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묘 가면 늘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부르며 예배를 드렸습니다.
아버님께서 연로하신 후 숙부님들과 함께 고향의 선산을 정리하시기 전까지 해마다 두 차례씩 성묘를 가야 했습니다. 본래의 선산은 연동이라고 하는 미륵산 기슭에 무척 넓게 있었지만 우리는 고조부님부터 따로 모신 작은 선산으로 성묘를 다녔습니다. 1900년대 초에 증조 할머님이 예수님을 믿기 시작하신 후, 증조부님이 요절하시고 고조부모님까지 세상을 떠나시자 홀로 남은 증조할머니께서 기독교의 가르침에 따라 제사를 모시지 않았기에, 종가의 모든 의무와 권한을 내려놓고 떨어져 나오게 되면서 직계 조상의 묘만을 가지고 새로운 야산으로 이장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고조/증조/조부모님들의 산소가 있던 익산 시외의 야산으로 성묘 가는 길은 경제 발전과 함께 크게 변해왔습니다. 아버지 손을 잡고 걸어서 여러 시간이 걸리던 그 길은 어려서는 얼었다가 풀린 진창길이었고 여름의 끝자락의 무더운 길이기도 했지만 어느 날부터는 드문 드문 버스가 다니는 길이 되었고, 근처에 공설 운동장이 생기면서 아스팔트 도로가 났고 산소 가까이까지 아파트가 들어서게 되면서 자가용으로 20분 만에 갈 수 있는 곳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선산도 도시계획으로 주택가가 되었습니다.
성묘를 갈 때마다 산소들을 둘러본 후에는 가장 가까운 직계인 할아버지와 할머니의 무덤 앞에 온 가족이 둘러 서서 찬양을 하고 기도를 했습니다. 그때마다 부른 찬양은 언제나 '주 안에 있는 나에게'였습니다. 때로는 음력 정월의 매서운 칼바람 속에서 때로는 한가위의 따뜻하고 풍성함 속에서 부르는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찬양은 신앙을 유산으로 주신 할아버지와 할머니들의 유언이었고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콰이어에서 '주 안에 있는 나에게'를 부르며 아버지를 기억합니다.
작년 말에 아버님이 소천하시고 부고에는 입관이나 발인 등이 공지되었지만, 실제로는 아버님 자신의 서약과 유언에 따라 아버님의 시신이 약품 처리되어 전북대학교 의과대학에 기증되었기에 입관이나 발인은 없었습니다. 아버님이 안 계신 첫 번째 설과 추석을 보냈습니다. 마음에 그리움은 사무쳤지만 아무 데도 갈 곳은 없었습니다. 아버지의 시신이 의대생들의 해부 실습 용도를 다 마치기까지는 아직 몇 해를 더 기다려야 할지 모릅니다. 어려서부터 언젠가는 아버지의 산소 앞에서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찬양을 부르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이제 그런 일은 기약 없는 일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어제 그레이스 콰이어의 10월 찬양이 '주 안에 있는 나에게'이었습니다.
평생을 성가대 지휘자로, 성가대장으로, 장로 합창단원으로 섬기신 아버지, 또 언제나 인터넷으로 그레이스 콰이어의 찬양을 즐겨 들으시던 아버지께서 예수님의 품 안에서 우리 찬양을 기쁨으로 지켜보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버님의 시신이나 유골이 있는 곳에서 부르는 찬양은 아니었지만 마치 아버지를 마주하고 있는 듯한 은혜가 있었습니다. 첫 가사부터 가슴 깊은 곳에서 뜨거운 바람이 나와서 안경이 흐려지고 찬양을 마칠 때는 눈가로 흐르는 눈물을 닦아내야 했습니다.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불변하시니' 그 약속을 붙들고 찬양하는 순례자의 삶을 살아가고, 저도 제 아들들의 삶을 믿음 가운데 축복할 수 있겠다는 생각을 했습니다. 아버지가 눈을 감으시기 하루 전에 산소 호흡기의 도움을 받으시며 바라보시던 그 눈길을 통해 하시고자 하셨던 말씀이 예수님을 믿고 감사하며 찬양하는 삶을 살라는 것이었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주 안에 있는 나에게' 찬양의 영어 원제목은 'Singing I go'입니다. '찬양하며 살리라'이지요.
