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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교 공동체를 평가하는 두 기준: 교리와 권력 구조
대학 시절, 잠실운동장 근처에서 박옥수 목사 집회 전단지를 여러 번 본 적이 있습니다. 당시 제가 섬기던 교회에서는 그 집회를 권장하지 않았기 때문에 깊이 관심을 두지는 않았습니다. 그러나 전단지만 보았을 때는 겉으로 보기에 복음의 핵심을 말하는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이 지점에서 하나의 질문이 생깁니다. 어떤 종교 단체가 성경, 복음, 죄 사함, 구원, 은혜 같은 익숙한 기독교 언어를 사용한다면, 우리는 그것을 어떻게 분별해야 할까요?
기쁜소식선교회 역시 공식 홈페이지에서 자신들을 “성경 말씀만을 믿는 믿음으로 전 세계에 복음을 전하고 있다”고 소개합니다. 겉으로 드러나는 언어만 보면 기존 개신교와 크게 달라 보이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종교 공동체를 평가할 때는 단지 어떤 단어를 사용하는지만 볼 것이 아니라, 그 단어들이 실제로 어떤 의미로 사용되는지, 그리고 그 가르침이 공동체 안에서 어떤 삶과 구조를 만들어 내는지를 함께 보아야 합니다.
저는 종교 공동체를 평가할 때 적어도 두 가지 기준을 구분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나는 교리의 문제이고, 다른 하나는 권력 구조의 문제입니다. 전자는 이단성을 판단하는 기준과 관련되고, 후자는 공동체가 건강한지, 혹은 사이비적으로 운영되고 있는지를 판단하는 기준과 관련됩니다.
1. 교리의 문제: 구원의 확신은 성화를 약화시키는가
기쁜소식선교회에 대한 신학적 비판은 주로 구원론에서 제기됩니다. 물론 “구원은 인간의 행위가 아니라 하나님의 은혜로 받는다”는 말 자체는 정통 개신교의 고백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정통 개신교 역시 인간이 자기 의로 구원받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다고 가르칩니다. 그러나 중요한 쟁점은 그다음입니다.
정통 개신교는 신자가 믿음으로 의롭다 하심을 받는 칭의(Justification)를 하나님의 은혜로 주어지는 단회적 사건으로 이해합니다. 동시에 신자는 구원받은 이후에도 죄와 싸우며 그리스도를 닮아 가는 성화(Sanctification)의 과정을 살아간다고 봅니다. 회개 역시 구원을 얻기 위한 공로가 아니라, 은혜를 받은 신자의 삶 속에서 계속 나타나야 할 신앙의 열매로 이해됩니다.
따라서 어떤 종교 단체를 비판할 때 단순히 “구원을 한순간의 사건으로 본다”는 이유만으로 문제 삼는 것은 충분하지 않습니다. 정통 개신교도 칭의를 단회적 사건으로 이해하기 때문입니다. 더 중요한 질문은 이것입니다.
그 단체는 구원받은 이후에도 신자 안에 남아 있는 죄성과 연약함을 인정하는가. 지속적인 회개와 성화를 신자의 삶에서 필요한 것으로 가르치는가. ‘죄 사함’과 ‘구원의 확신’이 겸손과 감사, 윤리적 책임으로 이어지는가. 아니면 자기 확신과 비판 불능으로 흐를 위험이 있는가.
구원의 확신 자체가 문제는 아닙니다. 오히려 그리스도 안에서 죄 사함의 확신을 누리는 것은 복음의 중요한 은혜입니다. 문제는 그 확신이 “나는 이미 죄 사함을 받았으므로 더 이상 죄에 대해 진지하게 씨름할 필요가 없다”는 방향으로 오해되거나 가르쳐질 때입니다.
그렇게 된다면 복음의 자유는 성화의 열매로 이어지기보다 윤리적 책임의 약화로 변질될 수 있습니다.
2. 권력 구조의 문제: 교리적으로 정통이어도 건강하지 않을 수 있다
교리의 문제와 별도로 보아야 할 것이 공동체 운영의 문제입니다. 이단(異端,Heresy)성이 주로 교리의 문제라면, 사이비(似而非,Pseudo-religion)성은 권력 구조와 통제 방식의 문제입니다.
