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John) 6:16~21 (참고: 마가복음 6:45~52) 설교자: 주경훈 목사 (Rev. Ju Gyeong-hun)
1. 롬퐁(Rompong)의 표류, 그리고 인생의 풍랑
인도네시아에는 '롬퐁(Rompong)'이라는 전통적인 물고기 잡이 배가 있습니다. 동력이 없는 뗏목 형태의 배로, 바다 위에 띄워놓고 불을 밝혀 물고기를 유인하는 장치입니다. 2018년, 19세 청년 알디(Aldi)는 이 롬퐁을 타고 바다를 지키는 일을 하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거센 풍랑이 밧줄을 끊어놓았고, 이 멍텅구리 배는 망망대해로 떠내려가기 시작했습니다. 일주일치 식량과 연료밖에 없었던 그는 무려 49일 동안 바다 위를 표류했습니다.
그는 배 위에서 물고기를 잡아먹고, 옷으로 바닷물을 걸러 마시며 버텼습니다. 너무나 두렵고 외로워 바다에 뛰어들고 싶은 충동이 일 때마다, 그는 어머니가 가르쳐 준 성경을 읽고 찬송을 불렀습니다. 결국 그는 괌(Guam) 근처 해상에서, 떠내려온 곳으로부터 무려 2,400km 떨어진 곳에서 구조되었습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 인생도 때로는 이 롬퐁처럼 예기치 못한 풍랑을 만납니다. 사도 바울(Paul)이 만난 유라굴로(Euroclydon) 광풍처럼, 혹은 오늘 본문의 제자들이 만난 풍랑처럼 말입니다. 우리는 묻습니다. "도대체 왜 이런 일이 내게 일어나는가?" 이유는 다 알 수 없습니다. 그러나 분명한 진리가 하나 있습니다. 하나님 안에서 일어나는 풍랑은 우리를 삼키려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깨우려는 것입니다.
2. 성공의 자리에서 광야로 내모시는 이유
오늘 본문은 요한복음의 다섯 번째 표적, 즉 '물 위를 걸으시는 예수님' 사건입니다. 이 사건 바로 앞에는 그 유명한 '오병이어(Feeding the 5000)'의 기적이 있었습니다.
오병이어를 경험한 군중들은 흥분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보며 모세(Moses)가 예언한 "나와 같은 선지자(Deut 18:15)"라고 확신했습니다. 그리고 요한복음 6장 15절을 보면, 그들은 예수님을 '억지로' 잡아 임금으로 삼으려 합니다. 이것은 위험한 신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순종하려는 것이 아니라, 내 배를 불려줄 해결사, 내 소원을 들어줄 왕을 원했던 것입니다. 이것은 '자기도취적 신앙'입니다.
예수님은 이 위험을 간파하셨습니다. 이것은 공생애 초기 광야에서 마귀가 "천하 만국과 영광을 주겠다"며 유혹했던 시험과 본질적으로 같습니다. 그래서 주님은 즉시 제자들을 재촉하여 배를 태워 바다로 보내십니다(막 6:45). 성공과 환호로 들뜬 세상의 열기로부터 제자들을 분리해, 차라리 풍랑이 이는 차가운 바다로 보내신 것입니다.
풍랑은 아무나 경험하는 것이 아닙니다. 무리들은 푸른 초장에서 떡을 먹지만, 오직 제자들만이 거친 바다에서 주님을 깊이 만나는 풍랑을 경험합니다. 그러므로 인생의 풍랑을 만났다면 낭비하지 마십시오. 지금은 내 영혼이 깨어날 기회입니다.
3. 첫째, 둔해진 믿음을 깨우시기 위함입니다
마가복음은 이 사건의 원인을 이렇게 기록합니다.
"이는 그들이 그 떡 떼시던 일을 깨닫지 못하고 도리어 그 마음이 둔하여졌음이러라" (막 6:52)
기적을 보고도 마음이 둔해진 제자들을 깨우기 위해 주님은 풍랑을 허락하셨습니다.
① 풍랑 중에도 주님은 우리를 보고 계십니다.
