 문제가 아니라, 내 영혼이 완전히 죽어 있었구나...라는 걸 알게 됐어요' '암에 안 걸렸으면 어쩔뻔 했어? 암은 이제 봤더니 선물이었어!' '죽음은 희망이구나'
고통은 생각이 닿는 곳, 부활은 믿음이 닿는 곳! '그럴 수 있다. 아플 수도 있고, 가는 과정이 고통스러울 수도 있고....' 그런데, 고통 없는 부활은 존재하지 않는다.

최근 개봉된 영화 '부활'에서는 십자가에 못박힌 후 부활하신 예수님의 몸에 있던 '상흔' 즉 Stigma가 예수님의 부활의 증거로서 강조된다. 우리가 아파하는 '상처'가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 부활의 상흔을 지니고 성도는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믿어 정말 증인의 삶을 살아가려 하는 사람, 그리고 이들을 통해 많은 상처와 아픔을 가진 분들의 삶이 더욱 밝아진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부활이 역사적인 사실이라면 그것보다 중요한 것은 세상에 없다. 성경을 통해 이야기하시는 하나님을 믿는다면 그 믿음대로 삶을 살아야 한다는 메시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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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암환자이다. 86차 항암 치료 중이다. 원래 오늘은 87차 항암 치료를 시작했어야 하는날인데, 85차 항암 치료 후에 암이 더욱 악화되어 약을 바꿔야만 했지만 주사를 놓는 관을 넣은 자리에 염증이 생겨서 이를 제거하는 수술을 해야 했다. 그를 위해 3주 넘게 치료받다가 어제 드디어 실밥을 풀고 오늘 이 자리에 올 수 있게 되었다. 
다니엘기도회에 와달라는 요청을 받고 '지금 주님을 내가 사랑하고 있는지'에 대해 그저 내 자신에게 묻다가 오늘 간증의 제목으로 선정하게 되었다.
약 2주 전에는 통증도 시작되었기에 '못가면 어떻게하지?'라는 걱정도 했지만 '주님의 스케줄이니까 주께서 허락하시면 그냥 가는거고, 혹시 무슨일이 생겨서 못오게 되면 하나님께서 '네 자리 아니야' 라고 하시는 것으로 생각하기로 했다. 나는 껍데기만 가고 '항상 그랬듯이 성령님께서 이 자리에 꼭 와주세요' 라고 기도했는데 감사하게도 두 발로 잘 걸어서 강단에 올라올 수 있었다.
코로나19로 인해 가장 힘들었던 것이 예배당에 올 수 없는 것이었다. 내가 살아있다고 느끼는 최적의 장소가 예배당이였는데 코로나때문에 못오다가 오늘 오랜만에 와서 많은 분들과 찬양을 하는데 주시는 기쁨이 크다.
오늘 아침에 주신 말씀도, 주님의 사랑을 전하되 '기쁘게' 전해야 된다는 말씀을 받아서 기쁘게 전하려 한다.

<암에 걸리다>

나는 지금 47세인데 39세이던 8년전인 2012년도 10월27일에 암에 걸리게 되었다. 암이라는 진단보다는 '너무 늦었습니다'는 말이 의사의 첫마디였다.
암이 왜 그토록 늦게 발견되었을까... 내가 너무 겁쟁이였기 때문인 것 같다. 나는 사회생활은 씩씩하게 했었지만 사실은 어릴때부터 병원가기를, 주사바늘을, 귀신을, 벌레를 무서워하던 겁이 많은 쪽이었다. 어려서부터 병원에 가는 것이 무서워서 웬만큼 아픈 것은 주변에 숨겼는데, 나이가 들어서도 그 버릇을 못고치고 일하느라 바빠서도 병원에 안 간다고 자기 합리화를 했다. 그동안 암으로 인해 굉장한 통증을 느꼈음에도 멍청하다 싶을정도로 그것을 참아냈던 것이다. 어느 순간이 지나니까 그 통증이 없어지는걸 느끼며 다행이다...라고 생각했다. 통증은 없어졌지만 그 후에는 가슴의 모양이 변형되어 있었다. 그것도 모른 채하고 병원을 가지 않고 있다가, 우연히 친구 엄마가 나를 사우나를 데리고 가려다가 거부하는 내게서 이상함을 느끼고 억지로 병원에 데리고 갔는데, 그 곳에서 이미 늦었다는 판정을 받게 된 것이다.

