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사프로필] 박성현 교수
- 고든 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교수
- 하버드 대학교 근동어문학 박사
- 「한 달란트」 저자
https://youtu.be/fnzhz2yHxoA
[본문] 마태복음 25:14~1530
14 또 어떤 사람이 타국에 갈 때 그 종들을 불러 자기 소유를 맡김과 같으니
15 각각 그 재능대로 한 사람에게는 금 다섯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두 달란트를,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주고 떠났더니
한 달란트 받은 자
할렐루야 하나님께 찬송과 영광을 돌린다.
중3 아들이 부모와 상의 없이 자퇴서를 제출하고 학생으로서의 자기의 달란트인 학업을 포기한 아들, 그런 아들이 바로 나였다.
1976년 초등학교 때, 남미 파라과이로 이민을 갔던 우리 가정은 많은 어려움을 겪고 있는 가운데 또 이웃의 빚 보증을 선 것이 잘못되어서 평생을 갚아도 다 갚지 못할 그런 큰 빚을 지게 되었다. 그 상황을 지켜보던 나는 한편으로는 집안을 위해서 뭔가를 해야 되겠다는 생각도 있었지만, 도무지 착실하게 살아가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는가 하는 생각이 들어서 학교에 자퇴서를 제출하고 집에 와서 통보를 하고 말았다. 어머니는 몸져누우셨다. 3대째 신앙생활을 하신 한국전쟁 월남민인 어머님이 비기독교인 아버님과 결혼하셔서 자녀를 키우시면서도 온갖 어려움을 잘 견디셨으나, 맏아들에게 낙심하시자 몸이 상할 정도로 많이 상심하셨다. 이렇게 어리석은 짓을 거듭하여 되풀이 하는 것이 바로 나였다. 복학해서 고등학생이 된 후에도 또 다시 자퇴서를 냈다. 하나님이 내게 허락하신 한 달란트를 땅에 묻어 버리기도 했고, 또 왜 하나님은 나를 한 달란트도 되지 않는 삶을 살게 하시는지, 왜 나를 방치하시는지.... 이런 하나님에 대한 원망과 분노로 가득한 삶을 살았다. 내가 지금은 미국 보스턴에서 신학교 교수로서 많은 신학생들을 주의 종으로 세우는 일을 하고 있는데, 그 사명을 감당할 수 있도록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세우셨는지를 오늘 나누고자 한다.
(초등학교 때 부모님을 따라 파라과이로 이민을 간 후 중학교는 이태리어와 스페인어로, 고등학교는 영어로, 대학교는 히브리어로 공부하였다.)
하나님은 네 편의 성경말씀으로써 나를 인내하시며 북돋우시고 세워오셨다.
첫째 말씀,
(사 43:1~3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 네가 물 가운데로 지날 때에 내가 너와 함께 할 것이라 강을 건널 때에 물이 너를 침몰하지 못할 것이며 네가 불 가운데로 지날 때에 타지도 아니할 것이요 불꽃이 너를 사르지도 못하리니 대저 나는 여호와 네 하나님이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요 네 구원자임이라 내가 애굽을 너의 속량물로, 구스와 스바를 너를 대신하여 주었노라)
이 말씀을 통해 하나님은 나를 세워주셨다. 쓰러지신 어머님이 4개월이 지나도 일어나시지 못하셨고 그것이 나때문이었기 때문에 나는 다급해져 어머님이 읽으시던 성경책을 들어 읽으며 어머니를 위해 기도하기 시작했다. 그러면 하나님이 나를 불쌍히 보시고 어머니를 회복시켜 주실 것으로 생각했다. 그렇게 어리석은 마음으로 열심히 성경을 읽었는데, 이사야서 43장의 말씀에 이르러 하나님께서 나를 만나주셨다. 나는 몹시 마음이 뜨거워지는 것을 느꼈고 하나님이 내 구세주이시며 나를 붙들고 계시고 내 기도를 듣고계시는 내 아버지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어머님은 일어나셨고 1년 후에 나는 학교로 복학할 수 있었다.
이민자로서 스페인어는 필수조건으로 배웠고, 어머니를 위해 무엇인가를 하자는 마음으로 영어를 열심히 공부해서 파라과이의 외국인 학교에 입학해서 중고등학교 과정을 마치고 미국 하버드 대학에 원서를 냈다. 재정보증만 되면 합격이 보장된 상황이었으나, 아버지의 사업 실패 (야생동물보호법으로 인해 실패)로 인해 포기해야 했고, 나는 점점 하나님에 대한 원망만이 커졌다. 마음만 상한 것이 아니라 몸까지 아파서 눕고 말았다. 그러던 어느 날 하나님이 또 한번 나를 찾아와 주셨다.