제자들이 풍랑을 만난 시간은 '밤 사경', 즉 새벽 3시에서 6시 사이였습니다. 가장 칠흑같이 어두운 시간입니다. 갈릴리 어부 출신인 그들이 시속 5km로 2시간이면 갈 거리를, 5~6시간 동안 사투를 벌여도 나아가지 못했습니다(요 6:19). "주님 말씀에 순종해서 왔는데, 왜 이런 고생을 해야 하나?" 원망이 터져 나올 수 있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마가복음 6장 48절은 말합니다. "바람이 거스르므로 제자들이 힘겹게 노 젓는 것을 보시고..." 주님은 산 위에서 기도하시면서도, 풍랑 속의 제자들을 '보고' 계셨습니다. 사진은 깜깜한 암실에서 선명하게 인화됩니다. 우리 믿음도 인생의 가장 어두운 밤에 가장 선명하게 빛을 발합니다.
② 우리가 당한 풍랑이 주님이 우리에게 다가오시는 길이 됩니다.
제자들에게 풍랑은 절망이었지만, 예수님께는 제자들에게 다가오시는 '길'이었습니다(요 6:19). 평온할 때는 보이지 않던 주님이, 고난의 파도가 치니 그 파도를 밟고 우리에게 오십니다. 여러분이 겪는 고난과 역경(Adversity)을 뒤집어 보십시오. 그것은 하나님을 만난 놀라운 경력(Career)이 될 것입니다.
③ 주님이 풍랑을 밟고 있으십니다 - 고정관념을 깨뜨리십니다.
제자들은 유령인 줄 알고 소리를 질렀습니다. 그들이 두려워한 것은 풍랑보다, 상식을 깨고 물 위를 걸어오시는 예수님이었습니다. 우리가 가진 이성, 경험, 상식이라는 '고정관념'은 때로 '고장 난 관념'이 됩니다. 신앙은 날마다 내 안의 고정관념을 무너뜨리는 것입니다. 풍랑 속에 갇히지 말고, 그 풍랑을 발아래 밟고 서 계신 크신 주님을 바라보십시오.
4. 둘째, 예수님이 누구신지 바로 알게 하려 하심입니다 - 예수님에 대한 바른 믿음을 주시기 위함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바다 위로 걸어오셔서 제자들에게 "지나가려 하셨다(Intended to pass by)"고 기록합니다(막 6:48). 그냥 지나치려 하신 걸까요? 아닙니다. 구약 성경에서 '지나가다'라는 표현은 하나님의 현현(Theophany), 즉 하나님이 당신의 영광을 드러내실 때 쓰이는 전문적인 표현입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구했을 때 하나님은 그의 앞으로 지나가셨고(출 33:22), 로뎀나무 아래 쓰러진 엘리야에게 힘을 주실 때도 그 앞을 지나가셨습니다(왕상 19:11).
사람들이 예수님을 그저 '모세 같은 선지자' 정도로 생각할 때, 예수님은 이 풍랑 위에서 선포하고 계신 것입니다. "나는 선지자가 아니다. 나는 모세가 만났던, 엘리야가 만났던 바로 그 창조주 하나님이다."
두려워하는 제자들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이르시되 내니 두려워하지 말라 하신대" (요 6:20)
여기서 "내니(It is I)"는 헬라어로 '에고 에이미(Egō eimi)', 즉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라는 뜻입니다. 떨기나무 불꽃 가운데서 모세에게 당신을 계시하셨던 하나님의 이름입니다. 이 놀라운 믿음의 비밀은 배부른 오병이어의 현장에서는 배울 수 없었습니다. 오직 죽음이 엄습하는 풍랑의 한가운데서만 경험할 수 있는 은혜입니다.
5. 결론: 주님이 오르시면 '곧' 도착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풍랑은 우리를 죽이러 오는 것이 아닙니다. 둔해진 우리 영혼을 깨우고, 내 인생의 주인이 누구신지 선명하게 보여주기 위해 찾아옵니다.
요한복음 6장 21절을 보십시오.
"이에 기뻐서 배로 영접하니 배는 곧 그들이 가려던 땅에 이르렀더라"
밤새도록 노를 저어도 제자리였던 배가, 주님을 영접하자마자 '곧(Immediately)' 목적지에 도착했습니다. 몇 년째 끙끙거리며 풀리지 않던 인생의 문제, 가정의 문제, 진로의 문제가 있으십니까? 내 힘으로 노 젓기를 멈추고, 풍랑을 밟고 오신 주님을 배에 태우십시오.
주님이 내 인생의 배에 오르시는 순간, 지루했던 풍랑은 끝이 나고, 우리는 소원의 항구에 닿게 될 것입니다. 풍랑을 낭비하지 마십시오. 이 풍랑은 영혼의 찬물이 되어 잠든 우리를 깨울 것입니다. 오늘도 풍랑을 다스리시는 주님의 품 안에서 승리하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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