암 판정을 들은 후 처음에는 그저 귀에서 '삐~' 소리만 들렸고 도저히 내 얘기가 아닌 것 같았다. 그리고 집으로 돌아 오는 차 안에서 오열했다. 그냥 죽음에 대해서 한번도 생각하지 않고 산 것은 아니었다. 힘들때 죽고 싶다는 생각을 하기도 했다. 일하다가 너무 안풀릴때는 유서도 써놓기도 했었지만, 내가 선택해서 죽는것과 내 선택이 아니라 타인으로부터 '당신은 죽는다'고 듣는 것에는 너무 큰 차이가 있었다. 내가 너무 불쌍하고 슬펐다. 마치 몸에서 짐승소리가 나는 것처럼 울었다. 집에 도착해서 고민하다가, 당시에 내가 일을 도와주고 있었던 언니, 즉 가깝게 지내던 사람 중 기독교인이었던 그 언니에게 이제 못도와주겠다는 이야기를 하는 과정에서 암진단 사실을 밝혔더니, 그 언니가 자기 교인에게 바로 부탁해서 큰 병원에서 오래 기다리지 않고 검사를 받을 수 있도록 도와 주었다. 큰 병원에 검사받는 것은 수개월 기다려야하는 것인데도 바로 그 다음날 검사를 받을 수 있기는 했지만, 그 병원에서도 마찬가지로 자신들이 해줄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 항암도 할 수 없다는 진단 결과를 들어야 했다. 가급적 빨리 치료받을 수 있는 방법을 모색하다가 유방암 수술을 한 적이 있는 피아니스트 서혜경 선생님을 통해서 의사를 소개받아 유방암을 고쳐달라고 매달렸고, 그러면 우선 항암이라도 시작하자는 식으로 내 첫 항암치료가 시작되었다.

암을 처음 맞이하게 되었을때의 기분이 아직도 생생하다. 다른 사람에게 암에 걸렸다고 말하기가 어려웠고 암의 '아~'를 말하는 순간 눈물이 날 정도였다. 그리고 인생의 루저가 된 것 같았고 저주를 받은 것 같아서 남에게 암에 걸린 것을 말할 수 없었다. '너무 늦었다'는 의사들의 얘기를 들을수록 회복이 불가능하다는 사실이 죽음을 떠올리게 했다. 시한부 선고를 받은 다음에야 비로소 죽음이 실감나기도 했지만 동시에 '설마...'라는 생각도 들었고, 또 죽음이라는 단어가 그냥 떠오르는게 '내가 이 세상에서 소멸되어버리는 것'이었고, '그게 뭐지? 감당하기 힘들고 왜 내게 이런걸 주었을까?'하는 생각도 들었다. 암이라는 단어는 생각만 해도 너무 슬프고 죽음이라는 단어는 절망 그 자체였다. 이 두 단어가 내 인생에서 사라지기를 바랐지만 오히려 내 인생을 꽁꽁 묶어놓고 있었다.

<병원 치료와 고통이 시작되다.>

그때는 이름도 모르고 맞아야 했던 독한 약이 있다. 최근까지도 맞고 있는 약이다. 유방암 걸린 사람들이 맞는 독한 약이다. 그 약을 믹스해서 맞으면 더 독한데, 그 믹스 주사를 맞자마자 주사쇼크가 왔다. 쇼크가 오면서 나는 바로 식물인간 상태가 되었다. 목소리도 나지않고 숨도 안쉬어지는 느낌이 들었다. 그때 죽음을 느꼈다. 그러다가 조치를 받고 겨우 정신을 차렸는데, 이제는 항암부작용이 시작되는 것이었다. '내가 어떻게 할 수 없는것'에 대한 좌절이 시작되었다. 2차 항암때는 이대로 그냥 죽어버리고 싶다는 생각도 들었다. 머리카락도 없는 내 몰골도 싫었지만 토하는게 너무 힘들었기에, 먹지도 못하고 배설도 못하게 되니 가장 기본적인 생리현상의 해결이 당연한 것이 아니라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 알게 되었다.

이 상황에서 벗어나는 것은 죽음 뿐이었지만 자살할 용기는 나지 않던 중에 전도했던 언니가 한 말이 떠올랐다. 
암 발병보다도 10년이나 예전에 했던 말인데 "예수 안믿으면 지옥 간다."는 말이었다. 10년 전에 들었을 때는, 얼마나 지옥간다는 말이 기분나쁘던지... 나한테는 전도 하지도 마라, 절대 안믿을 것이라고 얘기했었다. 그런데 그 죽음의 순간에 '예수 안믿으면 지옥간다'는 말이 내게 맴돌았다. 그 절망의 시간에 떠오른 하나님께 원망 섞인 질문을 했다. '당신 살아 계세요? 왜 살아있는 티를 나한테는 안내세요?'

그냥 넋두리같아서 포기하려던 그 때 전화가 걸려왔다. 바로 그 기독교인 언니였는데, 언니가 '정은아 힘들지? 내가 기도할게' 라는 말을 해주었다. 그렇게 바로 연결고리가 되는 바람에 언니에게만 기도를 부탁하게 되었는데, 다음날 주일에는 그 언니가 교회에 가서 교인 수 천 명이 넘는 자기 교회에서 중보기도를 요청하였다며 기도 소리를 들려줬다. 난 기분이 너무 나빴다. 안그래도 불행한데 더 불행하게 느껴져서 기도 부탁을 한 것을 후회했다.

