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세18. Day15.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 (에베소서 6:4, 데살로니가전서 5:16~18) 이유남 권사
이유남 권사 (서울 은혜교회)
현) 서울 명신초 교장
현) 숭실사이버대 청소년상담코칭학과 겸임 교수
- <엄마 반성문>저자
강사를 향한 박수가 아니라 여러분 각자를 향해
'나 참 잘하고 있구나...'하는 생각으로 함성과 함께 박수를 치자. (자기 자존감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는 뜻으로 해석됨)
여러분께 퀴즈를 내겠다.
"부모의 가장 큰 어리석음은 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들고자 함이다.
부모의 가장 큰 지혜는 자신의 삶이 자식의 (자랑거리) 가 되게 하는 것이다."
당신은 전자(자식을 자랑거리로 만드고자 함)인가 후자(자식의 자랑거리가 되려 함)인가?
우리의 마음은 후자에 있으나 행동은 전자에 있는 경우가 많다.
그런데, 결국 내가 전자인지 후자인지는 우리의 자녀들이 판단할 수 있는 것이다.
부모를 평가할 수 있는 방법으로는 무엇이 있을까?
동네를 어슬렁 거리다 길에서 우리 아이가 나를 보면 어떤 반응을 보일까?에 따라 그 등급을 다음과 같이 나눌 수 있다.
S등급 ; 쫓아와서 안기며 인사한다
A등급 ; 보고 웃으면서 인사한다
B등급 ; 보면 마지못해 인사한다
C등급 ; 나를 보면 딴 길로 돌아간다
그러면 오늘의 강사인 나는 어느 등급으로 보이는가?
자녀교육 강사는 두 종류가 있다. 즉, 나처럼 하면 자녀교육 성공할 수 있다’ 하는 ‘Follow-me’형이 있고, ‘나처럼 키우면 큰일 난다’ 하는 '경각심'형 강사가 있는데 나는 후자에 속한다.
아주 오랫동안 나는 C등급 이하의 부모였다.
우리 아이들은 공부를 잘 해야 하고, 상을 받아야 하고, 학교 임원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는 학교가 끝나면 칼퇴근하고 애들 단속하러 집으로 갔다. 그리고는 공부 상황을 체크하고 야단을 쳤다. 우리 아이들은 언제나 시키면 시키는 대로 해야 했다. 우리 부부는 매우 다른 성격인데, 아이들을 압박하는 데 있어서는 공통적이었다. (책인용: 남편과 살면서 서로 유일하게 맞는 게 하나 있었으니, 그게 바로 아이들 잡는 것이었습니다. 제가 야단을 치면 남편이 꼭 지원 사격을 하곤 했습니다.)
그러나 이 양육방법에는 유효기한이 온다. 양 카리스마.... 양쪽에 칼을 든 여자가 내 별명이었는데 이렇게 닥달하고 책망하는 방식에는 한계가 있었다. 대개는 초등학교 때 유효기간이 끝나기도 하는데 우리 아이들은 고등학교 때까지 좀 길게 간 편이었다. 그러나, 분명히 닥친다는 것에는 차이가 없다.
나는 소위 말하는 엄친아의 엄마였다. 우리 아들은 공부도 잘하고 상도 많이 받아와서 평생 잘 될 줄 알았다. 그러나 그것은 내가 많이 돕고, 내가 선택하고, 내가 시켜서 한 일이었다. 어려서부터 엄친아의 대명사 같았던 우리 아들이 고3이었던 어느 4월의 봄날, 내게 얘기를 좀 하자고 했는데 나는 평소대로 '1)얼른, 2)빨리, 3)바빠'의 3종 세트로 대응했더니, 아들이 대학을 꼭 가야하느냐며 쉬고 싶다고 하는 것이었다. 평소대로 부부가 아이를 심하게 나무랐는데, 그 다음날부터 아예 아들이 늦게 일어나고 가슴도 아프다는 것이었다. 그러더니 아이가 말대답을 하고 욕을 입에 대고 살기 시작했다. 그러더니, 고3이던 그해의 8월31일에 고등학교를 자퇴 했다. 부모도 학교도 아무도 그 아이를 이해할 수 없었다. 내게는 모든 것이 끝나버린 것 같았다.
