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경 본문 : 요한복음 6장 5~13절, 설교자 : 주경훈 목사님
주제: 우리 인생의 부족함을 채우시는 주님(예수님)의 은혜
서론: 부족함, 은혜가 머무는 기적의 공간
우리는 흔히 부족함을 불행이라 여기고, 빨리 벗어나야 할 고통으로만 생각합니다. 세상은 우리에게 완벽해야 한다고, 더 많이 가져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래서 먹고사는 문제에서 오는 경제적 부족함이나, 사람들에게 인정받지 못하는 명예의 부족함을 느낄 때 우리는 위축됩니다.
그러나 성경은 전혀 다른 관점을 우리에게 제시합니다. 성경은 부족함을 단지 이 악물고 견디라고 말하지 않습니다. 도리어 그 부족함이야말로 하나님의 은혜가 담기는 기적의 공간이 된다고 선포합니다. 우리의 약점은 단순한 결핍이 아니라, 하나님의 가능성이 시작되는 지점입니다.
성경은 우리의 부족함이 곧 하나님의 은혜를 담는 '기적의 바구니'가 된다고 말씀합니다. 이 놀라운 영적 진리는 요한복음에 기록된 기적들을 통해 명확하게 드러납니다. 요한복음의 앞선 세 가지 표적을 살펴보십시오.
첫 번째 표적인 가나의 혼인 잔치에서는 포도주가 떨어졌습니다. 잔치의 기쁨이 바닥난 부족함의 현장이었습니다. 두 번째 표적인 왕의 신하의 아들 치유 사건에서는 아이의 생명이 꺼져가고 있었습니다. 건강과 생명의 결핍이었습니다. 세 번째 표적인 베데스다 연못가의 38년 된 병자는 스스로 움직일 힘이 전혀 없는, 육체적 능력의 처절한 부족함 속에 있었습니다.
이 세 사건의 공통점이 무엇입니까? 모두 인생의 가장 부족하고 결핍된 순간에 일어났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부족한 공간이 주님을 만났을 때,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되고, 죽어가던 생명이 살아나며, 멈췄던 다리에 힘이 생기는 은혜의 공간으로 변화되었습니다. 무엇이든지 간에 주님을 만나면 그 결핍의 자리가 곧 기적의 자리가 된다는 사실입니다.
사복음서가 모두 주목한 오병이어의 기적
앞서 언급한 세 가지 표적은 오직 요한복음에만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 본문의 오병이어 사건은 마태, 마가, 누가, 요한 등 사복음서 저자 모두가 빠짐없이 기록한 유일한 이적입니다. 그 누구도 이 사건만큼은 생략할 수 없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사건이야말로 예수님이 누구시며, 주님이 우리의 인생을 어떻게 돌보시는지를 가장 명확하게 보여주는 결정적인 표적이기 때문입니다.
비록 우리가 서 있는 곳이 오묘하고 작은 곳일지라도, 주님의 손이 움직이면 그곳은 기적의 도구가 될 수 있습니다. 복잡한 머리와 답답한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오셨다면, 오늘 말씀을 통해 그 마음이 평안해지고 정리되기를 소망합니다.
본론 1: 오병이어 표적의 배경과 예수님의 질문
오병이어 표적이 일어난 배경을 살펴봅시다.
- 장소: 디베랴 바다 건너편, 벳세다 빈들이었습니다.
- 때: 유월절이 가까운 때였습니다.
- 질문: 예수님은 빌립에게 "어디서 떡을 사서 이 사람들을 먹이겠느냐?"라고 질문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답을 모르셔서가 아니라, 제자들의 믿음을 시험하기 위해 질문하셨습니다.
본론 2: 오병이어 표적을 통해 배우는 영적 진리
오병이어 표적을 통해 우리에게 알려주시는 영적 진리는 무엇일까요?
1) 예수님은 우리의 부족한 믿음을 채우시길 원하십니다.
- 빌립의 대답: 빌립은 현실적이고 논리적으로 접근하여 "200데나리온으로도 부족합니다"라고 답했습니다. 이는 인간적 한계에 갇힌 대답이었습니다. 주님은 '장소'를 물으셨는데, 빌립은 '돈'을 이야기했습니다. 빌립의 마음에는 "돈이 있어야 떡집을 찾죠. 돈도 없는데 무슨 소용입니까? 주님은 참 비현실적이십니다"라는 항변이 담겨 있었을 것입니다.
