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오늘날 사회에서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이 첨예하게 대립하고 있습니다. 예수를 믿는 사람들 사이에서도 보수주의자들과 진보주의자들 간의 대립이 존재합니다. 이곳에도 보수주의 신앙을 가진 분도 있고, 진보주의 신앙을 가진 분들도 있을 수 있습니다.
오늘날 보수주의 신앙을 따르며 자처하는 사람들이 왜 세상으로부터 조롱거리가 되었을까요? 그것은 그들의 신앙이 윗부분만 존재하기 때문입니다. 누구보다 열심히 예수를 믿고, 열심히 헌금하고, 열심히 봉사하지만, 그들의 관심은 오직 내 남편, 내 아내, 내 자식이 잘되기만을 바라기 때문입니다. 세상이 어떻게 돌아가든, 내 자식들만 유학 보내 스펙을 쌓아 성공시키면 된다는 생각이 우선시됩니다.
반면, 진보주의 신앙을 가진 사람들은 왜 비판을 받을까요? 그들은 아랫부분만 있습니다. 사람을 사랑하지만, 자신의 정의로 사랑하려 합니다. 하나님의 윗부분이 있어야 하나님의 사랑으로 사랑할 수 있는데, 나의 공의, 나의 판단으로만 사랑하려 하니 서로의 정의가 충돌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스도인이란 윗부분과 아랫부분이 모두 갖춰져 있어야 합니다. 사도 바울도 하나님을 사랑한다며 예수 믿는 사람들을 핍박했던 적이 있습니다. 그러나 다메섹에 이르러 예수님께 구원받은 후, 그는 변화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울(바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울아, 네가 왜 나를 핍박하느냐?" 바울은 예수를 핍박한 적이 없었지만, 예수님은 바울이 예수를 믿는 사람들을 핍박한 것을 자신을 핍박한 것으로 동일시하셨습니다. 이후 바울의 일생은 하나님의 사랑(윗부분)을 위해, 사람 사랑(아랫부분)을 구현하며 헌신하는 삶이 되었습니다.
바울은 로마서 1장 14절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헬라인이나 야만인이나 지혜 있는 자나 어리석은 자에게 내가 다 빚진 자다." 그는 헬라인과 야만인을 포함한 모든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전도 여행을 다녔습니다. 바울은 특정 계층만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모든 사람에게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려는 그의 사역은 끝에서 끝까지 이어졌습니다.
우리의 일터는 하나님의 사랑을 사람들에게 전하는 1차적인 공간입니다. 우리가 무슨 일을 하든, 그 일은 단순히 경제 활동으로 끝나지 않아야 합니다. 그것은 곧 우리의 성직이 되고, 일터는 성지가 될 수 있습니다. 이 세상에 살아가는 사람들은 모두 서로에게 빚을 지고 있습니다. 우리는 과거 수많은 사람들이 닦아놓은 길을 걸으며 그들의 노력 덕분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들에게 빚진 자로서, 우리는 다음 세대를 위해 이 땅을 일구어야 합니다.
세금은 단순히 뜯기는 돈이 아닙니다. 그것은 이웃과 더불어 살기 위한 첫 번째 나눔입니다. 우리가 납부하는 세금은 도로, 전기, 상수도, 하수도, 교육, 복지 등의 인프라를 구축하고, 국민 모두가 그 혜택을 누리게 합니다. 많은 이들이 탈세한 돈을 헌금으로 내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기뻐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의 돈이 아닌, 바른 삶을 요구하십니다.
우리는 모두 빚진 자들입니다. 내가 받은 혜택은 나 혼자의 노력으로 이루어진 것이 아닙니다. 팀 쿡이 사회에 재산을 환원한 것처럼, 우리는 우리가 받은 것을 다시 사회에 돌려야 할 채무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타심은 내 자랑이 되지만, 채무감은 반드시 갚아야 할 빚입니다.
그리스도인은 일터에서도 신앙을 실천하며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야 합니다. 불량 상품을 내거나 고객에게 사기를 치는 것은 거룩한 삶과 어울리지 않습니다. 우리의 실천을 통해 세상은 진정으로 변화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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