어떤 공동체가 위험해지는 지점은 비교적 분명합니다. 특정 지도자에게 권위가 과도하게 집중되고, 지도자의 말이 사실상 최종 기준처럼 작동하며, 내부 비판이 불신앙이나 배신으로 취급될 때 공동체는 건강성을 잃기 시작합니다.
재정과 의사결정이 불투명하고, 구성원의 생활이 과도하게 통제되며, 피해가 발생했을 때 피해자보다 조직의 명예를 먼저 보호한다면 그 공동체는 심각한 위험 신호를 보이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이 기준은 특정 단체만을 향한 것이 아닙니다. 정통 개신교 교회들을 포함한 모든 종교 공동체가 스스로에게 적용해야 할 기준입니다.
최근 몇 년간 종교 공동체와 관련된 여러 사건들은 우리에게 불편한 질문을 던집니다. 예컨대 인천의 한 교회에서 생활하던 여고생이 사망한 사건과 관련해, 언론은 합창단장 박 씨가 학대치사 혐의 등으로 재판을 받았고 1심 판결 이후 검찰이 항소했다고 보도했습니다. 이 사건의 최종적 책임 범위와 세부 사실관계는 수사와 재판, 공신력 있는 자료를 통해 확인되어야 합니다. 다만 이 사건은 종교 공동체 안에서 취약한 사람이 어떤 보호 체계 안에 있었는지 묻게 하는 중대한 계기입니다.
우리는 이런 사건 앞에서 단순히 “몇몇 개인의 일탈”이라고만 말해서는 안 됩니다. 물론 개인의 법적 책임은 엄정하게 가려져야 합니다. 그러나 동시에 다음 질문도 필요합니다.
피해자는 어떤 환경에서 생활했는가. 누가 어떤 권한으로 지시하거나 통제했는가. 내부에서 문제 제기가 가능했는가. 외부의 개입과 보호 장치는 왜 작동하지 못했는가. 공동체는 피해자를 보호하려 했는가, 아니면 조직의 명예를 먼저 고려했는가.
이 질문들은 특정 단체를 무리하게 단정하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종교 공동체가 사람을 보호하는 구조를 갖추고 있는지 점검하기 위한 최소한의 질문입니다.
3. JMS 사례가 보여주는 지도자 절대화의 위험
지도자 절대화가 얼마나 위험한 결과를 낳을 수 있는지는 JMS 사례에서 극단적으로 드러났습니다. 대법원은 2025년 1월, JMS 정명석에게 여신도 성폭행 등 혐의로 징역 17년을 확정했습니다.
물론 모든 논란 단체를 JMS와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각 단체의 교리, 역사, 범죄 양상, 조직 구조는 다릅니다. 그러므로 JMS 사례를 언급하는 이유는 특정 단체를 곧바로 JMS와 같은 범주에 넣기 위해서가 아닙니다.
핵심은 하나입니다. 종교 지도자의 권위가 절대화되고, 그를 비판하는 일이 곧 신앙의 배신처럼 여겨질 때 공동체는 위험해집니다.
지도자의 말이 하나님의 뜻처럼 받아들여지고, 내부 구성원이 질문할 수 없으며, 피해자가 생겨도 조직이 먼저 보호된다면 그 공동체는 이미 위험한 방향으로 기울고 있는 것입니다.
종교 공동체는 지도자를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지도자를 신격화해서는 안 됩니다. 영적 권위는 검증과 책임 밖에 놓일 수 없습니다. 오히려 영적 권위일수록 더 투명하게 검증되어야 하고, 더 엄격하게 책임을 져야 합니다.
4. 정통 교회도 예외가 아니다
이 문제는 이른바 이단이나 사이비로 분류되는 집단에만 해당하지 않습니다. 교리적으로 정통이라고 평가받는 교회도 권력 구조가 왜곡되면 얼마든지 병들 수 있습니다.
