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 나라를 열망하며 살아갑시다 (2024년 표어)
저는 2024년에 사도행전의 말씀을 함께 나누면서 “하나님 나라를 열망하라”라는 주제로 말씀을 살폈습니다. 한 해 동안 바울에 대해 좀 더 깊이 알게 된 시간이었던 것 같습니다. 혼자 있을 때 바울에 관한 책을 여러 가지 보기도 하고, 묵상도 하면서 바울과 많이 친해진 느낌이었습니다.
오늘 본문인 사도행전 28장은 바울이 사도행전의 마지막 장면에서 어떤 모습으로 등장하는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 모습이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굉장히 의미가 있습니다. 우리가 새해를 어떤 마음으로 맞이해야 할지, 오늘 본문이 잘 말해 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본문을 통해 “새해를 어떤 마음으로 살아가야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대해 두 가지 마음을 나누고자 합니다.
과거의 아픔을 털어내라
첫 번째,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의 마음은 “과거의 아픔을 털어내는 것”입니다. 과거의 아픔을 털어내고 새해를 살아가는 것입니다.
연도만 바뀐다고 새해가 아닙니다.
새로운 마음이 있어야 새해입니다.
바울은 유라굴로 풍랑 때문에 구원의 여망조차 다 사라졌다고 했어요. 그 배에 타고 있던 276명 전부가 죽는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약속대로 모든 사람이 구조되었습니다. 구조된 다음에 이 섬이 어딘지 알아보니, 그 섬이 바로 ‘멜리데’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1절 말씀을 보면, “우리가 구조된 후에 보니 그 섬은 멜리데라 하더라.” 이렇게 되어 있죠.
지도를 한 번 보시면, 멜리데 위치가 이탈리아 남쪽에 있는 작은 섬입니다. 지금으로 말하면 몰타 (Malta) 섬이에요. 제주도의 6분의 1 정도 되는, 굉장히 아름다운 섬입니다. 이 섬까지 유라굴로 광풍을 타고 800km 정도 쓸려 와서 도착하게 된 것이죠.
이들은 지금 너무 춥습니다. 헤엄쳐 나왔고, 바닷바람이 불고, 너무 지쳐 있어요. 그런데 원주민들이 나와서 큰 불, 따뜻한 불을 피워 주었습니다. 모두 둘러앉아서 불을 쬐고 있는데, 바울이 앞에 있는 나뭇가지를 들고 불속에 던졌더니 그 나무더미 사이에 있던 독사 한 마리가 뜨거우니까 뛰쳐나와서, 바울의 손을 물어버린 것입니다.
그 순간, 그곳의 원주민들이 바울의 손을 보고 “아, 이 사람은 뭔가 죄가 있어서 결국 이렇게 뱀에게 물리는구나. 곧 죽을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들은 당시 “공의”가 있다고 믿었기 때문에, 죄지은 사람은 반드시 벌을 받게 된다고 여겼던 거예요. 그런데 아무리 봐도 바울이 멀쩡한 겁니다. 바울은 뱀에 물렸는데도 아무렇지도 않다는 듯이, 뱀을 털어 버립니다.
5절 말씀에 “바울이 그 짐승을 불에 떨어 버리며 조금도 상함이 없더라.” 하고 되어 있어요. 그냥 아무렇지도 않게 털어 버렸습니다. “이게 뭐야? 겁도 안 내네?” 하고 그대로 털어 버린 거죠. 그러자 원주민들이 “독이 아직 퍼지지 않았으니, 한 번 지켜보자.” 하고 기다렸는데, 별 이상이 없으니까 이번에는 “아, 이 사람은 살인자가 아니라 신(神)이다!” 하고 판단이 바뀐 겁니다.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가던 바울, 복음을 전하기 위해 여기까지 왔던 바울을 보는 사람들의 평가는 이렇게 늘 바뀌어 왔습니다. 바울 자신은 그냥 무덤덤하게 믿음의 길을 걸어갈 뿐인데, 세상 사람들은 그를 두고 “운이 좋다.”, “살인자다.”, “신이다.” 하고 평가가 시시각각 달라진 거예요. 그런데 바울은 단 한 번도 그들의 반응이나 말에 따라서 좌지우지되지 않았습니다. 이게 굉장히 중요합니다. 우리가 이 땅을 살아가면서 여러 가지 평가를 받을 수 있지만, 하나님의 사람들이 믿음대로 살다가 어떤 말을 듣더라도, 그 말에 흔들리지 않아야 한다는 겁니다. 바울은 그냥 털어 버렸습니다.
