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프로필] 김윤상 선교사
- 멕시코 익투스 선교 공동체 (Ichthus Mission Community) 선교사
- (주) K-Medical Technology 대표
- 한동대학교 졸업
[본문] 시편 90:12
12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
여러분은 우리 인생이 너무 짧다고 생각하지 않는가? 인생이 너무 길어서 고민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오늘 나는 우리들의 인생이, 우리 각자의 기준이 아닌 하나님의 기준으로, 밀도 있는 삶을 살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에 대해 나누고자 한다.
나는 멕시코 최남단 치아파스주, 해발 1,560m 산간 지역으로, Comitan(꼬미딴)의 외곽 지역 La Trinitaria에 위치해 있는 익투스 선교 공동체의 선교사로 일하고 있다. ‘멕시코와 중남미를 하나님께로’를 구호로 삼는 익투스 선교 공동체는 미래 멕시코의 크리스천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한 초·중·고 교육에 집중하고 전도와 구제 사역으로 교회개척과 현지 마을에 분교 설립, 봉사 등을 병행하고 있다. 그 안에 자비량 사업체를 갖고 있으며 신학교도 있다. 나는 이곳에서 5년 정도 일했으며 자비량 사업을 맡고 있다.
오늘 내가 여기에 서 있는 것 자체가 기적같은 일이다. 그 간증을 나누고자 한다.
2018년 10월의 어느 날 밤, 비가 많이 내리던 고속도로에서 나는 큰 교통사고를 당했다. 모든 장기가 손상된 큰 사고였고 왼쪽 다리는 심하게 복합골절되었다. 출혈도 많아서 약 60%의 피를 흘렸다. 중환자실에 들어갔지만, 시골병원이어서 배에 연결한 호스에 염증이 생겨 재수술을 해야 했고 감염이 심해져서 복막염, 폐렴, 패혈증까지 겹쳐서 살 가망이 없는 지경이었다. 감염이 폐까지 전이되어서 폐가 기능을 더 이상 할 수 없었고 물을 빼내야 했다. 이렇게 24일을 위중한 상태로 병원에 있었다. 사고 후 37일째가 되어서야 겨우 다리 수술을 할 수 있었다. 그동안 가족들은 매우 절망적인 시간을 보냈다. 아버지는 차라리 당신을 데려가 달라고 기도하셨다고 한다.
처음에는 나를 살려 달라고 기도하던 우리 가족들은 오히려 감사기도를 했다고 한다. 살려주셔도 감사하고 데려 가셔도 감사하다는 믿음의 고백으로 기도했다는 것이다. 내 사연이 전 세계에 퍼져나가 많은 분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고, 이로 인해 내 생명의 끈은 유지되었고 차차 감염이 줄어들었다. 그 때의 아버지 마음은 모리아산의 아브라함의 마음 같았다고 하셨다.
나는 겨우 깨어났지만 여전히 위중한 상태였기 때문에 무기력했고 죽음을 직면하고 있음을 알 수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이제는 나 자신이나 의사가 아닌 하나님이 일하고 계심을 알 수 있었다. 내 매일은 의사들의 표현으로는 기적이었다. 그리고 하나님의 은혜 가운데 그 기적이 내 일상이 되어 가고 있었다.
내게 일어난 그 기적들의 원동력은 바로 '감사'에 있었다. 감사는 마땅히 좋은 환경일 때만 하는 것이 아니다. (살전 5:18 범사에 감사하라 이것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 범사에 감사하라는 말씀은, 우리 상황이나 처지와 상관 없이 언제든 모든 일에 감사를 '선택'하라는 것이다. 예수님도 기적을 일의키시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감사를 하셨다. 오병이어, 죽은 나사로를 살리실 때, 언제나 기적이 일어난 후가 아니라 기적이 일어나기 전에 먼저 감사를 하셨다.
감사와 기적의 상관 관계
감사는 하나님이 계심을 인정하는 삶의 태도이다. (히 11:6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지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믿음은 하나님의 계심을 인정하는 삶이다. 내 삶 가운데 하나님의 깊은 개입과 다스리심이 있음을 인정하는 것이 감사다. 따라서 감사는 환경에 따라 달라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계심에 근거한 변함 없는 것이어야 한다.