그런데, 그 다음 날 3차 항암을 받았는데 미미한 것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증상이 없어졌다. 4차 항암 치료 후에는 너무 에너지가 좋아져서 밖에 나가도 괜찮을 정도로 회복되었다. 원래는 밖에 나가면 바로 열이 올라왔었는데 밖에 나가도 괜찮은 것이었다. 그래서 진지하게 고민하기 시작했다. '뭐가 있나보다. 나는 시한부 인생이고 무엇인가가 있는 것 같은데....'하고 고민하다가, 한번 알아봐야겠다 는 생각이 들어 그 언니가 다니는 교회로 못이기는 척 따라서 교회에 갔다. 그 교회에서는 교인들이 기다렸다는 듯이 반겨주면서 목사님이 '저 자매 살려달라고 기도하자'고 하니까 '주여~!'를 부르며 기도를 하고 나는 못알아듣는 언어로 기도하는데 내게는 그곳이 마치 악마의 소굴같아서 도망치듯 나와버렸다. 그 다음날 내가 싸움에서 진 것 같은 생각이 들었다. 나는 도망치듯 나왔고 하나님이 살아계신지는 확인하지 못했고 언니 걱정도 되는 것이었다. 그래서 무릎을 꿇고 "하나님 살아계세요? 그리고 그 교회가 제대로 된 곳인지 분별하게 해주세요. 이상한 곳이면 그 언니를 구해주세요" 라고 기도했다.

그리고 춘천행 버스를 탔는데, 무료하던 차에 우연히 가방 안에 있던 '성령의 권능으로 부활을 증거하라'는 전날 받은 교회의 제자훈련 책을 발견했다. '적을 알아야 내가 안 당하지'라는 생각에 읽기 시작했다. 사람들이 예수를 믿기를 강요하는 자리가 아닌 혼자만의 공간에서 책을 읽게 되니 기독교에 대한 경계와 긴장은 사라지고 편안하게 되었다.

<부활의 예수님을 만나다>

처음에는 에스겔서가 나왔는데 너무 재밌게 보다가 그 다음 로마서 1장 28절에서 눈이 딱 고정이 되었다. 
(롬 1:28 또한 그들이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그들을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버려 두사 합당하지 못한 일을 하게 하셨으니) 
그 내용은 '모든' 사람이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 싫어하는데 바로 그것이 죄라는 것이었다

그 다음에는 (롬 5:12하. 이와 같이 모든 사람이 죄를 지었으므로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느니라) 모든 사람은 죄를 지어서 사망에 이르게 된다는 구절이었는데, 사람이 왜 죽는지에 대한 답이 나와있는 것이었다. 당시 죽음에 모든 관심이 향해 있었고, 또 한 눈에 딱 봐도 '하나님을 두기 싫어한다'는 말은 바로 다른 사람이 아닌 내 얘기였다. 그래서 다시 맨 처음부터 다시 상세히 읽어보았다.

첫장에 놀라운 말씀이 있었는데 (행 17:31하 이에 그를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 것으로 모든 사람에게 믿을 만한 증거를 주셨음이니라 ) 즉, 하나님이 친히 증거를 주셨으므로 믿을만한 증거를 주셨는데 그것은 바로 예수를 죽은자 가운데서 다시 살리신것, 즉 예수님의 부활이라는 것이었다. 당시 죽음을 앞두고 있어서 내게 가장 궁금한 것은 지옥이었다. 내가 평안하게 눈을 감기 위해서는 과연 지옥이 있는지 알아봐야 했다. 지옥과 천국이 있으려면 하나님이 살아있어야 하는데,  하나님이 살아계시다는 그 증거를 예수의 부활에서  찾으면 되겠다는 생각을 했다. 그러나 2천년 전의 일인데 예수가 부활했는지를 어떻게 찾지?...라는 벽에 부딪혔다. 

문득 오늘이 며칠인지를 생각하다가 문득 BC와 AD라는 말이 떠올랐다. BC는 Before Christ인 것은 알겠는데 AD의 뜻은 모르겠어서 찾아보니 anno domini 즉 그리스도의 해라는 뜻이었고, 기원전후의 구분이 예수와 관계가 있다는 것이 충격적이었다. 예수라는 사람이 하나님이라고 하고 죽은 것은 알았는데 그 예수라는 사람의 얘기가 누구에 의해 지어낸 것이 아니라 실제로 내가 살아가는 이 세상의 현실적인 날짜와 시간의 기준이 되는 사람이라면, 그것이 어떻게 지어낸 이야기일 수 있겠는가? 내가 부인을 해도 예수가 부활한 것은 변함이 없지 않겠는가...라는 생각이 들었다. BC 와 AD 라는 시간의 기준은 지구촌의 모든 사람들이 쓰고 있는 것인데 그것이 거짓이라면 어떻게 기준이 되었겠는가? 내가 부인할 수준의 사람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예수님이 역사적으로 부활했다는 것이 그냥 인정이 되었다. 그러면 하나님이 살아계시고, 천국과 지옥이 있다는 것이 결론이었다. '나는 지옥이구나, 큰 일 났다.' 는 생각으로 책을 읽었는데, 그 때부터는 모든 말씀이 소중하게 읽혀졌다. 