바울은 이전에도 루스드라에서 “신이다!”라는 소리를 들은 적이 있어요. 거기서 사람들이 “제우스와 헤르메스가 인간의 모습으로 왔다!”라고 소란을 피우기도 했죠. 그런데 바울이 “나도 너희와 같은 사람이다.” 하고 만류했더니, 그들이 갑자기 돌을 들어 바울을 쳤습니다. 바울이 죽은 줄 알고 성 밖에 내던져 버렸는데, 바울은 일어나서 다시 성 안으로 들어가 복음을 전했습니다. 마치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요. 이번에도 “신이다!”라는 말을 듣지만, 그냥 털어 버리고 아무렇지도 않게 지나갑니다.
이 장면이 우리에게 주는 첫 번째 메시지는, “과거를 털어버리고 새해를 맞이하라.”는 것입니다.
한 해 동안 우리가 믿음으로 살아오면서 수많은 오해와 상처, 아픔도 겪었을 겁니다. 내 의도는 그런 게 아니었는데, 관계 속에서 어려움을 당하기도 했을 것이고, 육체적으로나 경제적으로나 진로나 가정 문제로 어려운 일들도 많이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새해를 맞이하면서 그 과거의 상처와 아픔을 그대로 안고 들어가면, 그것은 새해가 아니라 ‘묵은해’를 이어 가는 것에 불과합니다. 달력에 적힌 연도만 바뀌었다고 새해가 되는 게 아니에요. 새 마음으로 들어가야 새해가 되는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과거에 어떤 일이 있었든 그 모든 것을 과거로 남겨 두고, 새로운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축복합니다. 바울은 그 순간 독사에게 물렸는데, 아무렇지도 않게 뱀을 털어 버립니다. 바울은 사람들의 말이 아니라, 성경대로 행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승천하시기 직전 제자들에게 주신 말씀이 있어요. 마가복음 16장 15절부터 18절 말씀입니다. “온 천하에 다니며 만민에게 복음을 전파하라… 뱀을 집어 올리며 무슨 독을 마실지라도 해를 받지 아니하며…” 이런 말씀을 주셨죠. 복음을 위해 살아가는 사람들에게는, 원치 않는 독사 같은 어려운 일들이 닥칠 수 있지만, 그대로 털어 버리고 가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함께하신다.”는 믿음으로, 새로운 땅으로 나아가라는 겁니다.
원주민들은 바울을 보고 “신이다!”라고 말했습니다. 곧, “이 사람은 우리랑 차원이 다르다.”라고 본 것이지요. 사실 바울은 신이 아니지만, “차원이 다른 삶을 살기로 결단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이 땅의 가치, 이 땅의 기준, 이 땅이 말하는 행복이나 성공을 좇는 걸 포기하고,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좇기로 결단한 사람들입니다. 그러니까 우리가 세상 사람들 눈에 남다르게 보이는 게 맞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오해받거나 상처를 입을 수도 있습니다. 그래도 털어 버려야 합니다. 그런 말에 흔들릴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 말씀을 붙잡고 나아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축복합니다.
바울은 이렇게 “새로운 땅”을 향해 다시 배에 올랐습니다. 11절 말씀을 보면, “석 달 후에 그 섬에서 겨울을 난 뒤에, 다시 배를 타고 로마로 출항한다.”라고 되어 있어요. 그 배 이름이 ‘알렉산드리아’ 배입니다. 혹시 전에 보셨는지 모르겠는데, 유라굴로 풍랑 때문에 몰타(멜리데) 섬까지 쓸려 오기 전에 타고 있던 배의 이름도 ‘알렉산드리아’였어요. 똑같은 이름이지만, 이전 배는 이미 침몰했습니다. 지금 이 배는 똑같은 이름을 달고 있지만, ‘디오스구로’라는 머리 장식을 해 둬서 구분을 합니다.
