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프로필] 류응렬 목사
- 와싱톤중앙장로교회 담임목사 (2013년~현재)
- 고든콘웰신학대학원 객원교수
- 전) 총신대학원 교수
- 전) 분당중앙교회 부목사
- 전) 중국 선교사
* 1964년생
* 학력
* 한국외국어대학교 영어영문학(B.A)
* 총신대학교신학대학원(M.Div.)
* 미국 고든콘웰신학교 성경신학(Th.M.)
* 서든뱁티스트신학대학교 설교학 박사학위(Ph.D.)
[본문] 사무엘하 8:3~6
3 르홉의 아들 소바 왕 하닷에셀이 자기 권세를 회복하려고 유브라데 강으로 갈 때에 다윗이 그를 쳐서 4 그에게서 마병 천칠백 명과 보병 이만 명을 사로잡고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다윗이 그 외의 병거의 말은 다 발의 힘줄을 끊었더니 5 다메섹의 아람 사람들이 소바 왕 하닷에셀을 도우러 온지라 다윗이 아람 사람 이만 이천 명을 죽이고 6 다윗이 다메섹 아람에 수비대를 두매 아람 사람이 다윗의 종이 되어 조공을 바치니라 다윗이 어디로 가든지 여호와께서 이기게 하시니라
Ice-breaking
2년 전에 다니엘 기도회 초청을 사양한 적이 있으나, 이번에는 이틀 동안의 격리 기간 등 그 때보다 훨씬 더 어려운 상황이었지만 용기를 내어 초청을 수락하고 이 자리에 섰다. 그 격리 기간 이틀 동안 3가지를 묵상했는데 하나님의 영광, 이 자리에 서 있는 내 모습, 그리고 사랑하는 아내의 모습 등을 깊이 묵상했다. 나는 특별히 드릴 얘기가 많지는 않으나, 아내의 조언대로 오직 하나님의 말씀만을 오늘 전하고자 한다.
BC/AD로 나누듯이 Before Corona /After Corona... 코로나 전후로 역사를 나눌 정도로 신조어가 생겼다. 이제는 일상으로 돌아가기를 꿈꿀 뿐만 아니라 더 나은 일상, 즉 Better Normal로 돌아가기를 꿈꾼다. 성도들은 성경적인 일상 즉, Biblical Normal로 돌아가야 한다.
새로운 어휘 하나를 소개하고자 한다. BD(Before Daniel Prayer)/AD(After Daniel Prayer) 다니엘 기도회가 우리 삶의 큰 변화의 포인트가 되기를 원한다. 두 가지 변화를 원한다. 우리 신앙의 변화와 삶의 변화! 이 두 가지 변화가 우리에게 일어나기를 원한다. 들어본 하나님이 아니라 우리 삶에서 체험하는 하나님이 되시기를 바란다. 다리오왕은 하나님을 몰랐지만 다니엘의 기도를 통해서 하나님을 만났다. 이번 기도회를 통해 하나님을 믿는 사람의 삶을 살아내기 원한다.
믿음을 지키기 어려운 세대
'인공호흡기에 의존하고 있는 미국 교회'라는 말이 있다. 코로나가 지나가면 38% 정도의 성도들이 교회를 떠날 것이라고 한다. 신앙 생활을 제대로 하기에 매우 어려운 때이다.
조 바이든 대통령의 취임식에서 Beaman 목사가 축복기도(benediction)를 하면서 그토록 강력한 어조의 기도 후에 'the name of our collective faith, Amen (다양한 믿음/종교의 이름으로, 아멘)'이라고 기도를 맺을 뿐 'In the name of Jesus (예수님의 이름으로)'라고 기도하지 않는 것을 모두가 보았다.
(또 Leo O'Donovan 목사가 기도를 드리면서도 'To the glory of your name, Amen'이라고 기도를 끝맺을 뿐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두려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다.)
