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고등학교 때 장학금을 받은 친구를 부러워한 적이 있었습니다. 우리 집 형편이 제 수업료를 감당하지 못할 정도였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교인들 앞에서 칭찬거리가 될 수 있는 기회였기 때문이었습니다. 훗날 어느 국회의원의 아버지가 된 그 스폰서는 우리 교회에 간증을 오셔서 성도들 앞에서 본인이 어느 훌륭한 학생에게 장학금을 주노라고 얘기하셨습니다. 저는 그 청중의 하나로서 앉아 있었고요.
그 때 생각했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는데, 왜 하나님도 믿지 않는 그 친구는 저렇게 높이고 주일 저녁예배까지 나와 있는 나는 이렇게 그냥 두실까...
2.
고3이 되면서 대입을 위한 마음이 간절해짐에 따라, 하나님께 기도할 때마다 마음의 부담이 커져 갔습니다. 내 학력고사 성적이 좋게 나오는 것이 하나님과 무슨 상관일까? 모두에게 복을 주시면 아무 소용이 없는데... 왜 하나님이 내게만 복을 주셔야 할까? 모두가 열심히 공부하고 있었기 때문에, 고3 중요한 시점에 큰 수술도 해야 했고 평소에 몸도 약한 저로서는 열심으로 최고의 성적을 거둘 수 없다는 것을 너무 잘 알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생각했습니다. 성경의 인물들을 보자. 그들은 자기에게 주어진 작은 복에 대해서도, 큰 복에 대해서도, 그것을 가지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서원'을 했다. 다윗은 골리앗을 죽여서 자기의 영광을 드러내려 하지 않았고 오히려 하나님의 이름이 모욕당하는 것을 참을 수 없어 하나님의 이름으로 무모한 시도를 한 끝에 하나님의 이름을 거룩하게 했을 뿐 아니라 본인도 큰 영광을 얻었다. 바울도 빌립보 감옥의 문을 열게 하는 찬양을 불렀지만 그의 위대함을 보여주기 위한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말씀이 전 세계에 퍼지게 하기 위한 것이었다. 나도 이제... 내 학력고사 결과와 하나님의 영광을 연결시키자. 짧게는 나처럼 연약한 사람이 하나님을 의지하여서 좋은 성적을 거두는 것도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될 것이고, 길게는 내 삶을 통해 좋은 학력고사 성적을 가지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다 하겠다고 기도하자. 그러면 하나님이 내게 응답하시지 않겠는가?
그 날부터 공부는 나를 위한 것이 아니었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한 것이 되었습니다, 적어도 저 스스로 그렇게 믿었습니다.
3.
학력고사에서 하나님이 제게 응답하신 일은, 제 신앙에 큰 힘이 되었습니다. 어떤 신앙이냐면.... 오늘날 교회에서 많은 사람들이 고백하고 있는 그 신앙입니다. '하나님은 나'만'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하는 요한복음3장16절을 많은 목사님들은 '하나님이 OOO(이)를 이처럼 사랑하사...'로 바꾸어 소리내어 읽게 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을 보다 직접적으로 느끼라는 것입니다. 저도 어려운 일이 있을 때마다 자주 그렇게 했고 얼마나 큰 위로가 되었는지 모릅니다. 하나님이 은생이를 이처럼 사랑하사!
이 신앙으로 저는 버릇없는 막동이 신자가 되어 버렸습니다. 고3때보다도 못한...
하나님의 영광은 제 삶에서 사라졌습니다. 온 동네에 드러내놓고 노골적으로 그렇게 살지는 않았지만 사실은..., 오직 예수, 오직 하나님이 아니라, 오직 '나'가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당연히 '나에게' 복을 베푸시고, 내 허물을 오래 참으시고, 언제라도 제가 'I am sorry, God, in the name of Jesus.'라고만 하면 돌아온 탕자를 기뻐 맞아주신 아버지처럼 눈물로 기뻐하실 것을 믿고 있습니다. 제 이야기의 중심에는 하나님은 조연(명목상 주연, 사실상 조연)이고 내가 주인공이 되었습니다.
작은 교회를 다닐 때는 알지 못했던 제 모습을 큰 교회에 출석하면서 적나라하게 발견하게 됩니다. 즉, 예배 후에 사람들이 우르르 밀려 나올 때 앞쪽에 조금만 빈틈이 생기면 쏙 밀고 들어가는..., 마치 지하철 아침 출근길같은 모습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사랑하는 사람들(기독교인들) 사이에서도 하나님은 나'만' 특히 사랑하시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예배당에서도 기둥 뒤나 맨 안 쪽 자리에 앉을 생각이 없습니다. 난 소중하니까요.
4.
하나님이 여전히 저 한 사람을 소중히 여기시고 사랑하시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나... 그 목적은, 몇 십억 인구의 중국에 이른바 소공자(귀한 독자 독녀)들이 득실 대는 것처럼, 나만 소중한 기독교인들을 만들어내는 것이 아님도 너무나 사실입니다. 저는 그것을 잊고 오랫동안 살아온 것 같습니다. 하나님은 복음전파와 그를 통한 인류 구원을 위해 한 사람 한 사람을 창조하시고 구원하셨다는 것을 잊고 살았습니다. 제가 고3때 하나님께 했던 약속을 잊었습니다. 기억은 계속 하고 있었지만, 제 삶과 행동은 그 약속을 잊고 있었습니다. 오늘 이 아침에 제자훈련 과정의 독서를 통해 제게 주시는, 해머로 내려치는 듯한 메시지는... "예수님은 나'만' 사랑하신 것이 아니다." 입니다. 이 메시지가 이 아침에 저를 울게 합니다. 마지막 소망마저 사라져서가 아니라, 그동안 왜 그렇게 모든 일에 2%씩 어긋났었는지, 그 이유를 알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사랑하셔서 독생자를 주셨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믿으면 구원을 받습니다. 나'만'이 아닙니다. 또, 여러분'만' 사랑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저'도' 사랑하십니다.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입니다. 하나님이 이기적이거나 사랑하는 척하고서 종국에는 혼자 영광을 가로채는 얌체같은 상관이어서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선물의 이면에 자기 영광의 치사한 동기가 숨겨져 있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스스로에게, 서로에게 솔직해져야 합니다. 도대체 하나님 이외에 이 세상 누가 영광을 받을만한 사람이 있겠습니까? 우리의 복은 다른 사람을 향한 복의 통로가 되어야 하며, 종국에는 하나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기 위한 것이어야 합니다. 사랑하고 축복합니다, 여러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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