‘디오스구로’는 제우스의 쌍둥이 아들이라는 뜻이에요. 그 쌍둥이는 캐스토르와 폴룩스인데, 캐스토르는 풍랑과 바다의 안전을, 폴룩스는 상업과 부(富)를 담당하는 신이라는 거죠. 그 상징을 배 앞에 붙여 놓았다는 건, “이 항해의 안전과 풍요를 신들이 책임진다.”는 뜻이었어요. 그런데 누가는 이걸 왜 굳이 성경에 기록했을까요? “우리 인생의 항해를 누가 책임지는가?”라는 질문을 던지기 위해서라고 봅니다. 과연 쌍둥이 신들이 우리를 지키는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지키시는 것인가?
276명의 사람이 다시 이 배를 타고 로마로 향합니다. 이 사람들은 불과 3개월 전에 유라굴로 광풍을 만나 다 죽을 뻔했어요. 배에 실었던 모든 짐을 다 버리고, 결국은 배까지 버리고 뛰어내렸지요. 그들은 이미 경험했을 겁니다. 이 세상의 신들이 우리를 지킬 수 없다는 것을요. 그들이 살아남았던 이유는 딱 하나였어요. 바울의 믿음, “나는 하나님을 믿노니, 내게 말씀하신 그대로 되리라.” 그 믿음 하나 붙들고 뛰어들었던 겁니다. 심지어 배에서 내리기 직전에 바울은 성만찬을 베풀어서, 풍랑 가운데서도 하나님을 찬양하고 떡을 떼며 육체와 영혼을 예수 그리스도의 몸과 피로 채웠습니다. 그 힘으로 다 구원받았어요. 그러니 똑같은 ‘알렉산드리아’라는 배를 타지만, 이번에는 디오스구로 같은 우상을 믿는 게 아니라, 하나님을 믿으며 인생을 항해해 갈 거라고 저는 믿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제 2025년이란 이름의 배를 타고 출항하기 시작했어요. “우리는 무엇을 믿으며, 누구에게 인생을 맡기며, 이 새해를 출발할 것인가?” 세상이 말하는 성공의 기준이나 우상이 아닌, 흔들림 없는 하나님께 인생을 맡기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축복합니다.
차원이 다른 삶을 살아가라.
사람들의 '소리'에 반응하지 마라. 나쁜 것은 잊어라
담대하게 거침없이 하나님 나라를 전파하라
두 번째, 새해를 맞이하는 우리에게 필요한 마음가짐은 “담대하고 거침없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는 것”입니다. 14절 말씀을 보면, “거기서 형제들을 만나…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라고 되어 있어요. 드디어 로마 땅에 들어가게 된 겁니다. 바울은 얼마나 마음이 뜨거웠을까요? 약속의 땅, 사명의 땅에 드디어 들어간 거예요.
성경에서 “이와 같이 로마로 가니라.” 이 한 마디가 이루어지기까지 무려 26년이 걸렸습니다.
- 예루살렘 - 다메섹 - 아라비아 3년 - 다소 10년 - 안디옥 교회 1년 = 14년
- 1차 선교 (행 13:4~14:28. 약 2년)
- 2차 선교 (행 15:36~18:22. 약 3년)
- 3차 선교 (행 18:23~21:14. 약 4년)
- 예루살렘에서 2번, 가이사랴에서 3번 증언
바울의 로마행, 4차 선교 (행 21:27~28장. 약 3년)
바울은 사도행전 9장에서 다메섹 도상에서 예수님을 만나고, 이후로 3년간 아라비아 광야에 있었고, 예루살렘에 잠깐 갔다가 핍박당해 다소에 내려가 거의 10년 넘게 묻혀 지냈습니다. 그러다 바나바가 그를 찾아 안디옥으로 데려와 1년간 같이 목회했고, 그 뒤로 1·2·3차 선교여행을 하며 9년을 보냈어요. 예루살렘에 가니 억울하게 누명을 쓰고 3년 동안 재판을 받으며 갇혀 있었습니다. 그러고 나서 배를 타고 로마로 오기까지, 합하면 26년이에요.
