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 시절 고향 교회에는 높은 강단에 큰 강대상이 있고, 우리가 앉는 마루 바닥보다 조금 높은 곳에 작은 강대상이 놓여져 있었습니다. 그 전면에는 십자가 문양이 있고 십자가를 둘러싸고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이 새겨져 있었습니다. 나를 기념하라.... 기념이라는 말은 학교 개교기념일 밖에 모르던 때여서 어떻게 예수님을 기념하라는 말인지 아리송했지만, 그냥 깊은 생각 없이 지나쳐 버렸습니다.
그 후로 지난 수십 년을 살아오면서, 때로는 예수님과 매우 친밀하고 깊은 교제를 나눈 때도 있었지만, 많은 시간을 특히 코로나19로 인해 어려워지면서, 예수님을 기념하라는 말씀을 깊이 생각하지 않고 그냥 지나쳐 버리고 살아온 것 같은 아쉬움을 크게 느끼고 있습니다.
나를 기념하라는 말씀은 신약성서에서 주로 성찬식에 대한 구절들에서 사용됩니다. 기념하라는 말의 헬라어 원어인 Anamnesis는 생각나게 하는 물건, 곧 기념품을 의미합니다. 아뭏든 예수님을 기억하는 것이 필요합니다. 어떻게 기억해야 할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읽고 늘 묵상함으로써 예수님을 잊지 않고 기억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이 내게 베푸신 은혜를 생각함으로써 (과거) 미래에 대한 진정한 소망이 생길 수 있습니다. 내 삶의 평안과 행복을 기도할 뿐만 아니라 어떤 상황에서도 예수님이 '과거에 그리고 현재형으로' 내게 베풀어 주신 구원의 역사와 부활의 소망을 단단히 가져야 합니다. 소망은 미래에 대한 기대가 아니라 과거에 대한 신뢰 속에서 만들어 집니다.
그것으로 충분할까요? 예수님을 명목적으로 내거는 삶이 아니라 예수님의 선한 영향력을 받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Facebook이나 Linked-in의 종교에 '기독교'라고 천명하거나 집 거실에 십자가를 걸거나 잘 생긴 백인 예수님 사진을 벽에 걸어 놓는 것이 전부가 되어서는 안되고, 실제 우리 삶에서 예수님을 주인으로 영접하고 예수님의 영향력을 인정하고 그 뜻대로 살아가는, 예수님을 닮아가는 작은 예수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 생각을 새해 아침에 다시 단단히 해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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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정으로 무언가를 발견하고자 하는 여행은 새로운 풍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새로운 눈을 가지는 것이다. <소설가 마르셀 프르스트>
그러므로 나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께 무릎을 꿇고 빕니다.
아버지께서 그분의 영광의 풍성하심을 따라 그분의 성령을 통하여 여러분의 속 사람을 능력으로 강건하게 하여 주시고, 믿음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여러분의 마음 속에 머물러 계시게 하여 주시기를 빕니다. 여러분이 사랑 속에 뿌리를 박고 터를 잡아서, 모든 성도와 함께 여러분이 그리스도의 사랑의 너비와 길이와 높이와 깊이가 어떠한지를 깨달을 수 있게 되고, 지식을 초월하는 그리스도의 사랑을 알게 되기를 빕니다. 그리하여 하나님의 온갖 충만하심으로 여러분이 충만하여지기를 바랍니다. (엡 3:16~19)
C.S루이스/ 시선이 예수그리스도를 향해 있는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다.
자넷 어스킨 스튜어트/ 기쁨은 고통의 부재가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이다
페리 노블/ 인생 최대의 문제점은 죄를 짓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모르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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