둘째 말씀,
(벧전 1:24~25 그러므로 모든 육체는 풀과 같고 그 모든 영광은 풀의 꽃과 같으니 풀은 마르고 꽃은 떨어지되 오직 주의 말씀은 세세토록 있도다 하였으니 너희에게 전한 복음이 곧 이 말씀이니라)
이 말씀을 듣고 눈물이 나와서 2시간을 울었는데, 이 구절은 바로 내 어린 시절 주일학교에서 외웠던 요절 말씀이었다. 이 세상에서 수고해야 하는 것은 풀처럼 마르고 꽃처럼 시드는 것이었구나.... 몸과 마음이 상하는 이유는 그 허망한 것에 목을 매고 살았기 때문임을 깨달았다. 영원한 것이 있다는 말씀에, '한번 더 기회를 주시면 내가 감당해야 할 일들을 견디며 내 목적과 소망을 영원한 곳에 두고 살아가겠습니다. 한 번 더 기회를 주십시오.'하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나를 회복시켜 주셨다. 좋은 기회를 열어 주셨다. 학비가 없이도 공부할 수 있는 곳, 바로 이스라엘이었다. 목사님이 소개해 주셨다. 그리고 내가 이스라엘에서 공부하는 동안, 우리 가정의 경제 문제(빚)도 해결해 주셨다.
이스라엘에 도착해 보니 실상은 학비가 매우 비싼 곳이었다. 모르고 갔기 때문에 돌아올 돈도 없어서 이스라엘에 묶여 살아야 했다. 그러나 지나고 보니 오직 감사할 일이다.
(이럴 바엔 차라리 파라과이로 돌아가자는 생각이 점점 커졌다. 만약 내가 산 비행기표가 왕복 항공권이기만 했다면, 정말이지 짐을 꾸려 파라과이로 돌아가고 말았을 것이다. 그러나 불행인지 다행인지 당시 내가 구입한 항공권은 편도였다. 집에 전화를 걸어 도움을 구해 볼까 생각해 보기도 했다. 그러나 우리 집의 형편이나 상황은 누구보다 내가 잘 알고 있었다. 마침내 나는 결론을 내렸다. 되돌아갈 길은 없었다. 내게 있는 길은 오직 한 갈래 길이었다.)
세째 말씀,
이스라엘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미국 고든콘웰 신학대학원에 원서를 냈다. 한 달 후에 미국으로 가야 하는 때였는데, 팔레스타인 난민을 가르치는 어느 학교(베들레헴 바이블 칼리지)에서 전화가 와서 한 달만 도와주기로 약속을 하고 갔다. 팔레스타인 난민들은 난민수용소 철장 안에서 태어나고 자라고 살아가야 하는 삶이었다. 나는 전공이 이스라엘 고고학이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땅을 깊이 잘 알고 있었고, 그 바탕에서 그 땅에서의 하나님의 역사와 예수님 이야기를 그들에게 가르치기 시작했다. 한 달 후 미국으로 가야 했지만, 도저히 그 학생들을 두고 떠날 수 없었다.
(사 61:1~2 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
이 말씀에 무릎을 꿇고 하나님께 순종할 수 밖에 없었다. 가난한 자들, 갇힌 자들, 포로된 자들이 바로 내 앞에 있었기 때문에 그들을 두고 떠날 수 없어서 하나님께 순종의 결단을 해야 했다. 신학교로 학교 진학을 포기하는 편지를 보냈다. 그리고 6년간 팔레스타인 사람들을 섬기는 사역을 했다. 그 사역은 힘든 일이었으나 사역을 시작할 때에 아내를 만났고, 아내의 기도와 격려와 헌신에 힘입어 6년간의 사역을 감당할 수 있었다.
원망으로 가득찼던 청년을 베드로전서 말씀으로 헛된 소망을 버리고 하나님께서 예비하신 하늘 유업에 소망을 갖게 하셨고, 이사야서 말씀을 통해 나를 구원하시고 세우심은 나로 순종하게 하려 하심이었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내 삶은 달라지기 시작했고, 내 손의 보잘 것 없는 것 같았던 한 달란트는 불어나기 시작했다. 나를 위한 것이 아니라 이웃의 삶 속에서 한 달란트씩 불어나고 있었다.