그런데 당시 강남의 모여고 2학년이던 내 딸이 내게 할 애기가 있다더니 등교를 거부하기 시작했고 9월24일에는 아빠의 도장을 도용해서 다니던 강남의 여자고등학교를 자퇴했다.
1년 반을 게임만 하고 있는 자퇴생 자녀를 둔 부모로써 아픔의 시간을 보내야 했다. 설상가상으로 남편의 사업은 부도가 났다. 나는 속히 하늘나라로 가고 싶을 정도로 힘들어 했고 아이들과의 갈등은 점점 더 심해져 갔다.
열심히 살면 가족 모두가 행복할 줄 알았는데 어디에서부터 잘못되었는지, 그 때 내 인생을 처음으로 다시 돌아보게 되었다.
그 때 한 음성이 들렸다. '네 모습을 보아라'
그래서 바라본 내 모습은 '소리치고 야단치고 감시하는 사람'의 모습뿐이었다.
돌이켜보니 나는 단 한 번도 우리 아이들을 진심으로 칭찬해준 적이 없었다. 오직 성과 중심의 칭찬만이 있었을 뿐이었다.
자녀들과 서로 눈을 맞추고 아이들의 이야기에 맞장구 치며 공감하는 대화를 한 적이 없었다.
잔소리가 아니라 아이들의 이야기를 들어주는 30분 이상의 대화를 한 적이 있는가? 전혀 없었다.
코치형 부모, 코치형 배우자를 모두 원하는데 나는 전혀 그렇지 못했다. 늘 지시하고 감시하는 말만 했구나.... 하는 후회가 밀려 왔다.
내가 돌아보니, 우리 아이들이 땅을 밟은 기억이 별로 없는 것이었다.
그날부터 나는 좋은 부모가 되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공부하기 시작했고 전국을 다니며 유명 기관과 유명 강사들을 쫓아다니며 부모교육 코칭, 리더십, 상담 등의 강의를 듣고 강사로 거듭났다.
18년 평교사 경력을 통해 나는 유능하고 인기있는 선생이었지만, 나는 오직 성과 중심의 선생이었다. 이제 나는 그 시절에 대해 속죄하는 마음으로 강연을 하고 다니고 있다.
출판사의 간청으로 자녀 교육 책을 펴내기로 했으나 시간을 내지 못해, 대안으로 녹음을 했고 그 녹취를 풀 일이 있었는데 우리 딸이 그 일을 맡아 나섰다.
그 때 내 딸의 얘기에 의하면 왜 '청소년 문제'라고 하는 지 모르겠다는 것이었다. 오히려 부모의 문제, 선생님의 문제 즉 어른들 자신들의 문제인 것 아니냐는 것이었다.
청소년 자살률 OECD 수위권을 14년 째 달리고 있는 우리나라. 하루 평균 1명씩의 청소년이 자살을 하고 있는 나라. 우리 딸이 내게 청소년들이 자살하는 이유를 물었다. 제대로 답을 못하는 내게 가르쳐 준 딸의 답은 매우 놀라웠다. 청소년들이 자살을 하는 것은, 자기 부모의 고통을 위해서라며, 자기도 부모에 대한 분노와 증오의 마음이 차올랐던 때가 있었다고 했다.
책 원고를 읽어보더니 아들이 추천서를 써주기도 했다.
결국 하나님은 당신이 필요하시면 언제나 우리를 들어 쓰시는 것 같다.
우리 아이들은 왜 학교를 그만 두었을까?
내가 깨달은 그 이유는, 내가 아이들에게 나의 한 맺힌 것을 대신 이루어 주도록 한 것이었다.
예를 들면, 나는 교대 입학 전에는 전혀 경험이 없던 피아노에서 D학점을 받아서 그 여파로 교대 졸업 때 수석을 놓쳤기에, 우리 아이들을 5세 때부터 피아노를 배우도록 했다.
