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한산성 밖을 걷다가 엄지발톱들이 빠진 적이 있습니다.
지난 주말에 교회 순모임에서 야외 행사가 있어 남한산성에 올랐습니다.
아주 오랜만이었습니다. 한동안 남한산성을 찾지 않았던 이유가 있습니다. 2년 전, 남한산성을 얕잡아보았다가 양발 엄지발톱이 모두 빠지는 불상사를 겪었기 때문입니다.
그날은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었습니다. 저는 등산화 끈을 대충 묶은 채, 홀로 마천에서 서문을 향해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서문이 공사 중이라 산성 안으로 들어갈 수 없었습니다. 대신 남문 쪽으로 이어지는 임시 길이 나 있었습니다.
그 길은 너무나 잘 아는 길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성 안쪽 길 대신, 성 밖으로 돌아 북문 쪽으로 가보기로 했습니다.
문제는 성 밖에는 길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비탈은 가팔랐고, 내리막과 오르막이 반복되었습니다. 바닥에는 작은 돌조각들이 많았습니다. 미끄러져 내려갈 때마다 온몸의 하중을 발가락들이 고스란히 받아냈습니다.
그렇게 40분 만에 겨우 북문을 만났습니다. 성 안으로 들어와 버스와 지하철을 타고 집에 돌아오는 내내 발가락이 몹시 아팠습니다. 그리고 나중에야 양쪽 엄지발톱이 모두 빠져버린 것을 발견했습니다. 이후로 병원을 다니며 적지 않은 기간 고생해야 했습니다.
여리고성 둘레길처럼 편하기만 했을까요?
우리는 성경 속 많은 사건들을 너무 쉽게, 혹은 너무 단순하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여리고성도 그렇습니다. 그저 성을 일곱 바퀴 돌고 소리를 지르니 성이 와르르 무너졌다고만 생각할 수 있습니다.
물론 성경에 기록되지 않은 내용을 일부러 상상해 살을 붙이는 것은 매우 위험한 접근입니다. 그러나 저는 개인적으로, 여리고성을 매일 많은 사람이 도는 일이 결코 쉽지 않았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남한산성과 같은 산성은 아니었더라도, 여리고성 주변 역시 어느 정도 비탈이 있었으리라 생각합니다. 고대 가나안의 도시들은 주로 평지보다 높은 언덕 위에 세워졌기 때문입니다. 발걸음을 옮길 때마다 높낮이가 달라지는 불편한 길이었을 것입니다. 길도 성문을 중심으로 발달했을 뿐, 오늘날처럼 잘 정비된 둘레길 데크가 있었을 리도 없습니다.
마지막 날 새벽부터 성을 일곱 번 돌았다면, 정말 말 그대로 ‘돌아버릴’ 정도로 피곤했을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그것은 사람의 힘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으로 주어진 승리임을 분명히 하기 위해, 사람의 힘을 빼는 과정이었을지도 모릅니다.
평탄하지 않은 그 길을 침묵하며 묵묵히 걸었던 시간. 그 자체가 인내와 순종의 시간이었으리라 생각합니다.
남한산성에 가시면 여리고성을 한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다만 안쪽으로 잘 정리된 길이 아니라, 성 밖 수풀을 헤치고 가시는 일은 절대 없기를 축원합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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