1차 선교 여행은 2년간 진행되었습니다. 먼저 안디옥에서 출발했고, 그다음에는 실루기아와 바보로 갑니다. 바보에 가서는 바 예수를 만나서 영적 전쟁을 치르게 되죠. 그 후에 비시디아 안디옥으로 이동하고, 거기서 사람들이 돌을 던지려 하자 피해서 루스드라로 갑니다. 루스드라에서는 실제로 돌을 맞기까지 합니다. 그다음에 더베로 가서 복음을 전하다가 다시 안디옥으로 복귀하는 것으로 1차 선교가 마무리됩니다. 약 2년 동안의 선교였어요.
그다음에 바로 2차 선교를 시작하는데, 이 선교 기간은 3년입니다. 출발할 때부터 어려움이 있었습니다. 바나바와 선교팀을 구성하는 과정에서 ‘마가를 데리고 갈 것이냐 말 것이냐’를 두고 갈등이 생겼고, 결국 바나바와 바울이 갈라지게 되었죠. 바울은 길리기아 다소, 곧 자기 고향으로 먼저 갔습니다. 그 후 더베와 루스드라로 이동하는데, 루스드라에서 평생의 동역자가 될 디모데를 만납니다. 그리고 무시아와 비두니아, 비시디아 안디옥을 지나려 했으나, 성령께서 아시아 지역에서 복음을 전하지 못하도록 막으셨어요. 드로아에서 기다리고 있는데, 환상 중에 마케도니아 사람이 “건너와서 우리를 도우라.” 하기에, 유럽으로 건너가 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기 시작합니다.
그곳(빌립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매를 맞고 감옥에 갇히기도 했지만, 다시 나와 데살로니가로 갑니다. 거기서 3주 동안 복음을 전하는데, 사람들이 바울을 잡겠다고 하자 바울은 베레아로 피신했어요. 베레아 사람들은 말씀을 정말 잘 받는 이들이었는데, 그곳까지도 바울을 잡으러 오는 사람들이 있어 결국 아덴(아테네)으로 도망갑니다. 아덴에서 복음을 전하다가 아레오바고 언덕에서도 변론을 했고, 이어서 고린도로 도망쳐 가서, 그곳에서 아굴라와 브리스길라라는 부부를 만나 함께 지내게 되죠. 그리고 겐그레아 등을 거쳐 2차 선교가 마무리됩니다. “정말 놀라운 이야기”라고 할 만큼 많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렇게 다시금 3차 선교를 시작하는데, 이번에는 4년 동안 이어집니다. 안디옥에서 출발해서 에베소로 가는데, 그 시기가 정말 꿈만 같은 시절이었습니다. 에베소 두란노 서원에서 2년간 복음을 전했는데, 바울이 손수건이나 앞치마를 올려 기도만 해도 병이 낫고 악한 영들이 떠나는 놀라운 역사가 벌어졌습니다. 마술책을 태우는 등 큰 회개의 운동도 일어났죠. 그 후 빌립보와 헬라(그리스) 지역, 드로아 등을 다시 거칩니다. 드로아에서는 바울의 설교 도중에 유두고라는 청년이 졸다가 떨어져 죽기도 했지만, 바울이 기도하여 그를 살려 내죠. 그러고 나서 밀레도에 들러 에베소 장로들에게 작별 설교를 한 뒤, 여러 지역을 지나 예루살렘으로 돌아옴으로써 3차 선교가 마무리됩니다. 세 번의 선교 여행을 모두 합치면 약 9년이 되는 셈입니다.