아이들을 닥달하며 감시하고 통치했다. 그러면서도 아이들을 칭찬한 적은 없었다.
우리나라 사람은 칭찬도 잘 못하고 칭찬을 잘 받지도 못한다. 겸손하다고 착각하며 칭찬하는 남을 무안하게 만들어 버린다. 누가 우리 자녀를 칭찬하면 우리는 먼저 (겸손하게) 그것을 부정하고 또 아이들의 단점을 꼭 붙여 말하곤 한다.
우리 딸은 7살이 되도록 한글을 떼지 못했는데, 나는 아이가 100점을 맞아야 아이의 기가 살고 자존감이 높아진다고 착각하고 아이를 압박했다.
심리학 교수인 존 가트먼 (John Gottman) 박사의 연구에 의하면, 대화에는 3가지 종류가 있는데, 첫째로는 원수되는 대화 (원수 갚을 생각을 하게 되어 복수의 칼을 갈게 된다.)가 있으며, 둘째로는 멀어지는 대화, 그리고 세째로는 다가가는 대화가 있다고 한다.
자녀의 일탈은 부모에 대한 앙갚음이다. (엡 6:4) 네 자녀를 노엽게 하지 말라...고 되어 있다. 그런데 가트먼 박사의 이른 바 '원수되는 대화'를 하면 자녀를 노엽게 하게 된다는 경종이었는데 나는 그것을 충분히 인식하지 못한 것이었다.
나는 부모가 아니었구나. 관리자이고 감시자이고 통치자였구나. 그것도 아주 무섭고 나쁜!!!
나는 그동안에는 그것이 바로 사랑인줄 알았다. 아니 어쩌면 알면서도 사랑하니까 그래도 되는줄 알았다. 아이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아이를 바른길로 인도한다는 이유로 내 뜻대로 아이를 조종했고, 그대로 움직여주지 않는 아이들에겐 한없이 폭력적인 엄마였다
어느 날이었을까.... 비가 억수로 쏟아지던 날, 가기 싫은 마음을 억누르며 억지로 학교를 갔는데 옷이 온통 젖어 있었다.
그런데 태풍을 뚫고 정시에 학교에 이미 와 있는 아이들을 보며 '아이들이 학교에 와 준 것 자체가 기적이다'라는 생각이 들었다. 공부를 잘하고 못하고, 상을 받고 못 받고, 회장을 하고 안 하고 그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바로 학교에 잘 다녀주고 있다는 사실! 그 힘든 학교를 우리 아이들이 하루도 이틀도 아니고 매년 195일 이상씩 다녀주고 있다는 사실이 감사했다.
그러자 점차 회복되어, 어느 날은 아이들이 게임을 멈추고 검정고시를 보고, 또 이어서 수능을 보고 온 후, 모두 대학교를 골라 들어갔다. 최고의 자녀 교육 기본은 '내려 놓음'이었고, 가장 훌륭한 양육 방법은 '믿음과 기다림'이었다.
사실 나는 그 동안 감사를 모르고 살았다. 그러자 하나님께서는 모든 것을 거두어 가셨다.
그러나 감사를 회복시켰을 때, 하나님은 다른 모든 것을 회복시키셨다.
CTS에 나간 적이 있다. 진행자의 이야기가 마음에 남는다.
"자녀는 하나님께서 주신 선물이 아니라 귀한 손님입니다.' 선물은 자기 마음대로 쓰고 버리면 되지만 귀한 손님은 조심스럽게 접대해야 하는 것이다.
[기도 인도 by 김은호 목사님]
(찬양) 야곱의 축복...
자녀는 내가 이루지 못한 꿈을 대신 채워줄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회개하자. 자녀를 향한 내 욕망을 다 내려 놓고, 하나님의 마음으로 내 자녀를 섬기기 위한 회개를 하자. 부모와 자식간의 무너진 관계가 회복되어지기 원한다.
부모로부터 받았던 아픔과 쓴뿌리들이 다 치유되어 자녀들이 하나님의 거룩한 형상을 회복하기를 축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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