감사할 때, 우리가 아닌 하나님께서, 우리는 할 수 없는 그 일을 이루어 가신다. 하나님이 하신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우실 때 우리 삶은 풍성한 기적으로 가득차게 될 것이다.
내가 사고가 났을 당시, 콰테말라 선교사였던 아버지는 뉴욕의 선교대회에 계셨다. 내 사고 소식을 듣고 많은 선교사님들이 나를 위해 기도해 주셨다. 내가 깨어났을 때 내가 알지 못했던 많은 분들의 간증 메시지들이 내게 와 있었다. 분열되었던 교회가 나를 위해 기도하다가 하나가 되었다는 사연도 있었고, 러시아 현지 교회에서는 온 교인이 40일간 릴레이로 금식기도를 했다는 연락도 있었다.
캘리포니아에서 온 성도의 이야기인데, 말기 암 환자로서 암이 폐에 전이되어 힘들하던 분이라고 했다. 내 사고 소식을 듣고 매일 나를 위해 기도하다가 한국에 들어왔는데 조금 전에 그 말기암이 완치되었다는 소식을 들었다는 것이었다.
또, 나를 위해 오래 기도해 주신 어떤 분은 그 때까지의 내 병원비를 모두 결제해주시기도 했다. 하나님이 시키신 일이라며 헌금까지 해주셨다. 이번에 귀국해서 만나 확인한 것은, 그 때 그 분이 돈이 없어서 신용카드로 결제를 했는데, 그 날 갑작기 병원비에 0을 하나 더 붙인 큰 금액이 기대하지 않게 계좌에 입금되었다는 것이다.
이런 사연들이 무척 많다. 그러다 보니, 내가 서서 한 일보다 누워서 한 일보다 많다는 말도 들었다. 사실이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일을 하시니 이루어진 것이었다. 사역의 주체는 내가 아니라 하나님임을, 하나님이 하시는 일임을 알게 되었다. 만일 우리의 간절한 기도에도 불구하고 낫지 않고 죽음을 맞는 경우에도 우리는 변함 없이 하나님을 인정해야 한다. 우리 생명에 대한 하나님의 주권을 인정하고 감사해야 한다.
나는 어려서 사업에서 성공함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고 싶었다. 그를 위해서 나는 열정을 갖고 달려왔었다. 그러나 이 사고를 통해 내 꿈과 비전에 오류가 있을을 알게 되었다. 우리 인생 가운데 우리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 많은 것을 희생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중간에 낙오하고 포기하는 사람이 많다는 것이다. 또 혹시 목표를 달성해도 그것을 누릴만큼 긴 시간이 허락되지 않기도 한다. 나도 불과 몇 초 후의 그 큰 사고를 전혀 상상조차 못했었다. 우리는 인생에서 우리가 원하는 것을 얻어낼 확률이 매우 낮다. 혹시 얻더라도 우리가 그것을 누릴 확률이 낮다. 더군다나 우리 인생의 마지막 날을 알 사람은 아무도 없다.
예수님의 비유에서 '어리석은 부자'이야기가 있다. 내가 먹고 마시고 즐거워하리라...고 했으나 (눅 12:20 하나님은 이르시되 어리석은 자여 오늘 밤에 네 영혼을 도로 찾으리니 그러면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 하셨으니) 네 준비한 것이 누구의 것이 되겠느냐는 말씀에 주의해야 한다. 생명의 주인은 하나님이시다. 주신 분이기도 하고 거두어 가시는 분이기도 하다.
나는 의식을 잃고 누워 있는 동안에 다음과 같은 신비한 영적 세계를 경험했다.