때가 찼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회개를 해야 한다는 생각은 들었지만 어떻게 회개할지는 몰랐다. 
(요 16:9 죄에 대하여라 함은 그들이 나를 믿지 아니함이요) 예수 믿지 않고 나 자신이 주인된 것을 회개해야 한다는 구절이었다. 나는 원래 '당연히 내가 주인이지. 내 삶. 내가 결정하는데... 사람들은 각자가 다 자기 주인이지...'라고 생각했었지만 거기서는 창조주가 계시기 때문에 그 창조주가 주인이고, 그 창조주께서 우리를 불러 주실 때에는 예수님으로 하여금 십자가를 통해 우리 죄를 대속하신 다음에 그 예수를 주로 믿으라고 하신 내용이 설명으로 나와 있었다.
갑자기 동의가 되면서 "나 주인 맞아요. 착한 일을 많이 한 것도 내가 주인되어서 한 것이었어요."라는 생각이 들자, 이제는 어떻게 회개하지?..하는 생각이 들었다.

'주인된 자리에서 내려오고 미안하다고 회개하고 진심으로 사과하고 그 후에 예수를 주로 영접하라'는 내용이 답이 되었다.
(계 3:20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 내가 마음 문을 열어주면 예수님이 들어오신다는 말씀이었다. 이 말씀이 사랑의 음성으로 들렸다. 
'맞다, 나는 내 주인이었다. 주인이라는게 다른게 아니라 마음대로 생각하고 마음대로 하는것이었다. 창조주가 있으면 피조물이 있는데 피조물로서 나는 이제 주인을 받아들여야 할 때이구나.'하고 속으로 만세를 외쳤다.왜냐하면 구원받았다기보다는 뭔가 찝찝하던 기독교가 어떤 것인지가 풀려 이해가 되었기 떄문이었다. '예수가 천국문의 열쇠구나!' 
(요 14:6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 예수님이 천국문의 열쇠인 것을 알게 되니, 지옥에 가기 싫어서 읽었던 말씀이 나를 천국에 가고 싶은 마음으로 바꾸었다. 그 자리에서 '내가 주인이었어요. 몰라서 그랬어요. 그러니 지금 이 시간에 제 마음에 들어와주세요. 저는 절대 주인 되지 않을거에요. 몸이 주님 것이니 암도 주님 것이예요. 진짜 감사해요. 이거 진짜 가져 가세요'하고 다 드리고 나니 비로소 자유가 임했다.

그리고 교회에 들어왔는데 예전에는 마귀들로 보였던 사람들이 천사들로 보이기 시작했다.
이 사람들이 그렇게 나를 위해서 기도해줬는데, 이 변화받은 분들이 그 하늘 아버지에게 기도했으니 이렇게 나에게 응답을 주셔겠지. 이 천사들이 나의 하늘 가족이구나. 하고 들어가자마자 목사님의 말씀이 너무 은혜롭게 들렸다. 
그날 설교에 '예수님이 부활하신 사실이 역사적으로 너무나도 분명하기에 성경 말씀 대로 사는 것이 인생의 정답입니다'라고 말씀하셨다.. 그래서 '예수를 알아가려면 성경을 읽어야되는구나' 하고 성경책을 밤마다 읽기 시작했다.
맨처음부터 읽기 위해 창세기를 펼치기도 했고 초신자는 요한복음부터 읽기를 권유받기도 했지만, 결국은 마태복음부터 읽기 시작했다.

다 읽어가는데 너무 감사한 것이 책이 너무 쉽고 동의가 되는 것이었다. 이렇게 쉬운 것을 나는 지금까지 왜 안읽었을까? 밤을 새며 읽다보니 동이 트는 것이었다. 아픈사람인것도 잃어버리고.... 자야된다는 생각을 하며 우연히 거울을 보니 빛나는 내 모습이 보였다. 주인을 바꾼 교회 사람들에게 비취던 빛이 나에게도 나는 것이었다. 너무 놀라웠지만 나는 이제 내가 주인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인이 되었으니 당연히 너무 아름답게 빛나는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이제 나는 예수님 것이니 굳이 잠을 잘 필요도 없다는 생각이 들어서 무엇을 할까... 생각을 하다가 예수님도 집에 가고 싶겠다는 생각에 곧바로 교회로 달려갔다. 매일같이 교회로 달려 갔다. 교회가는 길에 어찌나 하늘이 그렇게 예쁜지.... 40년동안 살면서 하늘을 제대로 본 적이 없다는 것도 놀라웠지만, 하늘이 너무 예뻤는데 저 하늘에 내 집이 있다는 생각 때문에 더욱 예뻤다.

