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요한복음(John) 5:1~17 설교자: 주경훈 목사
1. 긴츠키: 깨어짐의 미학
일본의 전통 공예 가운데 '긴츠키(Kintsugi, 金継ぎ)'라는 것이 있습니다. 도자기는 충격에 약해서 쉽게 깨지는데, 이 긴츠키는 깨진 조각들을 금박으로 이어서 새롭게 만드는 예술 기법입니다.
이 기법의 유래는 15세기, 무로마치 막부의 쇼군(Shogun)이었던 아시카가 요시마사(Ashikaga Yoshimasa)의 일화에서 시작됩니다. 쇼군은 자기가 아끼던 찻잔이 깨지자, 그 찻잔을 만들었던 중국에 보내어 보수를 요청했습니다. 그런데 돌아온 찻잔을 보니 철사로 엮어 놓아서 너무나 볼품이 없었습니다(마치 스테이플러로 찍은 것처럼). 실망한 쇼군이 다시 일본 장인들에게 "이 찻잔을 아름답게 고쳐달라"고 부탁했습니다. 장인들은 고심 끝에 깨진 모든 틈을 옻으로 메우고 그 위에 금가루를 발라 이어 붙였습니다. 그랬더니 처음의 찻잔보다 더욱더 아름답고 가치 있는 예술 작품으로 재탄생하게 되었습니다.
긴츠키의 철학은 단순하지만 깊습니다. "상처는 감춰야 할 흠이 아니라, 새로운 아름다움이 피어나는 자리이다."
깨어짐의 흔적은 사라지지 않았지만, 그 흔적이 도리어 은혜의 통로가 된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인생에 주어진 상처를 무조건 덮거나 없애지 않으십니다. 대신 그 상처의 틈바구니 속에 함께 머무십니다. 우리 안에 계신 하나님의 빛이 깨진 틈을 통해 발산될 때, 우리는 비로소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인생으로 탄생하게 되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등장하는 38년 된 병자의 삶이 바로 그러했습니다. 이 사건은 단순한 기적이 아니라,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보여주는 '표적(Sign)'입니다. 이 표적의 의미를 두 가지 질문을 통해 깊이 살펴보겠습니다.
2. 첫 번째 질문: 누구를 고치셨는가? (38년의 의미)
예수님께서 베데스다(Bethesda) 연못에서 고치신 사람은 '38년 된 병자'였습니다. 성경에서 38년이라는 숫자는 매우 특별한 의미를 가집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 하여 광야에서 보낸 시간은 총 40년입니다. 그중 시내 산에 도착해 율법을 받고 머문 시간이 약 1년, 그리고 가데스 바네아(Kadesh Barnea)에 도착하기까지 2년이 걸렸습니다. 거기서 정탐꾼들의 부정적인 보고로 인해 하나님은 그들이 광야를 방황하게 하십니다.
"가데스 바네아에서 떠나 세렛 시내를 건너기까지 삼십팔 년 동안이라 이 때에는 그 시대의 모든 군인들이 여호와께서 그들에게 맹세하신 대로 진영 중에서 다 멸망하였나니" (신 2:14)
즉, 38년은 율법을 받았으나 불순종하여, 광야에서 고통받으며 죽어간 세대를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베데스다 연못은 성전에 들어가기 전 몸을 씻는 '정결 예식'을 위한 장소, 즉 율법의 장소였습니다. 38년 된 병자는 율법의 자리에 누워 있었으나, 자신의 힘으로는 구원(성전)으로 나아가지 못하고 죽어가던 율법 아래의 인생을 보여줍니다.
이것은 요한복음 2장의 '가나 혼인 잔치' 표적과 연결됩니다. 물이 변하여 포도주가 될 때 쓰인 도구가 무엇입니까? 바로 '돌 항아리'입니다.
"거기에 유대인의 정결 예식을 따라 두세 통 드는 돌항아리 여섯이 놓였는지라" (요 2:6)
이 돌 항아리 6개는 유대인의 정결 예식, 즉 율법을 상징합니다. '6'은 불완전한 숫자입니다. 율법의 항아리로는 잔치의 기쁨을 이어갈 수 없었습니다. 베데스다는 이 돌 항아리의 확장판입니다. 아무리 거대한 시스템(베데스다)과 율법이 있어도, 예수님의 은혜가 없이는 구원에 이를 수 없음을 보여줍니다.
주님은 38년 된 병자에게 찾아오셔서 일방적인 은혜를 부어주셨습니다. "일어나 네 자리를 들고 걸어가라." 율법의 굴레에 매여 있던 자를 해방시켜 은혜의 사람으로 만드신 것입니다.
[예화: 아버지, 저예요]
저는 어릴 적부터 두 자녀에게 늘 강조했습니다. "고등학교 때까지만 부모로서 너희를 키워준다. 졸업과 동시에 독립이다. 이 집에 계속 살려면 월세를 내야 한다." 자녀가 하나님 안에서 자립적인 인생을 살길 바라는 마음에서의 교육관이었습니다. 그런데 첫째가 고3이 되어 그날이 다가오자, 아이가 말합니다. "아빠, 그냥 살면 안 돼요? 나갈 데도 없고 준비도 안 됐어요. 무슨 아빠가 그래요?" 옆에 있던 둘째도 거듭니다. "맞아요, 무슨 아빠가 그래요?"