그런데 예루살렘에 도착하자마자 바울은 억울한 누명을 쓰고, 다섯 번의 재판을 받게 됩니다. 그 재판 기간만 3년이나 되었습니다. 그리고 결국에는 죄수(罪囚)가 되어 배를 타고 로마로 이송되지요. 이렇게 모든 과정을 합하면, 바울이 다메섹 도상에서 부름을 받았던 이후로 무려 26년 만에 사도행전 28장에 기록된 대로, “이와 같이 로마에 들어가니라”가 이루어진 것입니다.
바울이 이처럼 로마에 들어갔을 때 마음이 어땠을까요? 두려울 것도 없었을 것입니다. 그의 안에는 더 이상 대안이 없었고, 방법도 없었어요. 모든 것이 실패한 줄 알았고, 늘 쫓겨 다니고 매 맞고, 고생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일들이 결코 의미 없는 시간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합하여 선을 이루신다”는 그 말씀이 바울 삶 속에 그대로 이루어진 것입니다. 그렇게 바울은 “이와 같이”라는 한 문장으로, 그 모든 26년의 여정을 마치 요약하듯 고백합니다. “나는 계획도 없고, 대책도 없고, 길도 몰랐지만, 하나님은 방법이 있으셔서 이와 같이 인도하셨다.” 이것이 바울이 깨달은 진리였습니다.
우리 인생도 '이와 같이'.... ' 예측하지 못할 일들이 밀려올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어디로 가야 할지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지만, 자기와 함께 가시는 분이 누구이신지를 알았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이와 같이 인도하시는 하나님의 은혜를 아는 사람은 이 땅 가운데 담대하게, 거침없이 하나님 나라를 위해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도 지난 한 해 동안 살아오면서, 이해할 수 없는 아픔과 고통의 시간들이 있었을 거예요. 아픔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그 시간에는 왜 이런지 이해도 못 하지만, 우리 하나님을 정말 믿는다면, “우리 인생에는 낭비되는 시간이 없다.”는 결론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의 나라에는 “쓰레기통”이 없다고 해요. 쓸데없이 버려지는 것이 없다는 뜻입니다. 우리 인생에 허락하신 모든 시간과 사건은 다 의미가 있습니다.
바울이 로마에 들어갔을 때, 그는 담대했습니다. 그래서 본문의 마지막, 31절을 보면,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담대하게 거침없이 가르치더라.”라고 끝이 납니다. 하나님의 나라를 전파하며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을 말했어요. 사실 “하나님의 나라”와 “주 예수 그리스도에 관한 모든 것”은 같은 이야기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 나라를 가지고 이 땅에 오셨기 때문이에요.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나라를 열망한다는 말은 곧 예수 충만한 인생을 사는 것과 동일한 이야기입니다.
지금 바울은 로마에서 2년 동안 셋집에 머물며, 자신에게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고 있습니다. 가택 연금 상태로 군인 한 명과 쇠사슬에 묶여 있지만, 복음은 매이지 않았어요. 로마 안에서 사방으로 퍼져 나갔습니다. 그리고 사도행전은 여기서 열린 결말로 끝이 납니다. 재판 결과가 어떻게 됐는지 나오지 않아요. 그 말은, 사도행전의 역사가 끝나지 않았다는 겁니다. 열려 있는 거예요. 그 사도행전의 역사가 2천 년 동안 이어져서, 지금 전 세계 교회들, 그리고 우리 교회에도 계속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 오실 그날까지, 이 역사는 지속되도록 하나님께서 허락하신 것이죠.
너는 복이 될지라 You will be a blessing!
우리는 그 은혜의 대행진 안에 초대받았습니다. 우리의 삶의 여정과 모든 시간을 통해서, “사도행전적 역사”를 써 내려가는 하나님의 사람이 되길 축복합니다. 바울이 가는 곳마다 진짜 복이 임했어요. 복음은 곧 복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복덩어리”가 되길 원하십니다. 우리를 통해, 세상에 왜곡된 복이 아니라 하나님의 진정한 복이 흘러가길 원하세요. 그 인생을 사는 것이 바로 사도행전의 역사를 이어 가는 것이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2025년을 기대하시길 축복합니다. 우리가 상상할 수도 없고, 우리가 계획할 수도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복을 경험하게 되는 한 해가 되길 축복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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