나이 들어 쉰 소리만 나오는 성대이지만 그 소리도 사용하셔서 그레이스 콰이어로서 찬양할 수 있는 은혜를 허락하신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https://oryun.org/tv/?menu=64&mode=view&tid=54565&type=high_video
In 1851 Eliza Edmunds Hewitt was born, and grew to be valedictorian of her class and a school teacher in Pennsylvania. At some point in her teaching career a student struck her on the back with a piece of heavy slate. This left Eliza in a heavy cast for months, confined to her room.
엘리자 휴잇 여사는 1851년에 펜실베이니아에서 출생하여 그곳에서 성장했고 졸업생 대표였으며, 학교 교사가 되었습니다.
선생님으로 일하던 중에, 한 문제 학생이 그녀의 등을 두꺼운 슬레이트 조각으로 내려쳐서, 수개월간 깁스를 하고 방에만 있어야 했습니다.
During this time of painful confinement, Eliza was determined not to be bitter, and started writing hymns. Many of them were praise hymns, such as Singing I Go.
그 고통의 시간 동안에, 엘리자는 슬퍼하지 않고 오히려 '주 안에 있는 나에게'와 같은 찬송 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When she was able to go outside for the first time on a spring day, she enjoyed the warmth of the sun. Returning to her room with a joyful heart, she wrote the hymn Sunshine in my Soul Today.
병실에서만 있다가 처음으로 밖으로 나갈 수 있었을 때 햇빛의 따뜻함을 즐길 수 있었기에, 기쁜 마음으로 병실로 돌아와서 '내 영혼에 햇빛 비치니' 찬송 시를 썼습니다.
Eliza did improve but suffered health problems for the rest of her life. She went on to do work in various Sunday School capacities, a passion of hers. At one time she had a class numbering 200.
그녀는 회복하기는 했지만, 여생을 건강의 어려움으로 고생해야 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녀는 늘 감사했고 하나님을 찬양했으며 우리에게 큰 위로를 주는 찬송 시를 계속 썼습니다.
1.
주 안에 있는 나에게 딴 근심 있으랴
The trusting heart to Jesus clings,
Nor any ill forebodes.
믿는 마음으로 예수님께 착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으면
나쁜 예감과 걱정은 전혀 없으리.
십자가 밑에 나아가 내 짐을 풀었네
But at the cross of Calvry sings,
"Praise God for lifted loads!"
오히려, 갈보리 십자가에서 노래하리,
"내 짐을 대신 져주신 주,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2.
그 두려움이 변하여 내 기도되었고
The passing days bring many cares.
"Fear not, " I hear Him say;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많은 걱정들이 몰려오지만,
"두려워 말라", 나는 그분의 음성을 들으리.
전날의 한숨 변하여 내 노래되었네
And when my fears are turned to prayers,
The burdens slip away.
내 두려움들이 기도로 바뀔 때,
내 짐은 풀리네 (그 짐들이 벗겨져 나가리)
3.
내주는 자비하셔서 늘 함께 계시고
He tells me of my Father's love,
And never slumb'ring eye;
주님이 내 아버지 하나님의 사랑에 대해 말씀해 주시니,
주님은 결코 졸지 않으신다네.
내 궁핍함을 아시고 늘 채워주시네
My everlasting King above
Will all my needs supply.
(하늘) 위에 계신 나의 영원한 왕께서
내 모든 필요를 공급해주시리.
4.
내 주와 맺은 언약은 영 불변하시니
When to the throne of grace flee,
I find the promise true
그 은혜의 보좌로 피할 때,
그 약속의 신실함을 알게 되리라.
그 나라 가기까지는 늘 보호하시네
The mighty arms upholding me
Will bear my burdens too.
주의 능력의 팔이 나를 보호하시니
나의 짐들도 져주시리.
<후렴>
주님을 찬송하면서 할렐루야 할렐루야
Singing I go along life's road, Praising the Lord, praising the Lord;
인생의 여정을 살아갈 때 노래하며 나는 가리,
주님을 찬양하면서, 주님을 찬양하면서.
내 앞길 멀고 험해도 나 주님만 따라가리
Singing I go along life's road,
For Jesus has lifted my load.
인생의 여정을 살아갈 때 노래하며 나는 가리,
예수님이 내 짐을 들어주셨네.
다른 글: https://governance.tistory.com/709
* 고민이 되는 영어 해석이 있습니다. Life's Road가 인생길인지 생명길인지 잘 모르겠습니다.
처음에는 생명길이라고 생각했으나, 음미할수록 인생길이 맞는 것 같습니다. 생명길은 way to life 또는 path of life로 표현하는 듯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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