그때 한 목사님의 말씀이 떠올랐습니다. 우리가 훗날 천국 문 앞에 섰을 때, 주님이 "너는 누구냐?"라고 물으시면 무엇이라 대답하시겠습니까? "저는 오륜교회 성도였고요, 봉사도 했고요, 헌금도 했고요..." 자신의 스펙이나 행함을 나열하시겠습니까? 아닙니다. 우리가 해야 할 말은 딱 한 마디입니다.
"아버지, 저예요(Father, it's me)."
그 한마디면 족합니다. 자격은 행함으로 증명되는 것이 아닙니다. 자녀라는 관계, 예수 그리스도의 보혈로 맺어진 그 관계 하나면 충분합니다. 38년 된 병자가 아무 공로 없이 은혜로 나음을 입었듯, 우리도 "아버지, 저예요" 하며 주님 품에 안기는 은혜의 자녀임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3. 두 번째 질문: 언제 고치셨는가? (참된 안식일)
예수님은 하필이면 안식일(Sabbath)에 이 병자를 고치셨습니다. 유대인들은 병 나은 사람을 축하해주기는커녕, "안식일인데 네가 자리를 들고 가는 것이 옳지 아니하니라"(요 5:10)며 정죄했습니다. 당시 랍비들의 규례(미슈나)에 따르면, 안식일에 '마른 무화과나무 열매 하나' 무게 이상의 짐을 들면 노동으로 간주했습니다. 그들에게는 생명보다 규례가 더 중요했습니다.
예수님은 이들에게 충격적인 선언을 하십니다.
"내 아버지께서 이제까지 일하시니 나도 일한다" (요 5:17)
유대인들은 하나님이 7일째 쉬셨다고 믿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2장 3절을 자세히 보십시오.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
하나님의 안식은 아무것도 안 하고 멈춰 있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6일 동안 창조하신 세계가 아름답게 유지되고 생명이 보존되도록, '복 주시고 거룩하게 하시는 일'을 7일째에도 계속하셨습니다. 생각해 보십시오. 아이를 낳는 것(창조)이 어렵습니까, 낳은 아이를 잘 키우는 것(유지/보존)이 어렵습니까? 둘 다 어렵지만, 부모는 아이를 키우며 땀을 흘리면서도 그 아이가 자라나는 모습을 보며 안식을 누립니다. 만약 하나님이 안식일에 완전히 손을 놓으신다면, 우주는 멈추고 생명은 끝장날 것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세상을 붙들고 계십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이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안식일에도 생명을 살리고 복 주시는 일을 하시니, 나도 38년 동안 망가져 있던 이 사람을 회복시키는 재창조(Re-creation)의 일을 한다."
[적용: 주일 성수의 의미]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일(Lord's Day)은 어떤 날입니까? 단순히 일을 안 하고 쉬는 날이 아닙니다. 내 육체를 위해 썼던 에너지를 멈추고,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새 창조의 역사'에 동참하는 날입니다.
많은 성도님이 저에게 묻습니다. "목사님, 주일날 쉬지도 못하고 설교하시느라 얼마나 힘드세요?" 맞습니다. 육체적으로만 보면 주일은 저에게 가장 고된 노동의 날입니다. 설교를 다섯 번 하고, 회의하고, 성도님들 상담하고 기도해 드리고 집에 가면 말이 안 나옵니다. 그러나 역설적이게도, 주일은 저를 가장 살리는 날입니다. 죽을 수밖에 없는 죄인인 제가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영혼이 살아나는 재창조의 현장에 쓰임 받고 있다는 그 기쁨이 저를 다시 살게 합니다.
교회 곳곳에서 봉사하시는 분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목사님, 주일이 더 바빠요. 더 피곤해요."라고 하시지만, 그분들의 얼굴은 누구보다 밝습니다. 왜냐하면 육체는 피곤해도 영혼은 하나님의 일하심에 동참하며 충만한 안식을 누리기 때문입니다.
4. 결론: 상처가 별이 되는 인생 - 상처, 은혜가 피어나는 자리
주님은 율법의 6개 항아리로는 채울 수 없었던 우리의 부족함을 은혜의 포도주로 채우셨습니다. 38년 된 병자처럼 율법 아래 신음하던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일어나 걸어라" 말씀하시며 참된 자유를 주셨습니다.
우리의 인생에 깨진 틈이 있습니까? 긴츠키처럼, 주님은 그 상처를 금으로 메워 더 아름다운 작품으로 만드십니다. 상처는 흠이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가 피어나고 머무는 자리입니다.
이번 한 주간, 나의 공로가 아닌 은혜를 붙드십시오. 그리고 주일에는 멍하니 쉬는 것이 아니라, 죽어가는 영혼을 살리고 회복시키는 하나님의 재창조 사역에 기쁨으로 동참하십시오. 그때 우리 인생을 묶고 있는 모든 결박이 풀리고, 진정한 안식과 평강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아버지, 저예요." 이 믿음의 고백으로 승리하는 한 주가 되시기를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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