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 오윤아 집사
탤런트. 폴라리스 엔터테인먼트 소속
'편스토랑', '한 번 다녀왔습니다' 외 다수작 출연
강남중앙침례교회 집사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우리 아이가 자폐가 있는 것을 공개하지 않다가 TV 프로그램 '편스토랑'을 통해 공개가 되면서 많은 분들이 놀라기도 하고 감동받은 분들도 많은 것 같다. 내 화려한 외모에 비해 힘든 생활을 하는 것에 대해 위로를 해주시는 분들도 많고 또 사람들도 내 이야기를 위로로 삼는 것 같기도 하다.
처음에는 편스토랑에 일회성으로 출연할 계획이었으나, 민이가 6학년이 된 작년에는 1년 정도 일을 하지 않고 민이에게만 올인하며 가깝게 지내게 되면서, 나보다 할머니를 더 따르던 민이가 내게 '엄마'라고 부르고 둘이 함께 놀이 대상이 되면서 상태가 좋아져 계속 방송에 참여할 수 있게 되었다. (자폐아는 대개 뜻대로 되지 않거나 아프면 자기 머리를 때리는 행동을 하는데 우리 민이도 그런 증상이 있었으나 지금은 좀 줄어들었다.) 촬영 처음날 민이가 새로운 환경에 적응을 못하며 자기 머리를 때려서 촬영이 어려운 상황이었다. 30~50여대의 카메라를 촬영 전날 미리 셋팅하고 카메라맨도 10명 이상이 참여하고 있었는데 모두 헛일이 될 것 같아서 걱정하며 하나님께 기도했는데, 민이가 어느 순간 진정이 되더니 기분이 너무 좋아져서 촬영을 너무 잘해서 다행이었다. 그렇게 나간 방송에 대해 많은 분들의 반응이 좋아서 오랫동안 방송에 참여하게 되었다.
방송이 나가고 사람들로부터 '그동안 많이 힘들었을텐데 어떻게 이겨냈을까?'라는 질문과 걱정을 많이 들었다. 사실 나는 젊어서 일찍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아서 일과 육아를 병행하기가 많이 힘들었다. 내가 하는 일이 지방 촬영도 많아서 아픈 아들을 두고 일을 해야 했기에 마음이 늘 아팠다. 그러다가 29세에는 갑상선 암에 걸리게 되었다. 오직 일과 아들에만 신경을 썼고 그 즈음에는 아들이 자폐라는 것도 알게 되어서 더욱 힘들었으나, 지금 이 자리에 내가 설 수 있는 것은 오직 하나님의 은혜이다. 내가 믿음이 있었기에 하나님께서 내가 그 믿음으로 감당할 수 있을 것이므로 민이를 내게 보내주신 것이라고 생각한다.
이 모든 것은 어려서부터 내게 믿음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나는 어려서부터 가정 형편은 너무 어려웠지만 오직 믿음으로 살았는데, 지금 주변에 믿음 없는 사람들을 보면 그들이 너무 안타까워서 주변에 너무 많이 신앙적인 얘기를 하다가 선배에게 걱정을 들은 적도 있다.
내가 어렸을 때 우리 엄마의 신앙이 매우 좋았다. 연고도 없는 울산에서 힘들게 사실 때 처음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갖게 되었는데, 내가 어려서부터 엄마가 신앙생활을 열심히 하셔서 우리 삼남매는 엄마와 함께 거의 매일 교회에서 살다시피했다. 그래서 내 어린 시절의 추억은 월봉시장의 화평교회가 거의 유일하다. 엄마는 주일학교 반사, 구역장 등 교회 봉사에 열심이셨다. 어려서 교회에서 생활하면서 나와 우리 남매들의 사교성이 좋아진 것 같다. 성탄절이면 엄마의 강권으로 교인들 앞에 나가서 율동과 함께 가족찬양도 했다. 그러나 우리 아버지는 믿지 않으셨었다. 최근에는 하나님을 열심히 믿지만, 그 때는 술도 드시고 그랬다. 엄마처럼 교회 다니는 사람은 누구나 힘든 분들을 찾아가 기도하고 돌보는 것이 당연한 줄 알았다.
