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라 (왕상 3:4~6) 20201004 주일설교 김은호 목사
ReCap:
솔로몬은 왜 예루살렘이 아닌 기브온의 산당에서 일천번제를 드렸는가? 그것은 아직 예루살렘에 성전이 지어지지 않았고 모세의 회막과 놋제단이 거기에 있었기 때문이다.
솔로몬은 왜 일천번제를 드렸는가?
첫째, 하나님을 향한 예배가 사역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즉, 예배를 드림으로써 왕으로서의 사역을 시작한 것이었다.
이러한 영향을 누구에게 받은 것인가? 평생의 예배자 다윗으로부터 영향을 받았다. 모든 부모가 예배자로서의 삶을 살아서, 자녀들이 인생의 실패 후가 아니라 젊은 날에 하나님을 예배할 수 있도록 하자.
둘째, 하나님께 충성과 헌신을 다짐하기 위해서였다. 그래서 완전히 제물을 태우는 번제를 드린 것이었다.
셋째, 여호와를 사랑하였기 때문이었다. 불륜의 소생이었던 자신이었지만 하나님이 왕으로 세워주셨기 때문이다. 예배는 순서도, 형식도 아니다. 하나님과의 만남이며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는 것이며 예배가 그 무엇보다도 최우선이요 가장 먼저가 되어야 한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모두가 예배의 사람들이었고 예배가 먼저였던 사람들이었다. 예배를 통해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을 책임져 주실 것이다.
오늘의 설교:
솔로몬이 하나님을 사랑하여 스스로 자원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하여 일천 번제를 드렸을 때 하나님은 어떻게 응답하셨는가?
(왕상 3:5상 기브온에서 밤에 여호와께서 솔로몬의 꿈에 나타나시니라 )
꿈에 나타나신 하나님! 하나님은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향기로운 제물로 받으셨다. 그리고 꿈 속에 나타나셨다.
왜 꿈이었을까? 성경이 씌어지기 전에 하나님은 꿈을 독특한 계시의 방법으로 사용하셨다.
새번역성경: 그 날 밤에 기브온에서, 주님께서 꿈에 솔로몬에게 나타나셨다.
여기서 ‘그날 밤’은 일천번제를 드린 직후, 예루살렘으로 돌아가기 직전의 그날 밤을 가리킨다. 솔로몬의 일천번제에 대해 하나님이 감동을 받으시고 감격하셨음을 보여 준다.
솔로몬의 일천 번제를 받으시고 꿈속에 나타나신 하나님은 솔로몬에게 무엇을 말씀하셨을까?
(왕상 3:5하 내가 네게 무엇을 줄꼬 너는 구하라)
새번역성경: 내가 너에게 무엇을 주기를 바라느냐? 나에게 구하여라.
이것이 우리가 가져야 할 예배의 자세다. 내가 원하는 것을 얻어내기 위한 수단이 예배가 아니다. 어떤 복이나 소원을 이루기 위함이 아니다. 솔로몬은 온전한 충성을 다짐하고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일천번제를 드린 것이었다.
만일 하나님이 오늘 밤에 우리의 소원을 물으신다면 무엇을 구할 것인가? 지금 당장 내게 필요한 것을 구할 것인가, 무엇을 구할 것인가?
(내 생각 추가: 모든 presentation에는 보고/발표의 목적이 있다. 보고를 받는 사람은 늘 묻는다. Support Requirements가 있는가? 무엇을 해주기를 원하는가? 모든 보고자는 그 질문에 대해 준비가 되어 있어야 한다.)
그러면, 솔로몬은 하나님께 가장 먼저 무엇을 구했을까?
그는 무엇을 구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께서 아버지 다윗에게 베푸신 큰 은혜를 감사했다.(왕상 3:6) 즉 감사기도가 솔로몬의 첫번째 기도였다.
은혜는 값없이 베풀어주시는 하나님의 호의와 혜택이다. 솔로몬은 그의 아버지 다윗의 인생은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것임을 알고 있었다.
(내 인생을 이 관점에서 살필 수 있을까? 다윗의 골리앗과의 싸움, 수많은 전쟁에서의 백전백승처럼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성립할 수 없는 일들이 무엇이 있었을까?)
