만성질환 예시 - 지속적인 관찰과 인내가 필요합니다
어떤 분이 저한테 전해 준 얘긴데, 이분이 어떤 만성질환을 앓고 있어요. 만성질환을 앓아서 건강검진을 받으러 갔는데, 건강검진을 해 주는 의사와 대화를 하게 되었대요. 그 의사가 하는 말이, 그 질환이 현대의학으로도 잘 낫지 않는데 약을 처방하더라도 고통스럽다고 하더래요. 그러면 환자분들이 민간요법을 찾아다니기 시작한다는 거예요. 민간요법을 하다가 다시 병원으로 돌아오는데, 어떨 땐 너무 악화되거나 어떨 때는 진정이 안 되다가, 시간이 지나서 나을 때쯤 다시 정규 의료 체계로 돌아온다고 합니다. 그러니까 어떤 질환이 생겨서 주류 의학으로 치료하다가, 시간이 걸려서 잘 낫지 않으니까 민간요법으로 갔다가, 다시 돌아오거나 혹은 완전히 망치고 돌아오는 경우도 있다는 거죠. 그래서 그 의사가 “질병은 잘 낫지 않는 것 같아도 오랫동안 지켜보면서 갖고 계셔야 합니다. 한 3년에서 5년 정도 지나면 적응이 되고 호전될 수도 있습니다.”라고 조언했다는 이야기를 들었어요.
과거 한국 개신교의 성장 배경 - 도시화 과정에서의 대안 가족 역할
오늘날 현대 개신교, 그러니까 우리나라 개신교 얘기만 하자면(가톨릭은 제외하고), 한국 개신교가 청년들이나 젊은 세대에 상당히 둔감한 것 같아요. 자기들이 하고 싶은 얘기만 한다는 거예요. 우리나라 개신교가 이렇게 확장될 수 있었던 60년대, 70년대, 80년대, 90년대 초까지는 이유가 있었습니다. 예를 들어, 60~70년대에 도시화가 일어나면서 농촌에 있던 젊은이들이 서울, 부산, 대구, 광주 같은 대도시로 올라오는데, 가족이 없잖아요. 전통사회에서는 가족이 심적으로 지지해 주고 보호해 주고 연대해 줬는데, 젊은이들이 도시 빈민촌에 살거나 공장에 다니거나 할 때, 그 옆에서 대안 가족을 만들어 준 게 교회였습니다. 여기서 서로 따뜻하게 위로해 주고 격려해 주고 먹을 것도 나눠 먹고, “착하게 살자, 선하게 살자, 하나님 안에서 살자”라고 말하면서, 농촌을 떠나 도시로 온 사람들에게 대안 가족과 더 나은 삶의 전망을 제시해 줬던 거죠.
오늘날 개신교가 청년에게서 멀어진 이유 - 자기주장에만 몰두, 상식과 유리된 낡은 종교
그런데 지금 한국 개신교는 젊은 사람들의 고통이 무엇인지 들으려고 하기보다 자기 얘기만 하려 하고, 또 대형교회라고 하는 곳들은 젊은 사람들의 일반 상식과는 다른 얘기도 많이 해요. 정치적으로 편향된 모습을 보이기도 하고요. 이런 모습들이 젊은 세대가 가진 정치 감각, 과학적 태도, 자기 필요와 욕망 등에 대해 둔감하다는 인상을 줍니다. 그래서 젊은 세대 입장에서는 굳이 개신교에 나갈 필요가 없다고 느끼게 되죠. 이런 것들이 복합적인 원인이 아닐까 싶어요.
기독교 본연의 모습 : 계산을 초월한 사랑
기독교라는 종교를 초기부터 지금까지 쭉 살펴보면, 뻔하다고 할 수도 있지만, 그 안에는 굉장히 따뜻한 ‘사랑’이라는 것이 있었고, 때로는 그 사랑이 한계를 넘어서는 감동을 주는 면이 있었거든요. 우리나라 초창기 한국 개신교가 크게 발전할 때, 콜레라 팬데믹이 돌았어요. 그때 개신교는 과학적 접근방법을 동원했을 뿐만 아니라, 당시 전체 콜레라를 통제했던 분이 에비슨(Oliver R. Avison, 1893년 조선으로 온 캐나다 출신 의학박사)이라고 하는 세브란스(Louis Henry Severance 기부금) 제중원을 담당했던 선교사이자 의사였습니다. 아주 훌륭한 분이었죠. 그리고 동쪽에는 에비슨, 서쪽에는 언더우드가 전염병 병원을 세워서 전염병 환자들을 돌봤는데, 양반 청년들이 콜레라 환자가 생기면 그 환자를 옮기는 앰뷸런스 역할까지 했다는 거예요. “아니, 양반이 그걸 왜 해?” 하고 주변에서 의아해했죠. 그때 사람들이 “왜 저렇게까지 하는가?”라고 했다는 말이 인상 깊어요. “왜 저 사람들은 저렇게까지 하지?” 하는 거죠.