Emanuel Cleaver 하원의원의 기도에서도 'We ask it in the name of the monotheistic God and Brahma and God known by many names by many different faiths. Amen, and a woman.'이라며 다양한 신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것을 보며 신앙을 제대로 지키기가 어려운 세상이 되었음을 절감하게 된다. (Amen 이후에 and a women을 덧붙인 것으로 인해서도 미국 내에서 이슈가 컸다. 의회 내의 여성의원들을 존중(recognize)한 의미였다고 하지만....)
목사라는 타이틀은 있지만, 미국에서는 목사들조차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할 용기가 사라지고 있다.
나도 의회에서 기도할 기회가 있었는데, 국회에는 여러 종교의 사람들이 있으므로 기독교적으로 민감한 기도를 하지 말라는 지침을 사전에 받게 되었었다. (지침과는 달리) 예수님 이름으로 기도한 내게 격려가 몰려올 정도였다. 이렇게 믿음을 지키기가 쉽지 않다.
믿음의 사람 다윗
성경에서 믿음의 사람의 대표격은 바로 다윗(David)이다. (삼하 8:6에서는 '다윗이 어디를 가든지 이기게 하시니라')는 말씀이 나온다. (삼하 8:4에서는 다윗이 병거 일백 대의 말만 남기고.... 발의 힘줄을 끊었다)고 나온다. 힘줄이 끊어진 말은 소용이 없다. 다윗이 의지한 것은 말의 힘줄이 아니라 여호와 하나님이 그의 힘이었기 때문에 이런 일이 가능했다.
신명기 17:6에는 '병마를 많이 얻으려고 그 백성을 애굽으로 돌아가게 하지 말 것이니' 라는 구절이 나온다. 왕이 의지할 분은 애굽이 아니라 하나님이시기 때문이다. (시 20:7) '여호와가 나의 힘줄이라!' 이것은 다윗의 고백이며 우리 성도 모두의 고백이 되어야 한다.
한국 교회의 힘줄은 무엇인가?
사무엘 모펫 (Samuel Moffet, 마포 삼열) 선교사가 우리나라 기독교 초기에 오셨다. 그는 조선 땅에 십자가의 도, 예수 그리스도의 생명의 복음만을 전하기로 결단하고 선교사로 봉사했다. 그로 인해 예수의 복음이 우리의 힘줄이 되었다.
오늘날 한국교회의 힘줄은 무엇일까?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의 힘줄이 되어야 한다. 예수님이 우리의 힘줄이 아니면 십자가를 질 수 없다. 다투었던 제자들처럼 영광의 자리만을 꿈꾸게 된다. 세상이 우리에게 원하는 것은 은과 금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다.
당신의 진정한 힘줄은 무엇인가?
지금 당신의 힘줄은 무엇입니까? 무엇이 있어야 안정감을 누리고 만족합니까? 나를 위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만이 내 힘줄 입니까? 우리는 더 많은 것들을 추구하며 삶을 허비하고 있지 않은가?
우리 자녀들이 우리의 힘줄인가? 자녀 중심이 아니라 하나님 중심의 가정이 되어야 한다. 미국에서 목회하면서 가슴 아픈 일은, 자녀들을 잘 키운 이민 성도들이지만 자녀들이 장성하면서 신앙을 떠나버린 경우이다.
자녀들이 신앙을 이탈하는 이유는 1) 교회를 다녔지만 예수님을 만나지 못했다, 가슴 속에 예수의 생명이 심기지 않았다. 2) 우리 부모님을 보니 하나님이 계시는 것 같지 않다는 것이다. 자녀들의 신앙에 가장 큰 장애가 나 자신, 부모들 아닌가?
'위드 코로나' 단계가 되었다. 예배의 자리에 이제는 모두 나와야 한다. 내가 믿는 하나님이 진정 누구신가? 스스로 물어보자. 자녀들에게 진정한 신앙인의 모습을 보여주는 부모들이 되자. 금수저/흙수저 이야기가 있으나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형상대로 빚어진 소중한 사람들이다.
우리 인생의 지휘봉은 누구의 손에 들려 있는가?
내 손이라면 방향을 가리킬 뿐이지만, 하나님 손에서는 명품 인생을 탄생시킬 것이다.