목회자 세습, 재정 불투명, 교회 권력의 사유화, 정치권력과의 유착, 성폭력 은폐, 피해자에 대한 2차 가해는 정통 교회 안에서도 반복적으로 제기되어 온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정통 교회인가 아닌가”라는 질문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교리적으로 정통이라는 사실이 공동체의 건강성을 자동으로 보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바른 신앙고백을 가지고도 잘못된 권력 구조를 만들 수 있고, 정통 교회의 이름으로도 사이비적 운영은 얼마든지 가능할 수 있습니다.
건강한 교회는 지도자를 신격화하지 않습니다. 공동체 자체를 우상화하지도 않습니다. 오히려 인간의 연약함과 죄성을 인정하기 때문에 권력을 견제하고, 책임을 묻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제도와 문화를 세웁니다.
5. 건강한 신앙 공동체의 조건
건강한 신앙 공동체는 올바른 교리만으로 세워지지 않습니다. 올바른 교리와 함께, 권력을 제한하고 책임을 묻는 구조가 필요합니다.
건강한 공동체는 최소한 다음과 같은 기준을 가져야 합니다.
첫째, 지도자의 권한은 제한되고 견제되어야 합니다.(한 개인 또는 한 가족에게 결정권이 집중되어 있지 않은가?)
둘째, 재정과 의사결정 과정은 투명하게 공개되어야 합니다.
셋째, 내부 비판과 질문이 허용되어야 합니다.(지도자에 대한 비판이 신앙적 결함으로 처리되지 않는가?)
넷째, 피해 신고 절차와 외부 조사 수용 체계가 마련되어야 합니다.
다섯째, 미성년자와 취약한 구성원을 보호하는 명확한 규정이 있어야 합니다.
여섯째, 탈퇴자의 자유가 보장되어야 하며, 탈퇴자를 배신자나 불신앙자로 낙인찍어서는 안 됩니다.
일곱째, 공동체의 명예보다 피해자의 회복과 진실 규명이 우선되어야 합니다.
이 기준은 특정 단체를 공격하기 위한 잣대가 아닙니다. 모든 교회와 종교 공동체가 스스로를 점검해야 할 기준입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권력이 성역화되고, 비판이 억압되며, 피해자의 고통보다 조직의 명예가 우선된다면 그 공동체는 이미 복음의 정신에서 멀어지고 있다고 보아야 합니다.
결론: 교리와 구조를 함께 보아야 한다
종교 공동체를 평가하는 일은 몇 줄의 교리 문장만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교리는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누구인지, 구원이 무엇인지, 성경의 권위를 어떻게 이해하는지는 신앙의 본질에 해당합니다.
그러나 교리만으로는 충분하지 않습니다. 그 교리가 실제 공동체 안에서 어떤 권력 구조를 만들고, 사람을 어떻게 대하며, 약자를 어떻게 보호하는지도 함께 보아야 합니다.
신앙의 이름으로 세워진 권력이 스스로를 절대화하고 비판을 거부할 때, 그 권력은 더 이상 신앙을 섬기는 도구가 아니라 사람을 지배하는 장치가 됩니다.
따라서 우리가 경계해야 할 것은 특정 단체 하나만이 아닙니다. 스스로를 절대화하는 모든 종교 권력, 비판을 불신앙으로 몰아가는 모든 공동체, 피해자보다 조직을 먼저 보호하는 모든 구조가 경계의 대상입니다.
참된 신앙은 지도자를 신격화하지 않고, 공동체를 우상화하지 않으며, 인간의 연약함을 인정하는 자리에서 시작됩니다. 건강한 교회는 바로 그 연약함을 알기 때문에 권력을 견제하고, 책임을 묻고, 피해자를 보호하는 구조를 갖추어야 합니다.
교리의 정통성과 권력의 투명성.이 두 기준을 함께 보아야 비로소 건강한 신앙 공동체를 말할 수 있습니다.
교리적 이탈(이단)과 구조적 타락(사이비화)의 분리와 경계가 필요합니다.
교리는 우리가 무엇을 믿느냐를 정의한다. 그러나 구조는 그 믿음이 어떤 인간을 만들어 내느냐를 결정한다.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 할 것은 후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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