다섯 달란트
팔레스타인 사역 6년 후에 하나님께서 내 사역의 지경을 넓히신다는 마음을 갖게 되었을 때, 예전에 내가 포기했던 하버드 대학에서 나를 받아줘서 박사학위를 마쳤다. 그 후 교수 초빙을 받았는데 내가 과거에 진학을 포기했던 고든콘웰 대학신학교였다. 작년(2020년 6월)까지는 학장 보임도 맡았고 지금은 교수로서 가르치는 일에만 전념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나를 고든콘웰로 보내신 이유가 궁금했는데, 일하다 보니 깨닫게 된 것은 영어가 모국어가 아닌 다양한 학생들을 케어하게 하려 하신 것이었다. 현재 미국인의 1/5는 영어가 모국어가 아니다. 내가 스페인어를 잘 할 수 있었기 때문에 히스패닉 신학생들을 그들의 언어로 가르칠 수 있었고, 포르투갈어, 프랑스어 등으로 강의를 확장했고, 코로나19 이후에는 온라인으로 연결되어서 여러 나라 말로 수많은 학생들을 가르치고 있다.
그렇게 가르치는 일에 기쁨이 넘치던 어느날, 남미 온두라스에서 연락이 와서 강의를 하러 갔는데, 소나기가 억수로 쏟아지는 양철 지붕 아래의 열악한 환경이었다. 2년만의 가뭄 끝에 내리는 비여서 그 곳의 목사님들은 기뻐했지만, 가르치러 간 나는 암담했다. 내가 예전과는 달리 하버드 박사, 신학교 교수라는 다섯 달란트를 갖고 돌아갔어도 나 혼자 힘으로는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기도했다. 그후 비가 그쳐 강의를 해나갈 수 있었다. 하나님이 허락하셔야 가능했다.
(다음 날 아침이 되어 계속 쏟아지는 비를 보며 아침 식사를 했다. 방으로 돌아와 강의 준비물을 챙겨 강의장으로 향했다. 오전 8시, 다시 비가 그쳤다. 수강생들과 나는 놀라움을 금할 수 없었다. 그런데 아직 아무도 하나님이 비를 멈춰 주셨나 보다 말을 하는 사람은 없었다. 언제 또 쏟아질지 모른다는 불안감을 떨칠 수 없었던 것이다. 사실 나도 그랬다. 전날 그랬던 것처럼, 다시 우리는 최대한 많은 양의 내용을 다루기로 하고 수업에 임했다. 한 시간이 지나고, 또 한 시간이 흘러 점심때가 되었다. 비는 내리지 않았다. 그러나 여전히 우리는 전날과 마찬가지로 최대한 식사를 마치고 돌아와 바로 오후 수업을 진행했다. 어느덧 종강시간이 되었다. 설마 했는데 아니나 다를까, 4시가 되자 귀청이 떨어질 만큼 요란한 비가 퍼붓기 시작했다. 3일째 오전 8시에 비가 그친 것을 보면서 비로소 나와 학생들은 이 놀라운 현상에 대해 나누기 시작했다. 정말 하나님이 비를 주관하고 계시는 걸까.)
네째 말씀,
(렘 29:7 너희는 내가 사로잡혀 가게 한 그 성읍의 평안을 구하고 그를 위하여 여호와께 기도하라 이는 그 성읍이 평안함으로 너희도 평안할 것임이라)
온두라스 그 곳에서 국제 마약조직의 횡포로 매여 사는 그곳 사람들에 대한 이야기를 들었다. 파라과이 수도로 우리는 나가서 땅밟기 기도를 했다. 우리가 돌아오는 길에 본 신문에서는 우리가 땅밟기 기도하던 그 시간에 그 국제마약조직과 총격적인 벌어져서 그들을 소탕했다는 기사가 나와 있었다. 그 덕분에 수도를 불바다로 만들려던 시도가 무산되었다는 소식이었다. 우리의 땅밟기 기도를 하나님이 응답하셨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돌아와서 월요일에 출근해보니, 60세가 넘어 신학공부를 시작한 브라질 출신의 여성분이 찾아와서 얘기하는데, 지난 주에 강한 성령의 감동이 있어서 일어나 남편과 함께 나와 우리 모임을 위해 기도했다는 것이었다. 내가 아니라 하나님이 하신 일이고, 또 한 달란트를 가진 연로하신 신학생이 한 일이었음을 깨달았다. 내게 불어난 달란트는 내 이웃들이 내게 빌려준 달란트들이었음을 깨달았다. 지금은 내가 다섯 달란트 사역을 하고 있는 것처럼 보일 수도 있으나, 그것은 내것이 아니라 부모님, 스승님, 아내, 주변의 동역자들이 내게 모아주고 있는 달란트들을 가지고 다섯 달란트의 사역을 하고 있다고 대답하고 그렇게 생각한다.