나는 경남 울주군 농소면에서 태어났다. (지금은 울산시에 편입되었지만) 매우 전형적인 시골 농촌이다. 초가집에서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자라났다. 호롱불 아래서 살았다. 마을에 전기가 들어오던 날, 마을 사람들은 만세를 불렀다. 내가 대학에 들어간 후에 비로소 집에 전화가 들어왔다.
이러한 가난한 상황 속에서 나는 열등감에 빠져서, 반대급부로 사람들의 칭찬을 받기 위해 큰 노력을 하며 살았다.
당시 내가 지은 '아버지'라는 시를 나눈다.
높은 감나무에 달린 스피커에서
'새마을 운동' 노래 울려 퍼지는 아침
새벽에 논물 대고
소 풀 한 지게 해 온 아버지
밥상 위에
장지와 매운 고추
아버지 양푼 그릇
한 쪽에 담긴 쌀밥
아버지 쌀밥
나누어 주신다
나는
아버지 여생
쌀밥 잡수시게
성공할 아들이 꿈이었네
이렇게 성실하게 살며 중학교 3학년 때 전도를 받았고 대학교 1학년 때 마침내 예수님을 만났다. 주님이 '너는 소중한 아이다'라고 해주셨을 때 이 세상의 모든 것이 정말 아름다웠다. 그 때까지는 내가 칭찬 받으려고 뛰어다녔었으나 주님을 만나고 나니 '그렇게 뛰어 다닐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았다. 예수님을 만남으로 내 인생은 새로와졌다. 자녀들의 마음 속에 예수님이 꼭 심겨지기를 축복한다.
다윗의 위기, 내 힘으로 살려던 일들
하나님을 힘줄로 삼았던 다윗에게도 영적인 위기가 다가왔다. 인구조사를 한 것이다. 힘줄이 하나님으로부터 군사력으로 옮겨지는 순간이었다. 하나님은 이를 기뻐하지 않으셨다. 그로 말미암아 7만명의 백성들이 죽임을 당했다.
고든콘웰대학원 150년 역사에서 가장 빨리 박사 과정을 마친 사람이 되었는데, 동료들은 선교 현장에서 고생하는데 내가 미국에서 공부하는 것이 미안해서 열심히 공부해서 빨리 과정을 마치기 위해 애썼다. 논문을 마지막으로 마무리 하려던 때, 순회설교를 맡았던 교회에 가야 했던 어느 날, 기름이 다 소진되어 여러 해프닝들을 다 겪은 후에 깨달은 바가 있었다. 기름이 모두 떨어져 완전히 멈춰버린 내 차가 바로 당시의 내 모습이었다. 성령의 능력 없이 아둥바둥하는 내 모습이었다. 하나님께는 논문만 마치고 기도하겠으니 기다려 달라는 마음이었으나, 결국은 노트북이 고장나서 25페이지~30페이지의 힘들게 작성했던 논문이 논문 제출 며칠 전에 다 사라져 버렸다. 그래서 기도했다. 그리고 새 힘을 얻어, 이틀 만에 다시 그 긴 논문을 작성하였다. 그리고 다시 선교지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렇게 급히 다시 작성한 논문이었지만, 그 논문으로 10,000달러의 우수 논문상을 받기도 했다.
힘줄이 끊어져 버린 인생이 있는가? 인생이 기대처럼 펼쳐지지 않아서 실망한 인생이 있는가? 모든 힘줄이 끊어질 때, 하나님 앞에 엎드릴 때 하나님의 역사가 시작된다.
목회자는 고난과 역경을 뚫고 나가는 사람들이다. '목사님, 하나님이 아십니다. 다시 일어나십시오. 우리도 있습니다'라고 외치며 목회자들을 격려하자. 9,600개의 교회가 Pandemic 으로 인해 예배를 드리지 못하고 있다고 한다. 성도의 30%가 교회를 떠날 것이라고 한다. 모든 힘줄이 끊어졌다고 생각될 때 세상은 낙심하고 실망하지만 우리 성도들은 눈을 열어 하나님을 바라본다.