에비슨이라는 분도 토론토대 의과대학 교수였고, 토론토라는 도시가 지금도 살기 좋은 멋진 곳인데, 시장 주치의도 지냈고 명예와 편안함, 안정이 어느 정도 보장된 분이거든요. 그런데 왜 조선에 왔겠어요? 이해하기 어렵죠. 지금 서울에 있는 의과대학 교수, 서울시 주치의를 맡고 있는 분이, 당시 이름도 잘 모르는 제3세계 식민지이면서 의료시설도 개발되지 않았고 대학도 제대로 없는 곳에 와서 의과대학을 만들고 병원을 세우라고 하면, 그걸 왜 하겠어요? 계산적으로는 도저히 이해할 수가 없는 거죠. 그런데 에비슨은 그렇게 했고, 언더우드도 그렇게 했어요.
언더우드는 우리나라 최초 선교사 중 한 분인데, 이분이 언더우드 타자기 회사 집안의 일원이었거든요. 당시에 미국에 2대 타자기 회사가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언더우드였어요. 이분은 미국에서 살면 얼마든지 편하게 살 수 있는 사람이었어요. 여러 가지 에피소드가 있지만, 다 말하진 않겠습니다. 그런데 왜 하필 조선에 왔을까요? 일본도 아니고 중국도 아닌데. 이게 놀라운 거예요. 계산을 넘어서는 사랑의 실천을 용기 있고 지혜롭게 하는 것, 그게 기독교의 핵심이었는데, 한국 개신교가 그런 것들을 잃어버리고 자기주장을 자꾸 하고, 근본주의적 주장을 하면서 거기에 따르라고만 하는 것 같다는 거예요.
물론 지금도 한국 개신교가 큰 종교단체로서 한국 사회에 기여하고 있는 부분이 없지는 않습니다. 혹시 찾아보시면 좋겠는데, 우리나라 사회복지기관 중 약 60%가 사립기관이고, 그 사립기관 중 대다수가 개신교 계통이에요. 그러니까 비리도 많이 일어나지만, 동시에 좋은 일도 많이 하는 거거든요. 그런데 뉴스 같은 데서 보도되는 내용을 보면 불미스러운 일이 많이 나오기도 하죠. 그리고 교회의 가르침이 사회에서 이상하게 들리고, “예수가 했던 말이 도대체 무슨 뜻인가”를 제대로 번역하거나 해석해 주지 못하는 것 같아요. 그러니까 개신교가 점점 소외되고, 쪼그라들고 있는 게 아닌가 싶어요.
번역되지 못한 복음, 소외되는 신앙
말을 정리하자면, 자기 신앙의 가르침의 핵심을 오늘날 현대 언어로 번역해 내지 못하고 있다는 겁니다. 그리고 기독교가 갖고 있던 원래의, 한계를 넘어서는 사랑의 실천을 사람들 앞에 보여 주지 못하고 있어요. 게다가 젊은이들의 고통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기보다는, 자기 말을 더 하고 싶어 한다는 겁니다. 이런 것들이 독선적이고 배타적으로 보이며, 답답하고 비이성적으로 보이는 한국 개신교의 모습이 아닌가 생각해 봅니다.
사랑이라는 건, 우리나라 옛날말로 하면 “고이는 것”이라고도 표현했잖아요. 고인다는 건 바라보는 거예요. “내가 저 사람을 어떻게 할 것인가”가 아니라, “저 사람이 무엇을 원하고, 어떻게 해 주기를 바라는지”를 경청하고 수용하고, 따뜻한 눈으로 바라봐 주는 것에서 시작해야 되는데, 맨 처음 사람들에게 다가갈 때 뭐라고 하냐면, “너는 죄인이다”라든지, “너는 문제가 많다”, “너는 어떻게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얘기하니까, “난 열심히 살고 있는데, 왜 나한테 와서 이런 이야기를 하지?” 하면서, 죄책감과 수치심을 먼저 건드리는 거예요. “인간은 죄인이다” 이런 얘기부터 시작하는데, 그게 무슨 뜻인지 맥락을 상실한 채로 “너는 죄책감과 수치심을 가져라”라고 하니까, 와닿지 않는 거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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