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년 1월 첫 주일 (1일) 김은호 목사님 설교
성경 본문 : 요 20:21
예수께서 또 이르시되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2023년의 표어를 ‘다시 세상으로’로 한 것은, 우리의 신앙과 삶이 일치하지 않는 부분이 많기 때문입니다. 그 괴리 현상이 매우 크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2021년 기독 청년의 설문 조사 결과가 충격적입니다.
'성경 말씀을 지키며 살면 이 사회에서는 성공할 수 없다'에 대해서 기독 청년 40.4%가 '그렇다'고 응답했습니다.
'성경 말씀을 지키며 사는 사람은 내 주위에는 별로 없다'에 대해서는 기독 청년 61.7%가 '그렇다'고 응답했습니다.
성경적 삶과 현실적 삶과의 괴리가 있는 것입니다. 성경을 따라서는 세상에서 성공할 수 없고, 성경대로 따라 살 수도 없다는 생각을 기독 청년들이 갖고 있고, 세상의 사람들도 이와 동일한 인식을 갖고 있는 것은 우리의 아픈 현실입니다.
부르심을 받은 우리
’다시 세상으로 갑시다‘
이 말은 과거에 우리는 세상 속에 있던 사람임을 전제로 하는 이야기입니다. 그렇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우리를 ’선택‘하셔서 지명하여 ’부르셨습니다‘ (사 43:1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시몬 베드로, 사울, 삭개오, 나다나엘, 그리고 우리들을 하나님께서 부르셨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매우 다르고 다양한 방식으로 하나님이 정하신 때에 우리를 부르셨습니다. 더러는 기독 가정에서, 핍박의 환경에서, 또는 견딜 수 없는 고난의 한계 상황에서, 지독한 고독과 외로움 속에서, 극심한 재정의 어려움과 관계의 어려움과 실망 속에셔, 누군가의 강력한 권면을 통해서 등 다양하게, 우리는 각각 다른 부르심을 경험했습니다. 부르심의 시기도 모태 신앙, 어린 시절, 청년의 때, 인생의 황혼에, 죽음의 문턱에서 부르심을 받기도 합니다. 중요한 것은 우리 모두가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교회(에클레시아) = 에크(~으로부터) + 칼레오(부르다).
즉, 이 세상으로부터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 교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부르셔서 하나님의 자녀가 되게 하시고 삶의 이유를 깨닫게 하셨습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요 20:21하)
'너희‘
여기서 '너희'는 당시 예수님의 제자들일까요? 아니면 주님을 믿는/믿게 될 우리 모든 사람을 의미할까요?
후자입니다. 왜냐하면 요한복음 17장에서 비슷한 표현이 있는데, 예수님께서 후에 믿게 될 모든 사람을 가리키는 의미로 풀어주셨기 때문입니다.
(요 17:18 아버지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것 같이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
이 예수님의 제사장적 중보의 기도에서도 '나도 그들을 세상에 보내었고‘라고 기도하고 계신데,
(요 17:20 내가 비옵는 것은 이 사람들만 위함이 아니요 또 그들의 말로 말미암아 나를 믿는 사람들도 위함이니) 라고 확장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여기서의 '나'는 당연히 예수님이신데 특히 '부활하신' 예수님입니다.
즉,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은 '사망의 권세를 이기시고 부활하신' 주님이신 것입니다. 생명의 왕이신 예수께서 보내셨습니다.
보냄을 받은 자로서는 '누가‘ 보냈는가가 매우 중요합니다. 그에 따라 신분과 권위와 대우가 완전히 달라진다. 대사들도 파송 국가의 국력과 관계에 따라 신분과 대우가 달라집니다. 그런 문맥에서, 우리를 이 세상에 보내신 분은 ‘부활하신 주님’이시므로, 만왕의 왕 만유의 주이시므로, 우리의 파송은 매우 강력합니다.
그리스도의 대사로 보내심을 받은 자
대사(大使) : 나라를 대표하여 다른 나라에 파견되어 외교를 맡아보는 최고 직급, 또는 그런 사람으로 국가의 원수와 그 권위를 대표한다.
(고후 5:20 그러므로 우리가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사신이 되어 하나님이 우리를 통하여 너희를 권면하시는 것 같이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간청하노니 너희는 하나님과 화목하라)
그리스도를 대신하여…. 그리스도를 대신하여…로 반복해서 표현이 사용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입니다. 이것이 우리의 정체성입니다. 이 확신을 가져야 이 세상에서 당당하게 확신을 가지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그래야 가난하고 힘들어도 ‘중꺾맘’ 즉, 중요한 것인 꺾이지 않는 마음을 가질 수 있는 것입니다.