그 세계에서 나는 건물에 갇혀 있었다. 14명 정도의 사람들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남녀 각각 1명씩의 리더가 있었고 그 곳의 사람들은 모두 그 둘에게 복종하고 있었다. 그들은 죽어가던 내게 돈 벌어 오는 일을 시켰고 나는 노예처럼 그들이 시키는 대로 살았다. 아무리 돈을 성공적으로 많이 벌어도 다시그 건물로 돌아와 갇히는 것이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이 리더들이 사탄의 무리임을 알 수 있었다. 이들의 위협에 무기력을 느끼고 죽는 것이 낫겠다는 생각도 했다.
그러던 어느 날, 하늘에서 빛이 비추고 나팔소리와 찬양소리가 들려왔다. 개미 같은 목소리로 '예수, 보혈'을 불렀다. 그러자 주변이 달라졌다. 그 반응에 더 힘을 내서 반복해서 '예수, 보혈'을 소리냈다. 그 리더들이 당황하며 다른 사람들의 접근을 막고 감시 체계에 빠지게 되었으나, 나는 계속 '예수, 보혈'을 외쳤다. 내가 그들을 대적하면서 완전한 역전이 일어나고 있었다. 어느 날은 그 건물을 빠져나와 강가에 서 있게 되었는데, 장군처럼 늠름한 모습의 예수님을 만났다. (계 1:18 곧 살아 있는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 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그 때, 나를 잡고 있던 사탄의 리더 중 하나가 나를 쫓아 올라왔다. 나는 예수님과 사탄 사이에 누워있게 되었다. 그 때 내 삶이 모든 허물까지 파노라마처럼 펼쳐졌다. 내 삶에 대한 사탄의 강력하고 끈질긴 참소에 반하여, 예수님은 내 인생의 어떤 잘못에 대해서도 전혀 나를 정죄하지 않으셨다. (롬 8: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그 이유는 내가 예수님을 믿음으로 죄사함을 받았기 때문에 심판자 예수님 앞에 섰을 때 정죄할 죄가 없었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내 삶에서 비록 얼마 되지 않지만 예수님 보시기에 좋았던 순간들을 찾아 뽑아내셨다. 나는 모태신앙으로 교회 안에서 많은 시간을 보냈지만 그런 시간들은 예수님에 의해 뽑히지 않았다. 그래도 나는 반론을 제기할 수 없었다. 이유는 그 때 내 마음 속의 동기들이 드러났기 때문이다. 나도 모르던 그 동기는 하나님을 사랑해서가 아니라, 주변 사람들에게 신앙 좋은 청년으로 인정받고 싶은 욕구로 가득차 있었다. (롬 2:16 곧 나의 복음에 이른 바와 같이 하나님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라) 사람들의 은밀한 것을 심판하시는 그 날이 내게 왔을 때, 그 은밀했던 삶의 동기들이 그 앞에서 드러났다.
반면에 예수님이 보시기에 좋았던 시간으로 뽑아 주셨던 시간은 사실은 내 삶에서 가장 힘들고 절망적이었던 순간들이었다. 사업에 실패해서 거의 망했을 때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으로 하나님을 찾았던 때가 대표적이다. 달리 표현하면, 내 인생에서 예수님과 실제로 동행했던 시간들이 예수님 보시기에 좋았던 순간들로 뽑혔다.
예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예수께서 온전히 내 삶의 주인이심을 인정하던 순간이 중요한데, 이 순간이 예수님과의 동행의 핵심이 된다. 사고와 치유 과정 후에 내 삶의 목표는 예수님과의 동행이 되었다. 그것만이 심판의 날에 예수님이 인정해 주시는 '유일'한 가치이기 때문이다. 예수님은 우리 삶의 성공과 실패에 별로 관심이 없다. 오히려 우리 삶에 동행하시는 것에 관심이 있다.