그런데 어느날 보니 엄마가 교회에 나가시지 않는 것이었다. 그리고 울산에서의 형편이 어려워져 울산을 떠나게 되었고 집안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져 갔다. 엄마가 애써 돈을 모아서 울산에서 집을 사고 짓게 되었는데 같은 교회에서 목수 일을 하시던 분께 건축을 맡겼더니 그분이 그것을 이용해서 사기치는 바람에 시험이 들어 교회에 나가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그러면서 가정 형편은 점점 더 어려워졌다. 울산도 떠나게 되었고, 친구도 많고 술도 즐기던 아버지가 보증을 잘못 서는 바람에 가정 형편은 점점 더 기울어져갔다. 어느 날은 머리를 싸매고 앓아 누우신 엄마에게 빚쟁이가 찾아와 닦달하는 것을 우리 자녀들이 지켜보기도 했다.
엄마는 교회를 나가시지 않으면서도 자녀들은 교회를 나가도록 하셨다. 하지만 엄마가 교회에 나가시지 않으면서 자녀들도 하나님과 멀어지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하나님이 계실까? 하는 의심도 생겼다. 엄마는 막노동까지 하시며 사람의 열심을 다해 사셨지만 가정 형편은 나아지지 않았다. 늘 손이 부르터서 일반 테이프를 붙이고 사셨다. 우리 남매들은 모두 공부보다는 예체능을 전공해야 했는데 단칸방에서도 쫓겨나야 했다. 그 바람에 열 예닐곱살이던 나는 피아노를 전공하던 언니를 위해 희생하는 마음으로 무용을 포기한 후에 주유소 알바부터 온갖 알바를 다 하며 돈을 벌었다.
스무살 성인이 될 때쯤 나는 백화점 알바를 해야 해서 집을 나와 살고 있었는데, 엄마는 주유소에서 밥을 해주는 일을 하시고 있었다. 그 주유소 건너편에 집매매 플래카드가 붙은 집이 있었는데 그 뒤에 십자가가 보여서 돈은 준비되지 않았지만 간절한 마음으로 들어갔더니, 집주인은 급매 의사를 밝히며 키를 맡기고 천천히 돌아보시라고 하고 떠났는데, 남겨진 엄마가 혼자서 그 집 옆의 십자가를 보신 후에 무릎이 갑자기 꿇어지면서 그 자리에서 한 시간 정도 울며 회개기도를 했고, 그 때 하나님께서 응답해주셨다고 한다. 다시 신앙생활을 할 것을 다짐하는 기도를 하고 나니, 방언도 터져 나오고 소망이 생겨나서 엄마는 열심히 기도하며 대출을 받고 또 돈을 빌어 겨우겨우 엄마는 그 집으로 이사하게 되었다.
한편 하나님께서 3남매 중에 나를 선택하셔서 레이싱 모델을 하게 되었다.(21세 때) 친언니가 모델라인(모델 지망생을 위한 학생)을 다니고 있었는데 레이싱걸 아르바이트 자리에 나를 소개해 주어서 큰 기대 없이 참여했다가 큰 반응을 얻게 되어, 나는 그 영역에서 돈을 많이 벌게 되고 선금을 받기도 하는 등 인정받게 되었다. 인터넷 붐이 일던 시점에는 레이싱 퀸 대회에 나가서 우승을 하게 되었다. 그로 인해 알려져서 여기 저기서 연예인을 하라는 권유를 강하게 받고 연기자가 되었다. 남동생은 고등학교 때 '스타 따라잡기'에 나가고 CF촬영도 하고 영화 출연도 한 적이 있어서 연예계 경험이 있었는데, 동생이 내게 도전하라고 권유했다. 그래서 계약금까지 받고 계약을 해서 연예인이 되었다.
복정동에서 혼자 살고 있던 내게 전도지를 돌리는 분이 방문한 적이 있는데, 그 때 하나님을 믿으라고 권하던 엄마의 얘기가 생각나서, 나도 엄마 집으로 들어가 집 옆의 그 십자가 교회에 가게 되었다. 어느 날, 눈이 많이 오던 겨울, 미끄러운 길을 걸어 새벽기도를 갔는데 처음으로 목사님 말씀이 하나님 말씀처럼 생생하게 들리고, 나는 울며 기도하며 그 동안에도 언제나 나와 함께 하신 하나님의 역사를 깨닫고 감사하는 체험을 했다. 그 때부터 레이싱걸 등 다른 모든 직업을 포기하고 연기활동에 집중하게 되었다.