항암약 중에서 구토가 제일 심한 약을 먹고 있었기 때문에 버스 안에서 토할 뻔한 적도 있었지만, '내 몸이 이제 예수님 것인데 왜 내가 굳이 토해야할까? 예수님께서 알아서 해주세요.' 하는 생각에 입안까지 나온 구토를 꿀꺽 삼켜버렸다. 그 날 이후로 나는 구토를 한 번도 안했다. 그 일이 '믿음으로 의에 이른다'는 성경 말씀을 실천하면서 깨닫게 되는게 첫 단추였다.

그렇게 교회를 열심히 다니는 동안 예수님이 제일 궁금했다. 나를 그토록 사랑해서 구해주셨구나.... 예수님을 향한 사랑에 빠져서, 나이가 40인데 예전 20대의 감성으로 돌아가서 예수님이 보고 싶어 죽겠어서 잠을 잘 수 없었다. 그러다가 '내가 이렇게 예수님을 사랑하는데 왜 얼굴을 모르지? 그림으로 본 예수님의 모습은 모두 다 다른 것이었다. 주님 앞에 섰을 때 주님을 몰라보면 어떻게 하나.....걱정도 되었지만, 주님이 먼저 나를 알아보실 것이라고 위안도 하고, 또 나도 예수님을 깊이 사랑하므로 알아볼 수 있을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언제든 불러주시면 가서 주님을 정말 만나고 싶어요'
3주 동안 내내 예수님과 사랑에 빠져서 잠도 제대로 못자고, 밥도 제대로 먹지 못하며 교회를 다니고 일상 생활을 했는데도 몸무게가 1g도 빠지지 않았다. 3차 항암까지의 병원 진단 결과는 '가망이 없다'이었기 때문에, 이제 나는 마지막으로 주변을 정리한다고 집안 물건도 정리하고 사랑하는 예수님을 만날 생각에만 젖어 있었다.

<암이 낫다>

그 이후 4차-6차 항암치료의 결과를 듣기 위해 병원에 갔는데, 의사선생님이 뼈와 폐에 암이 모두 없어졌다는 것이었다. 뼈와 폐는 암을 수술로 치료할 수 없는 부위들이다. 사람이 수술로 없앨 수 있는 부위인 가슴과 겨드랑이 임파절에 종양이 있었지만 뼈와 폐의 종양때문에 수술할 수 없다고 했었는데 이제는 의사 선생님이 가급적 빨리 수술하자는 것이었다. 하나님은 사람이 손댈 수 없는 암은 없애주시고 사람이 치료할 수 있는 암은 남겨두신 것이었다. 가슴을 없앤다고 하니 싫고 무서웠지만, 생각해보니 그런 감정은 다시 나를 내 몸의 주인으로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1주일의 시간을 허락받고 교회로 달려갔다. ‘주님, 제가 주인이 되었어요. 무서워서 드릴 수가 없어요. 저 좀 고쳐주세요.’ 

또 이렇게 기도했다. ‘어차피 내 몸은 주님의 것이 되었으니 주님이 이번에 가슴 가져가시고, 다음에 다른 것도 가져가시는 것은 다 주님의 마음인데, 나는 왜 주님에게 주었다가 물렸다가 할까?’  ‘주님, 마음대로 하세요. 어떻게 하시든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더니, 마음에 평강이 임했다. 그리고 수술을 받았는데, 암이 완전히 사라졌다는 진단을 받았다. 비록 재발 방지를 위한 치료를 받던 중에 1년 반만에 재발했지만, 그 수술 후에는 이미 덤으로 살게 된 내 삶이기에 이제 주님을 위해 살기로 결심을 했다.

내가 사랑하는 예수님이 무엇을 좋아하시지 알기 위해 성경책을 보니, 주님은 영혼 구원하는 것을 가장 기뻐하신다는 것이었다. 모든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시기 위해 하늘 보좌를 버리시고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에 달리신 그 분이 가장 원하시는 것은 영혼 구원이었다. 전도하는 것이 너무 싫었지만 주님을 너무 사랑하기에 주님이 원하시면 하겠다고 결심했다. 

그리고 내가 주인된 삶을 내려 놓기로 했다. 피아노를 전공했기 때문에 내 인생에서 가장 많은 시간과 공을 들였던 피아노를 내려놓고, 선교할 때 필요한 작은 악기 (우쿨렐레, 오카리나, 팬플룻) 자격증을 따서 선교지로 보내시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런데 1년 반 만에 재발이 되어 갈 수 없었다. 나는 기도가 제일 약해서 교회당에 가야 기도를 겨우 할 수 있었기에 교회당에 열심히 갔는데, 악기들을 배우는 데에 몰입하다 보니 교회가는 시간을 조금씩 쳐내게 되었다. 
성령충만이 약해지고 옛날같이 다시 내가 주인이 되어가는 기분을 느꼈다. 교회에 달려가서 ‘주님, 제가 기도를 잘할 줄 몰라서 그런 것 같아요. 방언 은사를 주세요. 난 받을만 하쟎아요.’라고 기도를 했다.