(마 25:21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마 25:23 그 주인이 이르되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네가 적은 일에 충성하였으매 내가 많은 것을 네게 맡기리니 네 주인의 즐거움에 참여할지어다 하고)
다섯 달란트가 많고 한 달란트는 적은 것인가? 모두 적은 것이라고 주님은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우리가 그 작은 일에 충성하였으니 이제 많은 것을 맡기겠다고 하신다. 이 말씀으로 기쁨 가운데 우리를 초청하시는 하나님의 귀한 은총이 여러분들의 삶 가운데 늘 함께 하시기를 축복한다. 이제 아내를 소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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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기도하는 과학자 장현경이다. (건국대학교 화학과 학사 및 석사를 마치고 한국과학기술원 연구원으로 재직한 후 이스라엘 히브리대학교에서 의료 화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국 MIT에서 박사후 과정을 거쳐, 현재는 보스턴에 소재한 제약회사의 책임 연구원, director로서 헌팅턴병과 파킨슨병의 치료제를 개발하는 연구에 매진하고 있다. 가족과 함께 20년 넘게 보스턴 시내의 노숙자를 섬기고 있다.)
나는 성경의 인물 중에서 사도행전 12장의 비천한 여종 로데를 가장 좋아한다. 중보기도를 하면서도 아무도 믿지 않을 때 기도한 대로 믿었던 '로데'의 심정으로 여기에 섰다. 하나님께서 베푸시고 선대하신 은혜를 나누고자 한다. 선교사의 아내, 선교사의 삶을 살게 하신 하나님의 크신 이야기를 나누고자 한다.
나는 예수는 믿지 않지만 심하게 베풀기를 좋아하던 부모님에게서 태어났다. 유학을 보낼 만큼 경제적으로 풍부하지는 않았다. 고등학교 때 친구의 전도로 예수님을 만나게 되었다. 그 후에 어머님도 권사님이 되셨다.
나는 예수님을 영접한 후에, '하나님 한 분 만으로 나는 충분해.'로 살 수 있을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중에 하나님이 나를 아실까?' 하는 두 질문을 갖고 있었다. 하나님은 이 질문에 답을 해주셨다.
먼저, 유럽으로 유학을 갔다가 날씨가 좋지 않아서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갔다가 가나 혼인잔치 자리에 결혼기도를 써냈다. 그리고 8개월 후에 예루살렘에서 남편과 결혼을 했다. 남편은 내가 가나에서 써냈던 '배우자를 위한 기도'에 모두 합당한 사람이었다. 기도 응답이었다.
200불 사건
우리는 결혼했을 때 둘 다 학생이어서 매우 가났했는데 수표가 부도가 나서 기도를 했다. 그런데 경제 문제 해결보다는 선교 쪽으로 기도가 흘러 갔고, 밤새도록 선교를 위해 기도를 했다. 그 다음날 은행에 갔더니 부도가 아니라 경고였을 뿐이었다는 것이었다. 그 다음 날 방문객이 200불을 주셨다. 선교 세미나에 가서 앉았는데, 나도 무척 필요한 돈이었는데, 하나님께서 그 200불은 저 선교사의 것이라고 하시는 말씀이 들려왔다. 갈등 끝에 그 200불을 선교사님께 안겨 주고 집으로 돌아왔다. 다음 날 남편의 지인이 연락을 해서 만나 보니 600불을 주시는 것이었다.
(1995년 8월, 아직 박사과정을 시작하기 전이었는데, 매달 집세와 생활비에 쪼들리던 중 급기야 은행에서 연락이 왔다. 우리가 발행한 수표 다섯 개가 자금이 충분치 않아서 처리되지 못했고, 앞으로는 은행을 이용하지 못하는 블랙리스트 고객이 될 거라는 연락을 받은 것이다. 그때 시간이 은행이 문을 닫는 오후 3시 즈음이었다. 당시는 인터넷 뱅킹 같은 것이 없어서 은행을 가야만 정보를 알 수가 있기 때문에 정확한 상황이나 해결법은 모른 채 발만 동동거렸다. 청천벽력 같은 소리에 남편과 나는 망연자실한 채 서로 바라보았다. 그러다가 이대로 주저앉을 수는 없다는 생각에 기도회를 하기로 결정하고, 저녁 금식을 하며 재정을 위해 기도를 시작했다. 열왕기하 4장 1-7절의 과부의 기름병을 채우신 말씀으로 우리는 우리 가정의 빈 재정 기름병을 채워 주실 것을 목이 터져라 통성으로 기도하였다. 그런데 기도회를 시작한 지 세 시간쯤 지나자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를 세계 선교로 바꾸기 시작하셨다. 남편과 나는 자금이 바닥 난 다섯 장의 수표를 채워 주시고자 기도했는데, 기도는 세계 선교와 선교사들을 위한 기도로 방향이 틀어진 것이다.)