예수님을 만난 후에도 내가 갇혔던 건물로 다시 돌아와야 했다. 하지만 더욱 힘있게 '예수, 보혈, 구원'을 외치며 영적 전쟁을 치루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 날, 사탄이 그만 하자고 했다. 내가 승리했음을 알 수 있었고, 계속 예수, 보혈, 구원을 외치다가 현실로 깨어나게 되었다. (깨어나던 그 때의 동영상 참조)
깨어나고 보니, 물 한 모금도 넘길 수 없고 손가락 하나 까딱 할 수 없는 현실을 마주해야 했다. '장루'를 통해 하루 1리터 이상의 피가 뱃 속에서 쏟아져 나왔다. 수혈을 20회나 하는 큰 수술들을 겪었지만, 그 멕시코 시골에서 내 혈액형의 피를 구할 수 없었다. (나는 AB형이었는데 피가 없어서 A형 피를 수혈 받기도 했다.) 죽을 것 같을 때 아이들이 보고 싶어서 큰 아들 예준이만 겨우 만나게 되었는데 그 때 내가 유언처럼 남긴 말은 '예수, 보혈, 구원'이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가 내 임종을 준비시키며 구원의 확신을 다시 확인하시던 그날 밤을 무사히 넘기고, 나는 하나님 은혜로 지금까지 담대히 예수 복음을 전하며 살아가고 있다.
우리 인생은 생각보다 길지 않다. 장수하더라도 얼마 되지 않는 인생을 밀도 있게 살아가야 한다. 우리의 일반적으로 범하는 오류가 있는데, 그것은 대개 자기의 원하는 바 꿈을 이루는 사람이 적고, 혹시 꿈을 이루더라도 그 성취를 누릴 시간이 없고, 누구든 언제가 자기의 마지막이 될 지 아무도 모른다는 것이다. 그러면, 오늘 하루라는 이 축복의 시간을 어떻게 보내야 할까? 유일하게 가치 있는 일인 예수 그리스도와의 동행에 사용해야 한다.
예수님과 동행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첫째, 예수님의 보혈의 능력을 믿어야 한다. 예수님의 보혈을 통해 하나님의 임재와 영광이 우리와 함께 있다. 죄사함이 있다.
둘째, 우리 삶에서 감사가 넘치게 해야 한다. 감사는 환경에 좌우되지 않고 하나님의 계심을 믿는 열매가 된다. 하나님의 권능을 인정하는 삶이 된다. 인격적인 하나님을 감사함을 높여 드려야 한다.
셋째, 우리 모든 사람의 인생의 마지막에 직면하게 될 심판자이신 예수님의 심판 기준은 예수님을 그리스도로 믿는 믿음이다. 그 믿음만이 우리를 최후 심판에서 건져내실 것이다. (요 3:18 그를 믿는 자는 심판을 받지 아니하는 것이요 믿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의 독생자의 이름을 믿지 아니하므로 벌써 심판을 받은 것이니라) (행 4:12 다른 이로써는 구원을 받을 수 없나니 천하 사람 중에 구원을 받을 만한 다른 이름을 우리에게 주신 일이 없음이라 하였더라)
우리 삶을 예수님의 동행으로 가득 채울 때, 우리 삶을 밀도 있게 채워나갈 수 있다.
나를 살렸던 찬양을 함께 부르며 오늘 말씀을 마무리 한다.
'임재'
하늘의 문을 여소서
이 곳을 주목 하소서
주를 향한 노래가 꺼지지 않으니
하늘을 열고 보소서
이 곳에 임재 하소서
주님을 기다립니다
기도의 향기가 하늘에 닿으니
주여 임재하여 주소서
이 곳에 오셔서
이 곳에 앉으소서
이 곳에서 드리는
예배를 받으소서
주님의 이름이
주님의 이름만이
오직 주의 이름만
이 곳에 있습니다
[적용기도]
우리 남은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할까? 우리 삶을 마치고 주님을 만날 때 어떤 모습이어야 할까? 예수님의 평가 기준은 예수님과 동행하는 삶이라는 것을 배웠다.
예수, 보혈, 구원을 외치며 하나님만이 나의 주인이심을 고백하며 주님과 동행하는 삶을 밀도있게 살아야 한다.
감사! 선교사님이 사고를 당해 사경을 헤맬때에도 가족들은 감사를 했다고 한다. 상황과 무관하게 감사가 먼저여야 한다. 감사할 때 기적이 일어난다.
다른 교회에서의 간증 녹화 참조 : https://youtu.be/oqVEG3gkGL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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