다음날 새벽에 하나님은 내게 방언 대신에 깨달음을 주셨다. 
암 환자를 만나기로 되어 있어서 잠깐 앉아서 기도하는데, ‘주님, 이 환자 살려주세요. 주님이 주인이시니 주님이 알아서 해주세요. 내가 주인되지 않게 나는 없애주세요.’ 그 기도가, 그 동안에는 대개 5분에서 10분 정도를 기도할 수 있었으나 그 잠깐의 기도가 1시간 반이나 흘렀다. 그동안에는 내가 하나님 앞에 잘못된 기도를 드려온 것이 깨달아졌다. 내가 함부로 방언 달라고 기도한 것이었다. 
내 기도는 문제가 있었다. 하나님께 구하라고 하니까, '암환자를 당신이 붙여주셨으니까 당신이 알아서 하세요.' 라고 아무 사랑도 없는 기도를 했었던 내 모습을 깨달았다.
주인의 뜻대로 기도하지 않고, 내가 주인되어 정해놓고 기도를 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는 방언하는 사람이 부러웠던 것이다. ‘주님, 제가 방언을 하지 않아도 되니 제가 어떤 순간에도 제 주인되지 않게 해주세요.’라고 기도를 했다. 암환자의 영혼 구원을 진실로 원하고, 내가 어떤 일을 하는 것이 아니고, 주님이 일하시기를 기도해야 한다는 기도 방법을 깨닫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매일 3시간을 기도해도 힘들지 않았다. 

새벽 5시에 일어나면, 가장 먼저 주님을 옆에 모셔드리고 찬양을 하고 말씀을 찾고 기도를 했다. ‘하나님, 오늘 만날 이 영혼을 뜻하신 바가 있으면 살려주시옵소서.’ ‘부활하신 주님을 꼭 만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주님께서 원하시지 않으면 약속이 무산되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다. 이렇게 주님 뜻대로 기도하니, 주님께서 하루도 빠지지 않고 암환자에게 계속 인도해 주셨다. 암환자가 영접하면, 바로 우쿨렐레 등의 수업이 들어와서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일정이 쭉 맞춰지는 것이었다. 중학교도 가고 여러 곳에서 수업을 하게 되었다. 이렇게 매일 매일 주님과 아기자기 사랑하는 것이 너무 즐거웠다. 바빠진 일정 속에서 새벽기도도 주님과 약속을 안하면 내가 지키지 못할 수도 있다는 생각에, 새벽기도 시간을 '새벽 5시에 예수님을 만나러 가는 약속 시간'으로 정해놓으니 계속 5시에 일어날 수 있었다. 기도하고 말씀하고 찬양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이 어떻게 하시는지, 너무 놀랍게 하시는 은혜를 체험하며 살았다.

<암이 재발하다. 그러나 나는 처음과는 달랐다.>

그런 사람에게도 암은 재발했다.
재발이 염려되어서 늘 욥기를 읽으며 진단을 받으러 가곤 했는데, 1년 반만에 치료가 불가능한 골반뼈, 척추뼈, 갈비뼈 등에만 암이 재발했다. 의사 선생님도 처음 본 경우라고 했다. 암이 없어진 자리에 다시 나오지는 않는데 그 자리에 그대로 다시 재발한 것은 처음 본다는 것이었다.
나는 이것이 하나님의 메세지라고 생각했다. 그동안 암환자들에게 '예수님이 당신 주인이예요. 괜찮아요'라고 말씀을 전하면 대개 기뻐했는데 딱 한명이 '너는 나았으니까 그렇지' 라고 했었다. 그 때 그들의 아픔을 잘 아는 나였기에 환자에게 스트레스를 준 것이 자괴감이 들고 위축되었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나를 살린 이유가 암환자를 살리기 위해서라면 기쁨으로 전도할 수 있게 도와주시기를 기도 했었다. '암이 선물이구나. 암 안걸렸으면 예수님을 못알았겠구나.'라고 고백했던 것이 떠올랐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진실로 암을 선물로 받아들일 수 있음을 인정해 주시고 이번에는 암을 '허락'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암이 하나님께서 내게 주신 미션이면 절망할 이유가 없었다. 암환자에게 달려가서 '저 암환자에요' 라는 말과 함께 다가가니까 쉽게 다가갈 수 있어서 환자들이 마음도 열어주고, 그렇게 사역을 하니까 더 풍성해지는 과정을 경험했다. 그 생활 가운데 가운데에서 집회도 많이 들어왔서 계속 일이 늘어났는데 그에 비례해서 암도 늘어났다. 항암을 다시 시작해야할 정도로 몸이 안좋아지기 시작했다. 뼈에만 있던 암들이 장기로 전이가 시작되면 사형선고를 받는 것과 같아서 그 때는 반드시 항암치료를 시작해야 한다고 했다. 집회 요청은 계속해서 들어왔다.

