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교자: 주경훈 목사 (오륜교회 성탄예배. 2025년 12월 25일)
성경 본문: 요한복음 9장 1~7절 (실로암 맹인 치유 표적)
가장 낮은 곳으로 오신 예수님, 지푸라기 같은 우리에게 오신 예수님
복된 성탄절을 맞이하여 주님께서 주시는 은총이 우리 심령 가운데 가득한 예배 시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말씀을 준비하며 시 한 편을 만나게 되었는데, 잠시 읽어드리겠습니다. 정호승 시인의 <지푸라기>입니다.
나는 길가에 버려져 있는 게 아니다.
먼지를 일으키며 바람 따라 떠도는 게 아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당신을 오직 기다릴 뿐이다.
내일도 슬퍼하고 오늘도 슬퍼하는
인생은 언제 어디서나 다시 시작할 수 없다고,
오늘이 인생의 마지막이라고
길바닥에 주저앉아 우는 당신이
지푸라기라도 잡고 다시 일어서길 기다릴 뿐이다.
물과 바람과 맑은 햇살과
새소리 섞인 진흙이 되어
허물어진 당신의 집을 다시 짓는
단단한 흙벽돌이 되길 바랄 뿐이다.
이 시를 읽는데 예수님이 묵상되었습니다. 지푸라기는 누가 봐도 하찮아 보입니다. 예수님이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을 때, 그 모습이 마치 지푸라기처럼 보였을 것입니다. 예수님은 가장 낮은 마구간, 짐승들이 깔개나 먹이로 쓰는 지푸라기가 가득한 곳에 오셨습니다. 그렇게 오신 이유는, '지푸라기라도 잡고 다시 일어서기를 원하는 자들' 곁에 있기를 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혹시 우리 인생 가운데 오늘이 마지막이라고 생각하며 길바닥에 주저앉아 있는 분이 계십니까? 그렇다면 가장 낮은 자의 모습으로 오신 예수님을 붙잡고 다시 한번 일어나는 복된 성탄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그 지푸라기를 벽돌의 재료로 삼아 인생의 집을 다시 짓는 모든 자마다 예수님의 충만한 은혜를 경험하기를 바랍니다.
배경: 초막절과 예수님의 선포 (물과 빛)
오늘 말씀은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한 시각장애인이 길바닥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 인생이 새로워지는, 그 유명한 실로암 맹인 치유 사건입니다. 이는 요한복음에 등장하는 일곱 가지 표적 중 여섯 번째 표적입니다.
이 여섯 번째 표적과 성탄절은 기가 막힌 연관성이 있습니다. 본문으로 들어가기 전에 여러분의 이해를 구할 포인트가 하나 있습니다. 저는 오늘 '시각 장애인' 대신에, 성경의 표현대로 '맹인'이라는 단어를 사용하겠습니다. 이는 단순한 신체적 장애를 넘어 영적인 상태를 의미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요한복음의 표적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시간'과 '장소'가 중요합니다.
첫째, 오늘 성경 본문의 장소는 '길가'였습니다.
예수님은 길을 가시던 중, 날 때부터 맹인 된 사람을 보셨습니다. 바로 앞장(요한복음 8:59)을 보면, 예수님은 성전에서 유대인들이 돌로 쳐 죽이려 하자 급히 피하여 나가시는 중이었습니다. 매우 다급한 도망의 상황에서도 예수님은 맹인을 지나치지 않으셨습니다.
둘째, 시간은 '초막절'이었습니다.
요한복음 7, 8, 9장은 초막절이라는 같은 시기에 일어난 사건입니다. 초막절은 건기 끝자락에 비를 구하며 메시아를 기다리는 절기입니다. 초막절에는 두 가지 중요한 의식이 있는데, 바로 '물'과 '빛'입니다.
- 물(Water):
제단에 물을 뿌리며 광야에서 반석의 물을 주신 하나님을 기념하고, 농사에 필요한 비와 오실 메시아가 부어주실 성령을 구하는 의식입니다. 이 의식 중에 있는 이스라엘 사람들에게 예수님은 "누구든지 목마르거든 내게로 와서 마시라. 나를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7-38)"고 선포하셨습니다. 즉, 너희가 기다리는 그 '물'의 실체, 메시아가 바로 나임을 선포하신 것입니다. - 빛(Light):
초막절 마지막 날 밤,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인의 뜰'에 있는 네 개의 큰 기둥에 횃불을 밝히고 밤새 춤을 춥니다. 이는 광야의 불기둥(하나님의 임재)과 세상의 빛으로 오실 메시아를 상징합니다. 예수님은 이튿날 아침 그 현장에서 "나는 세상의 빛이니 나를 따르는 자는 어둠에 다니지 아니하고 생명의 빛을 얻으리라(요 8:12)"고 선포하셨습니다.