우리 교회에서 십일조 헌금을 가장 많이 하는 사람이 되게 하시기를 기도했는데, 6개월만에 그 기도가 이루어졌다. 그로부터 기도하면 된다는 믿음이 생겨, 인생의 힘든 순간마다 나는 자신이 없지만 하나님이 함께 하심을 알기에 기도하며 살아왔고 그 때마다 하나님의 역사를 체험하게 되었다. 연기에 대해서도 아무 것도 모른 채 시작했었지만 나도 놀랄 정도로 연기를 잘 하게 되었다. 그래서 매 순간 간절히 기도하며 구하면 늘 응답해 주시는 하나님을 믿고 살아왔다.
내게는 시련도 많이 있었다.
결혼을 하게 되었다. 레이싱 걸은 노출이 많기 때문에 사람들에게 쉬운 여자 취급을 받기도 해서 그 이미지를 깨기 위해 활발한 연예 활동을 하고 있었지만 26세의 이른 나이에 결혼을 했다. 나는 결혼에 있어서, 믿음은 좋았으나 지혜가 없었던 것 같다. 전남편에 대해서는 많은 얘기를 하고 싶지 않다. 결혼을 했고 바로 임신을 했지만 열악한 환경에서 촬영을 하게 되었다. 그래도 출산 후에 남편의 사업은 어려워졌고 나는 일을 하러 나섰다. 민이가 어려운 것이 내 잘못 때문인 것 같아서 언제나 많이 힘들었다.
죽전으로 이사를 갔다가 친한 언니의 소개로 비싼 유치원에 들어갔는데 민이의 행동으로 인해 죄인 아닌 죄인이 되어 원장의 무리한 요구에 일부 응했다가 금품을 날리기도 했다. 다른 유치원에서는 모니터링을 한 엄마들의 강력한 반발로 학부모회의에 소환되기도 했다. 두려워서 차 안에서 울며 기도하는 중에 하나님께서 내 마음을 넓고 이해할 수 있게 해주셨다. 우리 민이의 이상행동을 다른 아이들이 따라하다가 tick이 될 것 같았다는 학부모들의 우려를 언니와 나는 화를 내기보다는 눈물로 호소했다. 친언니가 결혼 전에는 나와 함께 살면서 민이를 돌봐주고 있을 때였다. 다행히 무마되었지만, 자폐아에 대한 여러분의 이해를 부탁하고 싶다. 결국
민이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은 언어치료가 내가 할 수 있는 전부였다.
민이는 유치원에서도 재롱잔치를 제대로 한 적이 없었다. 민이와 함께 하는 가족여행도 어려웠다. 자폐의 유형은 매우 광범위하다. 우리 민이는 자기가 싫은 것은 절대 하지 않고 원하는 것은 절대 가져야 했기에 무척 힘들었다. 그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하며 그 순간들을 이겨낼 수 있었다. 지금은 민이의 행동들이 너무 감사한데, 만약에 하나님이 내게 없었다면 이 감사도 모르고 살았을 것이다.
나는 우리 민이를 통해 하나님께서 내게 계획이 있으실 것이라고 믿는다. 그러나 우리 민이는 기도를 하고 시간이 흘러도 상태가 좋아지지 않는다. 섬기고 있는 교회의 양수리 수양관에서 기도회를 할 때 뜨겁게 기도를 하지만 나와보면 민이에게는 아무 변화가 없어서 낙심하다가, 어느 날부터는 하나님께서 민이를 통해 무슨 일이든 하실 계획이 있으리라고 믿고 기도하게 되었다. 그런데, 민이가 편스토랑에 나오면서 비슷한 형편에 있는 시청자들이 개선된 사회 인식을 느끼기도 하고, 또 부모님들이 위로를 받고 용기를 내게 되었다는 얘기를 듣고 감사하다. 하나님께서 우리 민이를 통해 무엇인가를 하려 하신다고 믿게 된다.
하나님을 믿는 사람인 것이 알려졌기에 나도 어긋나지 않는 삶을 살려 애쓰고 있다. 여러분들도 자폐아들을 더욱 이해하시고 사랑해주시기 바란다.
적용기도:
자폐아를 둔 부모님들의 마음을 하나님께서 어루만지시고, 또 다른 사람들에게 자폐아에 대한 편견을 내려 놓게 하신 것을 감사한다. 하나님께서 민이를 통로로 사용하신 것 같다.
엘리야처럼 기도 응답에 도전하라. 확신이 있는 사람이 기도응답에 도전한다. 그 확신의 근거는 내 소원과 감정이 아니라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되어야 한다. 기도의 현장이 없는 것 아닌가? 기도의 무릎을 꿇지 않는다.
오늘은 각자의 기도 제목을 놓고, 기도응답의 확신이 임할 때까지 기도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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