2015년에는 암통증이 시작되었다. 암통증을 처음 만났을 때 나는 다시 기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심한 공포에 떨게 되었다. 밤에 골반뼈에서 시작해서 고통이 시작되었다. 의사선생님이 온 몸의 뼈 중에서도 특히 골반뼈쪽이 잘못되면 길가다가도 무너질수 있으니 걸어 다니지말고 웬만하면 누웠있으라고 주의 사항을 주셨었지만 무시하고 그냥 집회를 다녔는데, 아마도 머릿속에는 그 말씀이 남아 있었나보다. 오른쪽 통증이 시작되자마자 그런 의사선생님의 말이 떠올랐다. 뼈가 부러지면 대동맥을 관통해서 즉사할 수 있겠다는 생각도 들었다. 항암 부작용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정도의 어마어마한 고통과 통증이었다. '주님 안아프게 해주세요'라고 기도했지만 더욱 아파졌다. '오늘만 살려주세요' 라고 기도가 바뀌기도 했다.
다음날에는 침대에서 내려오는데 아예 걸을 수도 없었다. 병자일 뿐 아니라 이제는 장애인이 된다는 생각에 너무 비참하고 너무 무서웠다. 앞으로 나를 누군가가 항상 돌봐줘야한다는 것이 절망적이었다. 그 순간 교회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병원의 만류를 무릅쓰고 겨우 허락을 받아 캐리어를 목발로 삼고 다른 다리 하나는 질질 끌듯이 계단 하나 하나를 높은 산인 것처럼 힘들게 올라서, 기를 쓰고 교회 2층으로 올라가서 앉았는데 몸이 기울어져 가며 나는 이제 못 걷게 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
목사님이 내 간증을 들어주시며 나를 위해 기도를 해주실 때, '감사합니다. 중보기도를 또 받게 해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고 기도했고, 또 내 몸을 주님께 드렸으니 못 걸어도 안될 것 없다. 나는 부활체로 썩지도 않고 먹지도 않는 완전한 몸으로 천국에 갈 것이니까 못걸어도 안될 것 없다는 생각을 했다. 하나님이 이미 최고의 선물을 주셨으니, 이 과정을 겪어야 한다면 이유가 있겠구나. 나는 정신도 차려야 하니 내가 제일 싫어하는 것을 지금 내게 행하시기를 기도하자 갑자기 몸에 힘이 풀어지면서 두발로 걸어나올 수 있었다. 하나도 아프지 않았다. 그 뒤로도 밤마다 통증이 왔지만 한 번도 무섭지 않았다. '나는 예수님의 몸이니 악한 영들에게 떠나가라고 선포하면서 밤마다 통증과 기쁘게 싸웠다. 아프지만 이 몸은 예수님 몸이니 그럴 수 있다고 생각했다. ‘악한 영들아, 나를 예수님에게서 떨어지게 하려고 하지만, 나는 너희들에게 절대로 지지 않겠다.’라며 기쁘게 싸웠다. ‘예수님 십자가에서 흘리신 피 한 방울에도 벌벌 떠는 너희 악한 영들은 떠나가라’, 8개월 후 통증은 없어졌지만 암은 더 늘어갔다

<암과 무관하게 예수님 향한 사랑으로 살아간다>

(요 1:1 태초에 말씀이 계시니라 이 말씀이 하나님과 함께 계셨으니 이 말씀은 곧 하나님이시니라,  요 1:14상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태초에 하나님과 함께 계시던 말씀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예수님은 말씀이시다. 말씀을 씹어먹는 사람들은 성령의 보호를 받아 악한 영들은 건들일 수도 없겠다는 생각을 했다. 예수님을 믿고 붙들다가 힘들면 귀에다가 이어폰으로 요한복음을 꽂아놓으시라고 암환자들에게 권유했다. 그리고 놀랍게도 말씀과 함께 하는 사람들은 해방되는 것을 보게 되었다.

내가 말씀을 기를 쓰고 붙잡게 된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게 되었기 때문이었다. 사랑에 빠지게 된 사람들은 어떤것도 방해를 받지 않는다. 누가 옆에서 욕한다고해도 어차피 사랑에 빠져서 다른 것에는 아무 관심이 없듯이, '예수님을 지금 사랑하는 것이 너무 중요하다'는 말씀을 여러분께 오늘 드리고 싶다.