(왕상3:6하 주께서 그에게 큰 은혜를 베푸셨고 주께서 또 그를 위하여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사 오늘과 같이 그의 자리에 앉을 아들을 그에게 주셨나이다) 이 구절은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다윗과 맺는 주권적 언약을 의미한다. (삼하 7:12~13 네 씨를 네 뒤에 세워 그의 나라를 견고하게 하리라)
솔로몬의 이름 여디디야가 '여호와께 사랑을 입은 자'라는 뜻이듯이, 솔로몬 자신이 왕이 된 것도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이 큰 은혜를 항상 주셨기 때문이라는 고백이었다.
(하나님 우리 부모님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를 감사합니다.... 그 은혜로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있습니다....라고 우리 자녀들이 하나님께 감사하고 고백할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솔로몬은 아버지에게 베풀어주신 하나님의 큰 은혜를 감사하면서 아버지를 어떻게 불렀는가?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라고 불렀다. (왕상 3:6상) 솔로몬은 다윗이 자신의 아버지이기 이전에 ‘주의 종’이었음을 알고 있었다. 왕이요 전쟁의 승리자였던 다윗도 하나님의 종이었던 것이다. 그것이 솔로몬이 이해하고 있던 아버지였다.
그리고 솔로몬은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어떤 인생을 살아왔다고 고백했는가?
(왕상 3:6상 솔로몬이 이르되 주의 종 내 아버지 다윗이 성실과 공의와 정직한 마음으로 주와 함께 주 앞에서 행하므로)
1) 주와 함께, 2) 주 앞에서, 3) 행하는 삶 을 다윗은 살았다고 솔로몬이 고백한다.
(시 16:8 내가 여호와를 항상 내 앞에 모심이여... )
다윗은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나누었음을 의미한다. 하나님과 많은 대화를 나누고 많은 질문을 하나님께 드리고 하나님을 찬양했다. 이것이 내 앞에 하나님을 모시고 그 앞에서 사는 삶이다. 하루를 시작하는 순간부터 잠자리에 눕기까지 하나님을 모시고 살아야 한다. 그렇다면, 나는 내 자녀들에게 어떤 모습으로 비춰지고 있는가?
이 기도를 살펴볼 때, 솔로몬은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알고 있었다고 생각된다.
운명? 관상과 사주팔자? 묘자리(묏자리)? 세상 사람들도 보이지 않는 힘이 우리 인생에 작용한다고 생각은 하지만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지는 못한다. 심지어 성도들도 배후에서 일하시는 하나님의 손길은 보지 못하고 현상과 결과만을 보고 사람을 평가하기도 한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배후에서 일하시고 역사하심을 알려준다.
요셉의 애굽에서의 종살이가 우연이었을까?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힌 일은? 꿈을 해석한 것이 우연이었을까? 야곱의 가족들이 애굽으로 내려가 살게 된 것이 우연이었을까?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이 요셉의 배후에서 일하셨기 때문이다.
에스더가 아하수에로왕에게 나아가서 자기 민족을 구한 것이 우연이었을까? 하나님이라는 표현은 에스더서에 단 한 번도 나오지 않지만 하나님이 그 배후에서 일하셨기 때문이다.
(조용기 목사님 예화. 개미에게 밥알 한 술을 떨어뜨렸는데... 첫째 개미와 둘째 개미가 싸우다가.... 둘째 개미를 '볼펜으로 튕겨 버렸다.' 자기 힘으로 이겼다고 생각한 개미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 아닌가?)
솔로몬은 아버지의 인생의 배후에서 끊임없이 일하시는 하나님을 보았기 때문에, 가장 먼저 무엇을 구하기보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육신의 아버지에게 보여주신 은혜에 대하여 감사를 할 수 있었다.
우리도 결과만 보지 않고 인생의 배후에서 역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감사하는 삶을 살아가자.
찬양:
모든 상황속에서 주를 찬양할지라 주는 너의 큰 상급 큰 도움이시라
주의 얼굴 구할 때 주의 영을 부으사 크신 사랑 안에서 주를 보게하소서
내 영혼이 확정되고 확정되었사오니 믿음의 눈들어 주를 바라봅니다
'Jesus Christ > 주님과 함께'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 자녀를 어떻게 키울까? (0) | 2021.05.02 |
---|---|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0) | 2021.04.08 |
예수님을 기념하기 (0) | 2021.01.05 |
하나님을 원망하지 말라 (사 40:27~28) (0) | 2020.07.12 |
진정한 사랑이란 (0) | 2020.05.24 |
위기인가? 기회인가? (마태복음 14:22~25) 김은호 목사 (0) | 2020.04.19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