우리를 부르신 것은 교회 안에 가두어 두시려 함이 아니라, 거듭난 후에 하나님의 대사로 세상에 다시 보내시기 위한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 생활의 무대는 교회가 아니라 세상입니다.' 교회나 기도원만이 신앙생활의 무대가 아닙니다.
보냄을 받은 세상은?
(고후 4:4 그 중에 이 세상의 신이 믿지 아니하는 자들의 마음을 혼미하게 하여 그리스도의 영광의 복음의 광채가 비치지 못하게 함이니 그리스도는 하나님의 형상이니라)
우리가 보냄을 받은 세상은 '이 세상의 신'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그래서 육신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 판을 치고, 미움과 반목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곳입니다.
(마 10:16상 양을 이리 가운데로 보냄과 같도다.)
양은 온순/우둔한 짐승이며, 이리는 사납고 간교하며 공격적인 짐승의 대표격인데, 우리는 양으로서 이리 떼가 득실거리는 이 세상으로 보내심을 받은 것입니다. 그렇지만 세상에서 생존하기 위해 우리가 이리가 되면 안 됩니다.
산상수훈의 8복의 마지막 구절처럼 “너희가 나로 인하여 핍박을 받게 될 것이다…. 내 이름으로 미움을 받게 된다”라고 성경은 말씀하시는데, 그것은 우리가 이리가 아니라 양으로 살게 되기 때문에 겪는 어려움입니다. 세상은 끊임없이 우리를 미워하고 핍박할 것입니다. 그러기에 신앙의 확신을 가지고 있더라도, 이 세상을 만만하게 우습게 보면 안됩니다.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래도 가야 한다
이리 가운데와 같은 세상으로 우리가 가는 것은, 주님이 우리를 이 세상 가운데로 보내셨기 때문입니다. 가기 싫어도 가야만 합니다. 우리가 가지 않으면 환난과 핍박을 통해서라도 우리를 흩으실 것입니다.
(행 1:8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고 예수님이 말씀하셨지만 오순절 성령 강림 이후에도 그들이 나아가지 않자, 하나님께서는 예루살렘 교회에 큰 박해를 허락하셔서 (행 8:1 큰 박해가 있어 … 모든 땅으로 흩어지니라) 성도들이 흩어져 결과적으로 복음이 전파되게 하셨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싫어도 가야만 합니다. 흩어져야 합니다.
종교개혁 당시 마틴 루터는 오전 회중 예배 후에는, 오후에 예배당 문을 닫는 ’폐문 의식‘을 가졌다고 합니다. 세상으로 파송하기 위함이었습니다. 흩어진 교회가 되라는 것이었지요. 우리 삶의 현장이 교회가 되어야 합니다. 진정한 예배는 예배 후에 시작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우리가 이 세상에 보냄을 받은 것은, 세상과 벗이 되라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보냄을 받은 곳이 세상임을 인식하며 살라는 것입니다. 현실에 만족하지 못하는 상황에서도 ’내가 어쩌다가‘라고 생각하지 말고, 어디에 있든지 하나님의 사람인 우리는 하나님의 대사라는 정체성을 잃어버리면 안 됩니다. 우리는 내팽겨쳐지고 버려진 사람들이 아닙니다. 주님이 지금 우리의 모습을 허락하신 것입니다. 따라서 지금 우리 상황에도 불구하고, 주님의 보내심을 받은 자로서의 정체성을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야 합니다.
세상은 바다, 교회는 배
세상은 바다와 같고, 교회는 배와 같다.
인도의 성자라는 선다 싱 (Sundar Singh)이 한 말입니다.
배는 산이나 항구에만 있으면 안 되고, 배는 바다 위를 항해해야 합니다. 그런데, 교회라는 배가 암초를 만나 배 안으로 물이 들어오면 침몰할 것입니다. 비록 배가 바다 위에 있더라도, 바닷물이 배 안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해야 합니다. 성도도 이 세상 속으로 파송되어 있더라도 이 세상과 구별되어야 합니다. 구별되지 않으면 교회로서의 삶을 살아갈 수가 없습니다.
나도 너희를 보내노라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우리는 보냄 받은 사람들입니다. 보냄 받은 사람으로서 각자의 자리에서, 삶이 예배되며 빛과 소금의 사명을 감당하는 순교적 삶을 살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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