존경은 관계를 살리지만, 우상화는 신앙을 죽입니다.
존경이라는 이름으로 사람을 하나님 자리에 앉혀 본 적은 없습니까.
그분이 정말 틀릴 수 없는 사람입니까.
아니면, 틀릴 수 없다고 믿고 싶은 사람입니까.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자기 교회의 목사님이나 유튜브 등을 통해 설교를 애청하는 목사님에 대해 강한 존경을 보이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 때마다 항상 마태복음 23장의 말씀을 떠올리며 스스로 경계를 합니다.
“땅에 있는 자를 아버지라 하지 말라.”
이 구절을 두고 간혹 “그럼 낳아주신 아버지도 아버지라 부르지 말라는 말이냐”라는 식의 해석을 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 가정을 무너뜨리려는 의도로 이런 말씀을 하셨을 리는 없습니다. 여기서 예수님이 문제 삼으신 것은 혈연적 아버지가 아니라, 영적 권위를 독점하려는 인간의 태도였습니다.
영적 아버지?
당시 유대 사회를 살펴보면 그 배경이 분명해집니다. 미슈나와 같은 랍비 문헌에는 스승을 육신의 아버지보다 더 높이 공경해야 한다는 규정이 등장합니다. 이유는 이렇습니다.
아버지는 이 땅의 생명을 주지만, 스승인 랍비는 다가올 세상으로 인도해 영생을 주기 때문이라는 논리입니다. 그래서 길에서 물건을 잃어버렸을 때도 아버지의 물건보다 스승의 것을 먼저 찾으라는 규정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이러한 문화 속에서 존경받는 랍비들에게는 ‘아바’, 곧 아버지라는 호칭이 자연스럽게 붙었습니다. 그러나 이는 단순한 존경을 넘어, 인간이 하나님과 사람 사이의 자리를 차지하려는 위험한 구조를 만들어 냈습니다.
예수님께서 경계하신 지점은 바로 여기입니다.
사람이 감히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중보자인 것처럼 군림하며, 영적 아버지 행세를 하는 오만함 말입니다.
사람을 추앙하는 자의 교만
더 미묘한 문제는, 누군가를 ‘아바’처럼 추앙함으로써 생기는 또 다른 형태의 교만입니다. 존경받는 지도자가 반드시 그런 지위를 즐겼다고 단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그를 높이는 사람은, 자신도 모르게 “나는 이렇게 대단한 사람에게 배운 존재”라는 영적 허영심을 채우고 있었을 가능성은 충분합니다. 누군가를 신격화하는 일만큼, 자신의 자존감을 손쉽게 높이는 방법도 드물기 때문입니다.
사람을 존경하는 일은 분명 귀한 일입니다. 그러나 그 존경이 도를 넘어, 그를 비판할 수 없는 신성불가침의 존재로 만들어 버리는 순간, 종교는 타락하고 관계는 병들기 시작합니다.
목회자도, 스승도 결국 우리와 같은 사람입니다. 밥을 먹으면 배가 부르고, 찔리면 피가 나는 존재입니다. 오히려 칭찬과 명예에 더 쉽게 흔들릴 수 있는 연약한 인간일지도 모릅니다. 역사와 현실은 이미 너무 많은 스승들이 그 사실을 증명해 왔습니다.
그러므로 이제는 땅에 있는 사람에게서 아버지를 찾으려 애쓰지 말아야 합니다. 이미 하늘에 참 아버지가 계신데, 굳이 이 땅에서 그 자리를 대신할 존재를 만들어낼 이유는 없습니다.
하나님 아버지가 계십니다
이 글은 목회자를 깎아내리기 위한 글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분들을 ‘대단한 영적 거인’이라는 과도한 제단에서 내려오게 하여,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 존중하자는 제안입니다. 그래야 그분들도 숨을 쉴 수 있고, 우리 역시 불필요한 실망을 겪지 않게 됩니다. 그것이 사람을 사람답게 대하는 진짜 예의이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생각해도, 누군가로부터 “영적 아버지”라는 호칭을 듣는 일은 그리 편안한 일이 아닙니다. 또한 직접 부르지는 않더라도, 특정 목사나 박사, 스승을 추종한다는 사실로 지나친 자부심을 느끼는 태도 역시 결코 건강하다고 보기는 어렵습니다.
하늘에는 이미 참 아버지가 계십니다.
그 사실 하나면 충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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