‘여인의 뜰’은 헤롯 성전의 동쪽에 자리한 넓은 안뜰로, 이름과 달리 이스라엘 남녀 모두가 들어와 기도하고 가르침을 들었던 곳입니다. 그 안쪽으로는 이스라엘 남성의 뜰, 더 안쪽은 제사장들의 뜰이 이어졌고, 가장 바깥에는 이방인의 뜰이 있었습니다. 여인의 뜰에는 나팔 모양 입구를 가진 헌금함들이 놓였고, 라비들이 토라를 강론했으며 복음서의 마지막 주간에 예수께서도 이곳 행각에서 가르치신 것으로 전해집니다. 이 구역은 솔로몬 성전에는 없었으나 헤롯 성전의 증축으로 독립된 뜰로 형성되었다

예수님은 초막절의 핵심 이미지인 물과 빛을 가져와, 당신이 바로 그 실체이심을 선포하셨습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를 참람하게 여겨 돌로 치려 했고, 예수님은 피하셨습니다. 그리고 도망가는 급박한 길가에서 날 때부터 맹인 된 자를 만나, 당신이 선포하신 '세상의 빛'과 '생명의 물'의 능력을 그에게 쏟아부어 치유하심으로 당신이 누구신지 증명하셨습니다.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세 가지 이유
오늘 본문을 통해 예수님이 이 땅에 오신 이유 세 가지를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어둠 속에 있는 사람을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쫓기는 다급한 상황에서도 맹인을 그냥 지나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주님이 오신 이유가 어둠 가운데 있는 자들에게 빛이 되기 위함이었기 때문입니다. 날 때부터 맹인 된 이 사람은 세상에 살지만 세상을 한 번도 본 적 없는, 철저한 어둠 속에 있는 자였습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어둠 속에 사는 우리의 모습입니다. 우리는 맹인모상(盲人摸象)처럼, 영적인 눈이 감겨 자기 소견대로 세상을 더듬으며 살아왔습니다. 비참한 것은 자신이 못 본다는 사실조차 모른다는 것입니다. 성탄절은 그 어둠 속으로 빛이 들어오는 날입니다. 구약에는 맹인이 눈을 뜬 기적이 없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그날에 맹인의 눈이 볼 것이며(사 29:18)"라고 예언했습니다. 즉 맹인의 눈을 뜨게 하는 것은 오실 메시아만의 표적입니다. 예수님은 어둠을 몰아내기 위해 참 빛으로 오셨습니다. 어둠을 내쫓는 유일한 방법은 빛을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둘째, 우리를 통해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오셨습니다.
제자들은 맹인을 보고 "누구의 죄 때문입니까? 자기 죄입니까, 부모의 죄입니까?"라고 물었습니다. 그들은 고통을 '죄의 결과'라는 율법적, 인과응보적 관점으로만 해석했습니다. 이는 과거 지향적이며 죄책감에 묶이게 만듭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에게서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나타내고자 하심이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는 고통의 원인(과거)이 아닌 고통의 목적(미래)에 집중하는 시선입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신 일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한 구원의 역사'이었습니다.
테니스 선수 아서 애시(Arthur Ashe)의 일화가 있습니다. 윔블던 우승자였던 그는 수혈 사고로 에이즈에 감염되었습니다. "왜 하나님이 당신에게 이런 나쁜 병을 주셨느냐"는 팬의 질문에 그는 이렇게 답했습니다. "전 세계 수천만 명의 아이들이 테니스를 치지만, 윔블던 우승컵을 드는 건 극소수입니다. 제가 우승컵을 들었을 때 '왜 저입니까?'라고 묻지 않았습니다. 축복에 대해 '왜 나인가' 묻지 않았다면, 고난에 대해서도 묻지 않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그 가운데 하나님이 하실 일에 집중할 뿐입니다."
고통의 원인을 다 알 수는 없지만, 분명한 진리는 예수님 안에서 온전한 회복이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의 고통을 통해 구원의 역사를 이루십니다.
