똑같은 성현의 말씀에 대해서도 공자에 대해서는 가로 왈을 사용해서 '공자 왈(曰)' 또는 '자왈(子曰)'이라 하고, 예수님에 대해서는 '예수 가라사대'라고 하며, 석가에 대해서는 '석가 가라사대' 또는 '여시아문(如是我聞) 즉, 나는 이렇게 들었노라'로 시작한다.
왈(曰)도 가로 '왈'이니 '말하다'의 옛말인 '가로다'의 한자어이니, 성현의 말씀은 모두 '가라사대'라고 표현했다고 생각된다. '가라사대'는 높임말이고 예사 표현은 '가로되'였다. 예를 들면, '예수께서 가라사대~, 베드로가 가로되~'가 개역성경의 표현법이었는데, 개정개역성경으로 바뀌면서 '말씀하시되'란 뜻의 표현에 있어서 '가라사대'와 '가로되'가 사라지고 '이르시되'와 '이르되'로 바뀌었다.
우리말 문법에서는 자동사의 종류에 불완전자동사를 두고 있다. 심지어 불구자동사라고도 부른다. 그 어미의 변환/활용이 충분히 자유롭지 못한 경우이다. 가로다는 '가로되'와 '가론' 정도로 한정된 유형의 활용만 가능하기 때문이다.
주일학교에서는 늘 레크리에이션 시간이 있었는데, 사회자가 수 십명의 학생들을 대상으로 쉽게 할 수 있던 놀이 중의 하나가 '가라사대' 놀이였다.
사회자/진행자의 말에 '가라사대' 가 붙으면 그 말을 따라야 하고, 붙지 않으면 따르지 말아야 하는 것이 놀이 규칙이었다. 즉, "가라사대 오른 손을 드세요"하면 반드시 들어야 했지만, 그냥 "오른 손을 드세요" 하면 절대 손을 들면 안 되는 것이었다. 이 놀이의 가장 큰 위험은 마지막 순간에 있었다. 잔뜩 긴장해서 '가라사대'의 유무를 잘 분간해서 거의 끝까지 생존하였지만, 진행자가 마지막 즈음에 "자, 게임 끝! 여기까지 안 틀리고 다 맞은 사람 손 들어보세요."라고 하면 대부분의 학생들이 속아서 손을 들고 만다. 그리고 그들 대부분은 '가라사대'라는 말을 붙이지 않았기 때문에 탈락하고 억울해 한다.
요즘은 이런 이야기를 하면 완전히 썰렁한 사람이 되고 말지만, 한 때는 대입을 앞둔 문과생들의 부모님들에게 '가라사대'가 자주 사용된 일도 있었다. 취직의 기회가 많은 상법대나 사회대가 아니면 문학/사학/철학 등을 문과에서는 골라야 했기에, 취직을 고려해서 사범대학교의 인기가 좋을 때였다. 그 때 주로 인구에 회자된 이야기가 바로 '가라, 사대!'였다. (師大)
성경을 읽다가 문득 '가라사대'가 안 보여서 생각의 흐름을 따라 적어 보았다.
아울러 지난 주에 '국립국어원'의 신임 원장이신 장소원 박사님과 얘기를 나눌 기회가 있었는데, 그 분의 관심 영역이 '구어 종결형 어미'와 '문어 종결형 어미'의 비교에 대한 것이었다는 말씀을 듣고, 언어의 구어체와 문어체에 대한 생각을 다시 하다보니 생각이 '가라사대'에 미친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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