- 예수님의 의도: 예수님께서는 빌립 안에 있는 계산적이고 부족한 믿음을 드러내어 완전하게 채워주시고자 질문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의 수학적 능력을 시험하신 것이 아니라, 그의 부족한 믿음을 스스로 발견하게 하려고 시험하신 것입니다. 주님은 그런 빌립의 이성과 논리에 갇힌 믿음에 도전하고 계십니다.
- 시험의 의미: 예수님이 우리를 시험하실 때, 그것은 우리에게 수치심을 주려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의 믿음을 성장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시험이 올 때 우리는 "위기가 왔다"라고 말할 것이 아니라, "기회가 왔다"라고 선포해야 합니다. "이 시험을 통해 나는 주님을 더 깊이 알게 될 것이다."라고 고백하십시오. 하나님은 비이성적인 분이 아니라 '초이성적'인 분이시며, 비현실적인 분이 아니라 '초현실적'인 분이십니다. 이성과 현실은 중요하지만,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은 그 안에 갇히지 않습니다. 모든 시험의 정답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 빌립의 한계: 빌립은 이성과 논리, 현실에 갇혀 있었습니다.
2) 모든 시험의 답은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 안드레의 반응: 안드레는 어린아이의 오병이어를 가져왔으나 "이것이 이만한 사람에게 얼마나 되겠습니까?"라며 가능성을 보지 못했습니다. 안드레 역시 주님의 의도를 온전히 파악하지 못했습니다. 빌립과 안드레 모두 "답이 없습니다", "부족합니다"라며 답답한 상황을 토로할 뿐입니다.
- 안드레의 한계: 안드레는 현실의 벽을 넘지 못했습니다. 출제자의 의도를 모르고 오히려 바보 취급하고 있었습니다.
- 정답: 그러나 주님은 답을 몰라서 물으신 것이 아닙니다. 주님 자체가 해답이시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그저 주님이 정답이심을 믿고 붙들면 됩니다.
3) 부족함을 통해 문제를 해결하십니다.
- 예수님의 지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이 사람들로 앉게 하라"고 지시하셨습니다. 제자들은 이해할 수 없었을 것입니다. 음식이 없는데 왜 앉히시는가? 그러나 주님은 제자들의 순종을 통해 일하기를 원하셨습니다.
- 감사기도: 예수님은 오병이어를 들고 축사하셨습니다. 아직 현실에 아무것도 일어나지 않았지만, 감사기도를 드렸을 때 기적이 시작되었습니다. 감사하면 감사한 내용을 눈으로 볼 수 있게 됩니다. 감사한대로 일이 이루어집니다. 선감사입니다.
- 결과: 결국 모든 사람이 배불리 먹고도 열두 바구니가 남았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원의 크기가 아니라 누구의 손에 붙잡혀 있느냐입니다. 예수님의 손에 있을 때 작은 것도 기적이 됩니다. 여러분, 인생의 부족함을 묵상하지 말고 주님의 크심을 묵상하십시오.
결론: 부족함은 하나님의 은혜가 담기는 기적의 공간입니다
우리는 흔히 완벽함을 추구하며 살아갑니다. 그러나 플라톤이 말했듯이, 행복의 조건은 재산, 외모, 명예, 체력, 말솜씨 모두 '조금 부족한' 상태에 있습니다. 완벽함이 아닌 조금 부족한 상태는 과도한 욕망에서 오는 불안을 피하고, 평범함 속에서 부족함을 메우려는 노력을 통해 진정한 행복을 찾게 합니다.
우리는 부족함을 인정할 때 비로소 회복이 시작됩니다. 부족함은 하나님의 가능성입니다.
김해영 선교사의 이야기를 기억하십니까? 그녀는 134cm의 척추 장애를 가졌으나 주님을 만난 후 자신감을 얻고 세계장애인 기능대회에서 금메달을 획득하고 콜롬비아 대학원에서 사회복지학 석사학위를 받았습니다. 그녀는 "내 인생의 고난과 결핍은 위기가 아니라 하늘의 문을 여는 열쇠였습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인생에 닥친 '고난'은 하나님이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시려고 세팅해 놓으신 선물이며, 인생에 아쉬운 '결핍'은 사람에게 하나님을 잊지 말고 살아가라는 히든 메시지입니다.
영화 '믿음의 승부' 속 '데스 크롤' 훈련처럼, 우리의 코치 되시는 예수님께서는 "포기하지 마라, 내가 너와 함께한다, 너의 부족함은 내 능력이 머무는 통로다"라고 말씀하십니다.
모든 시험의 답은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주님 안에서 우리의 부족함은 차고 넘치는 은혜의 현장이 될 줄 믿습니다. 계산기를 내려놓고, 눈앞의 현실보다 크신 주님을 바라보며 나아가는 저와 여러분이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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