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성장의 공(功)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목회자입니까, 성도입니까, 아니면 하나님입니까?
교회의 실질적 유지·성장은 다수 평신도의 헌신에 의해 이루어지며, 따라서 목회자는 은퇴 시 과도한 공로 의식이나 요구를 내려놓고 조용히 물러나는 것이 마땅하다는 글을 읽었습니다.
이 글의 배경은 한국 교회 현실에서 반복적으로 문제가 된 일들입니다.
세습, 사례나 은퇴 조건 협상, 교회 재정의 사유화....
저도 이런 문제 때문에 오랫동안 다니고 집사 안수를 받았던 교회를 떠난 적이 있습니다.
이 글은 1) 교회의 지속성은 개인 영웅이 아니라 집단적 신앙 실천의 결과라고 인식합니다, 2) 목회자의 설교와 삶이 은퇴 이후의 태도에 의해 자기부정될 수 있음을 지적하기도 합니다. 3) 교인들의 침묵과 인내를 ‘무지’가 아니라 의식적 감내로 해석합니다.
사역의 끝에서 묻는 책임과 겸손
교회는 누구의 공로로 서 있는가?
교회가 하나의 공동체로 존속하고 때로 성장하는 이유를 우리는 흔히 목회자의 설교와 기도, 목회적 헌신에서 찾곤 한다. 물론 목회자의 사역은 교회 공동체에 중요한 영향을 미친다. 그러나 신학적으로 교회는 특정 개인의 능력이나 영적 카리스마 위에 세워진 조직이 아니라, 다양한 지체가 서로를 지탱하며 이루는 그리스도의 몸이다. 교회의 일상적 삶을 가능하게 하는 것은 대다수 성도들의 조용한 참여와 인내, 그리고 눈에 띄지 않는 헌신이다.
교회의 성장은 소유가 아니라 은혜다
부흥과 성장 역시 마찬가지다. 성경은 성장의 주체가 하나님이심을 반복해서 증언한다. 바울은 “나는 심었고 아볼로는 물을 주었으되 오직 하나님께서 자라나게 하셨다”고 고백한다. 이 고백은 특정 사역자의 공로를 상대화하며, 교회의 열매가 인간의 계산이나 성취로 환원될 수 없음을 분명히 한다. 목회자의 사역이 하나님의 역사 안에서 도구로 사용될 수는 있지만, 그 열매를 자신의 소유로 삼을 수는 없다.
목회자의 은퇴는 협상이 아니라 반환이다
이러한 신학적 이해는 목회자의 은퇴를 바라보는 태도에도 깊은 질문을 던진다. 은퇴는 한 사역자가 공동체를 떠나는 행정적 절차가 아니라, 자신에게 맡겨졌던 사명을 하나님과 교회 앞에 다시 돌려드리는 시간이다. 이 과정에서 교회에 조건을 제시하거나, 재정적·제도적 요구를 앞세우는 태도는 사역의 본질을 흐릴 위험이 있다. 교회는 개인의 업적에 대한 보상 기구가 아니라, 하나님께 속한 공동체이기 때문이다.
목회자의 노후는 개인 윤리를 넘어 구조 문제로 풀어야 한다
물론 목회자의 노후와 삶의 안정은 결코 가볍게 여겨질 문제가 아니다. 이는 개인의 신앙 문제라기보다 교단과 교회가 함께 고민해야 할 구조적 책임에 속한다. 그러나 그 책임이 은퇴 시점에서 교회 재정의 사적 요구로 전환될 때, 사역과 소명은 거래의 언어로 오염될 수 있다. 그 순간 설교해 온 청지기 정신과 십자가의 길은 설득력을 잃는다.
침묵으로 교회를 지켜온 성도들을 기억하며 목회자는 낮아져야 한다
돌이켜보면, 오랜 목회 기간 동안의 모든 설교와 판단이 언제나 온전했다고 말할 수 있는 이는 많지 않을 것이다. 성도들은 때로 이해하기 어려운 말들, 시대와 동떨어진 해석, 혹은 상처를 남긴 발언들 앞에서 침묵으로 응답해 왔다. 그 침묵은 무비판이 아니라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인내였을 가능성이 크다. 이 사실을 기억한다면, 은퇴의 자리에서 자신을 높이기보다 공동체 앞에 낮아지는 것이 복음에 더 합당할 것이다.
설교의 마지막 검증은 은퇴 이후의 삶이다
예수는 제자들의 발을 씻기며 “내가 너희에게 행한 것 같이 너희도 행하게 하려 하여 본을 보였다”고 말씀하셨다. 목회의 마지막 역시 그 본을 따르는 자리여야 한다. 조용히 물러난다는 것은 실패나 패배가 아니라, 끝까지 자신을 감추고 사역의 주인을 하나님께 돌려드리는 신앙의 행위다.
목회자의 은퇴가 더 이상 다툼이나 논란의 계기가 아니라, 공동체 전체가 함께 감사와 성찰로 마무리하는 시간이 되기를 바란다. 그것이 교회를 세우는 사역이 끝난 뒤에도, 여전히 복음을 증언하는 삶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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