제자들은 고통의 원인을 '죄'에서 찾으려 했지만(과거 지향적), 예수님은 고통을 통해 하나님이 하실 일에 집중하셨습니다(미래 지향적). 고난 중에도 우리를 회복시키실 주님을 바라봐야 합니다.
셋째, 생명의 샘으로 인도하고자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치유하실 때 침을 뱉어 진흙을 이겨 눈에 바르셨습니다. 이는 천지창조 때 흙으로 사람을 빚으신 하나님의 손길을 재연하신 것입니다. 창조주로서 망가진 인간을 다시 빚어 회복시키시는 행위입니다. 또한 '바르다'는 단어는 기름 부음을 뜻하는 단어와 어원이 같습니다. 그리스도(기름 부음 받은 자)께서 은혜의 기름으로 맹인의 수치를 덮어주신 것입니다.
'바르다(위에 기름을 바르다, 덧발라 바르다) ἐπιχρίω (에피크리오, epichrió)'
= ἐπί (에피, epi, 전치사, ~위에, 위로, 덮어서, 공간적·상징적으로 “위에서 임하는 것”)
+ χρίω (크리오, chrió, 동사, 기름을 바르다, 기름을 붓다, 기름부어 세우다)
** χριστός (크리스토스, Christos, χρίω(기름 붓다)에서 파생, 기름부음을 받은 자, 히브리어 מָשִׁיחַ (마시아, 메시아)의 헬라어 번역)
👉 크리오(χρίω) → 크리스토스(χριστός)
그리고 "실로암 못에 가서 씻으라"고 하셨습니다. 실로암은 '보냄을 받았다'는 뜻입니다. 이 연못은 전쟁 중에도 성 안에 생명수를 공급하는 곳으로, 구약시대부터 생명을 공급하는 메시아를 상징했습니다. 주님은 맹인을 실로암으로 보내셨습니다. 즉, 생명의 빛이자 생명수 되신 예수님 자신에게로 보내신 것입니다. 그가 실로암에 가서 씻었을 때, 최초로 빛이 들어왔고 세상을 보게 되었습니다.
기원전 701년경 유다 왕 히스기야 시대에 앗수르 왕 산헤립의 예루살렘 침공을 대비한 방어 공사로 건설되었다. 예루살렘의 주요 수원인 기혼 샘이 성 밖에 위치하므로 물을 성 안으로 우회 유도(533m 히스기야 수로)한 전시 생존 국가 인프라였다. 실로암 연못이 수로의 종착지. ‘실로암’ 뜻은 히브리어 שִׁלֹחַ (실로아흐) “보냄을 받은 자”이다. (구 연못에 대한 설명)
그러나 예루살렘 인구 증가에 의해 신 연못을 계단식으로 만들어 다수가 동시에 내려가 씻을 수 있게 설계했다. '보냄의 신학'
결론: 성탄의 증인이 됩시다
이 치유된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가장 강력한 증인(표적)이 되었습니다. 초막절에 사람들이 기다리던 그 물과 빛의 실체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임을 온몸으로 증명한 것입니다.
유대인들은 메시아를 기다리면서도 정작 오신 예수님을 알아보지 못하고 돌을 던졌습니다. 우리 또한 성탄절을 맞이하면서 그 의미를 모른 채 지나간다면 그들과 다를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오늘은 성탄절입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어둠을 몰아낼 '세상의 빛'으로 오셨습니다. 주님은 우리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할 '생명의 물'로 오셨습니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으로 계신 분이 있다면, 그 지푸라기가 되어주기 위해 가장 낮은 곳에 오신 주님을 붙잡으십시오. 주님의 빛이 내 눈을 열고, 주님의 생수가 내 인생의 가뭄을 끝내는 날이 되기를 바랍니다.
우리를 볼 때마다 세상 사람들이 "저 사람에게 예수의 빛이 있다, 생명의 샘이 있다"고 말할 수 있는, 예수님을 보여주는 증인 된 삶을 살아가시기를 축복합니다.
(찬양 및 축도) "참 반가운 성도여 다 이리 와서... 엎드려 절하세 구주 나셨네."
세상의 빛이요 생명의 물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와 하나님의 사랑과 성령의 교통하심이, 참 빛과 생수 안에서 살아가기를 다짐하는 모든 주의 백성들 머리 위에 영원토록 함께 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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