예수 그리스도가 진정 인생의 유일한 희망인가? 기도만이 해답임을 믿는가? 그렇다면 다시 한 번 예수님을 힘줄로 삼고 일어나기를 축복한다. 절대적인 믿음을 가지고 싸우고 외쳐야 한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 백성 모두가 벌벌 떨고 있을 때 모세는 하나님을 찾았고 지팡이를 들어 하나님의 역사가 임하게 했다.
하나님을 힘줄로 삼은 사람들이 하는 일은 바로 '기도'다.
내가 섬기는 교회는 미국의 53,000 여개 교회 중에서 역경을 이기고 성장한 13개 교회 중의 하나다. 원로 목사이신 이원상 목사님의 희생 위에 섰다. 그분은 매주 수요일은 금식, 매월 1/2/3일도 금식하시며 기도했다. 1) 하나님의 영광을 보게 하소서 2) 저를 불쌍히 여겨 주십시오. 이와 같이 두 가지를 기도했다. 목사님이 돌아가시기 전 일 주일간 인공호흡기를 의지하고 계셨지만 그 때도 Spirit을 기대했지만 SPRITE (사이다)를 마시고 싶다고 하실 정도의 유모어도 있는 분이셨다. 그분은 기도의 사람이기도 했고 우리와 마찬가지로 일반적인 성정과 유모어도 있는 분이셨다. 그 분에게도 연약한 부분이 있었지만, 그런 연약한 사람을 들어 쓰신 분은 바로 하나님이셨다.
나도 총신대 교수로 있던 중에 와싱톤중앙장로교회로 순장 특강을 갔다가 담임목사 초빙을 받았다. 처음에는 거절했으나 원로목사이신 이원상 목사님은 계속 '기도 한 번 해보라'고 하셨다. 몇 개월 동안 기도하고 있는 지만 체크하시며 독려하셨다. 수 개월 후에, 그리고 한 달간의 금식기도를 한 후에 초빙을 수락했다. 예수님의 십자가와 나의 죽음을 생각하면 모든 것은 단순해진다. 이것이 내 인생의 모토다. 교수 역할에 너무 만족하고 지내고 있었지만 '너는 목자다'는 응답을 받고 학교에만 머무르기 보다는 양들(성도들)을 양육하기 위해 마침내 초빙을 수락했다. 그리고 지난 9년 여 동안 행복하게 목회를 하고 있다.
목회를 시작할 때는 잘 해야 겠다는 부담이 커서 많은 노력을 기울이다보니 바빠서 성경을 읽을 시간도 별로 없었다. 그 때 하나님께서 내게 깊이 찾아오셨다. '너는 누구의 힘으로 목회를 하고 있느냐?'라는 질문이 도전이 되었다. 그래서 무척 바쁜 중이었지만 매주 목요일은 기도원으로 올라가 기도하게 되었다.
너희의 힘줄을 끊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신다.
하늘의 찬란함을 버리고 이 땅에 오신 예수님을 생각한다. 모든 힘줄을 끊어버린 모습이다. 더욱이 무력하게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 모든 힘줄이 끊어져 버린 그 순간 속죄와 부활을 통해 우리의 구원의 역사를 이루었다. 우리 주 예수님은 서른 세 살에 십자가를 지셨는데 얼마나 오래 살아야 장수하는 것일까? 33세 이상의 분들은 모두 덤의 은혜로 이 세상의 마지막 날처럼 살아야 한다.
예수 그리스도가 과연 여러분 인생의 유일한 해답인가? 그것을 믿는다면 우리가 마지막까지 해야 할 일은 십자가의 복음을 가지고 가족과 이웃을 깨우는 것이다. 그들은 당신에게 주님이 맡긴 사람들이다. 우리가 구령(救靈)의 열정으로 타오를 때 한국교회가 다시 비상하게 될 것이다. 다시 한 번 일어나자.
[내 생각]
어릴 때 부르던 '달리다굼'이라는 ccm 찬양이 생각난다. 일어나라, 일어나 걸어라, 달리다굼 일어나라.... 예수님이 회당장의 죽은 딸을 살리실 때 하신 말씀이다. 소녀야 일어나라. 잠에서, 죽음에서 깨어나서 일어나라는 예수님의 말씀을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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