오늘 이 자리에도 환우들이 많이 있을텐데, 나는 환우분들에게 위로를 해드릴 수가 없다. 그 아픈 마음은 알지만, 우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연민에 빠지면 그것은 속는 것'이라는 것이다. 죄의 삯은 사망이므로 우리 몸은 이미 사망이 자기 몫이다. 이 몸을 어떻게든 나으려고 하다보면 악한 영에 휘둘리게 된다. '아파도 괜찮아. 죽어도 괜찮아. 쓰러져도 괜찮아. 나는 내 온전한 부활체가 내 소망이야. 난 어차피 그렇게 될꺼야. 그런데 나를 조금 무섭게 할 수 있지만 난 속지 않을거야.'라는 마음이 들었다.

때로는 '지금 내 1순위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사명'이라고 했다가 회개하기도 한다. 예전에는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이었는데 사명이 우선일 수 없다. 내가 주님을 너무 사랑하니까, 사랑하는 사람을 믿을 수 있으니까 나를 그런 자리에 보내시는 것이다. 사명이 중요한 것이 아니다. 지금 내가 해야 할 일은 사명이 아니라 예수님을 미친듯이 사랑하는 것이다. 내가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이 나를 통해 일하시고, 내 병을 이길 수 있게 하실 것이다. 내 병을 이기는 것은 죽지않는 것이 아니라 이 병을 뛰어넘어서 자유해지는 것이다. 우리는 그리스도인이기에 절대 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코로나19도 우리를 방해할 수 없다. 우리는 예배를 스스로 드리면서도 하나님을 사모할 수 있다.물론 예배 활성화를 윟해서 현장 예배를 드릴 수 있도록 코로나19가 속히 사라지기를 기도해야 한다.
그리고 아픈 분들이 많을텐데 기억해야 할 것은, 예수님을 사랑하지 않는다는 것은 예수님을 우리가 버리는 것이다. 내 뜻대로 되지 않는다고 내가 삐지고 예수님을 배반하는 것이다. 늘 우리가 주님을 배반하는 것이지 예수님은 우리를 절대 버리지 않으신다는 것을 명심하자. 말씀을 깨달으려 하지 말고 말씀을 그대로 믿고 행해야 한다. 하나님은 내게 좋은 것만 주시는 분이니 내가 믿고 그대로 하겠다고 할 때, 그때 하나님께서 역사하신다.

(기도- 우리가 예수님을 주로 모셨으면 주님은 우리를 절대 배반하지 않기 때문에 우리 모두 이 순간부터 주님을 사랑하게 하시고. 예전에 우리가 우리으 주인되어 살았던 삶으로 돌아가지 않게 하소서. 우리 입에서 주를 향한 사랑과 기도가 떨어지지 않게 해주시고, 나라를 구해주옵시고 우리 개인개인의 모든 영혼도 구원해주셔서 주님의 모든 뜻을 이루어 주시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렸습니다 아멘)

적용 기도:
정말 주님이 내 인생의 주인되는 삶을 살고 있는지 도전이 되는 시간이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니라. 너는 두려워 말라. 너는 내 것이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하나님이 우리를 지명하여 불렀고 예수 십자가의 피로 우리를 구속하셨다. 이제 내 인생의 주인은 내가 아니다. 주님이시다. 정말 내 인생의 주인이 주님이라면, 주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살아야 한다. 
오늘 천정은 자매의 간증을 들으면서, 얼마나 고통스러울까? 보다는 예수님을 주인으로 모시고 사는 것이 얼마나 행복할까? 라는 생각을 했다. 
우리는 얼마나 주님을 내 인생의 주인으로 모시고, 그분을 인정하고 살아가고 있는가? 주님, 내 시간도 주의 것입니다. 나의 몸도 주의 것입니다. 주님이 피흘려 값 주고 나를 사셨습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 아닙니다. 내 인생의 주인되었던 삶을 회개합니다. 내 육체를 의의 병기로 당신의 뜻대로 사용하여 주옵소서. 주님이 주인되는 삶이 되도록 기도하자.

내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주님을 사랑하게 해달라고 기도하자. 고통 속에서도 주님이 가장 사랑하는 일이 복음을 전하는 일이라는 것을 깨닫고 복음을 전하는 천정은 자매의 모습을 보면서 다시 한번 주님에 대한 사랑을 점검해 봐야 한다. 내 인생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하게 하시고, 내가 하는 모든 일들의 동기가 주님의 사랑이 되게 하소서.

우리 가운데는 암과 여러 질병으로 인해 고통당하고 있는 분들이 많이 있다. 
여호와여 나를 고쳐주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낫겠나이다! 여호와여 나를 구원하소서, 그리하시면 내가 구원하리로다! 주권은 주님께 있다. 
‘채찍에 맞음으로 나음을 입었도다.’라고 말씀하셨다. 우리가 능력이 있어서가 아니라 이 말씀을 믿는 것이다. 이 약속의 말씀을 붙들고 기도하는 것이다. 주님께서 십자가에서 나의 모든 연약함과 질병과 저주를 담당하셨으니, 오늘 그 약속의 말씀처럼 나를 고쳐주시기를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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