그 후에 공부를 위해 미국으로 와서 남편은 하버드 박사과정에, 나는 MIT 박사후과정에서 연구를 했다. 신문을 읽다가, 미국에 노숙자(homeless)가 있다는 것과 전재산 20불인 우리 가족보다 더 가난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이 놀라웠다. 그들을 섬기는 사역을 통해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깊어졌다.
영주권 이야기.
(어려움이 닥칠 때마다 하나님께 기도로 올려드렸고 말씀으로 세밀한 인도함을 받았다. 미국에서 영주권이 거부되어 큰 어려움이 있었으나 기적적으로 승인을 받게 되는 등 드라마 같은 삶이 이어졌다.)
나는 미국에 와서 하나님에 대한 첫사랑을 잃었다. MIT에서 공부하며 교만해졌다. 그런데 영주권 신청이 거절되었다. 에드워드 케네디에게 100명의 서명을 받아 탄원서를 보냈는데, 그의 답신을 받은 후에는 하나님보다 에드워드 케네디를 의지했다. 그런데 한 달 후에 그가 뇌암에 걸렸다는 기사를 봤다. 사람을 의지하지 말고 하나님만 붙들기 위해, 휴가를 내고 성경을 읽으며 내 잘못을 회개하고 하나님의 메시지를 찾았다. 말씀에 새로운 감동을 받았다. 시편을 읽으면서 다윗의 삶에 매료되고 위로가 되었다.
(사 43:19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이 말씀이 가슴에 와 닿았다. 6일간 8시간씩 성경을 1회 통독했다. 그러자 영주권 거절이 문제가 아니라, 내 안의 예수님의 부재가 고난임을 깨달았다.
(단 3:18 그렇게 하지 아니하실지라도 왕이여 우리가 왕의 신들을 섬기지도 아니하고 왕이 세우신 금 신상에게 절하지도 아니할 줄을 아옵소서) 이 말씀으로 영주권 걱정이 사라지고 새 힘을 얻었다. 우리의 정체성은 이땅이 아니라 천국임을 각인시켜 주셨다. '탁월한 과학자'에게 주는 비자를 준비하면서 노숙자 아웃리치를 재개했다. 그리고 주님이 책임져 주시기를 기도했다. 섬기는 중에 노숙자와 함께 기도하기도 했는데, 그의 기도제목은 영주권을 위한 것이었다. 너무나 공감할 수 있어서 함께 울며 기도했다.
영주권을 얻기 위해 캐나다로 가서 미 대사관에서 어렵게 받았는데 결국은 친구의 중보기도 덕분인 것을 알게 되었다.
(세 달 후에 이민국으로부터 영주권 승인 거절 소식이 왔다. 청천벽력 같은 소식에 말문이 막히고, 머릿속이 하얘졌다. 그러나 내 영의 한편에서는 예견된 결과라는 말이 들려왔다. 영주권이 승인될 줄 알고 다른 비자를 준비하지 않았기에 체류비자를 다시 신청해야 했다. 변호사는 연방이민국에 항소를 해서 시간을 벌자고 제안하였다. 그 당시 재직하고 있던 회사 인사과에 알아보았더니, 나의 경우에는 H비자를 다 소진하여 사용했기에, O비자를 신청해야 한다고 했다. O비자는 아웃스탠딩 비자라 하여 뛰어난 역량을 가진 사람에게 주어지는 것이었기 때문에 다수의 추천서가 있어야 했다. 그 당시 나와 남편의 관계는 많이 틀어져 있었다. 더욱 더 영적 연합이 필요한 이때에 나는 남편을 원망하며 신세를 한탄했다. 주위 동료들은 너무도 쉽게 영주권을 받고 풍족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나만 힘든 길을 가는 것 같았다. 그런 생각들은 나를 흔들어 놓았다. 내 교만함이 나를 더욱 절망으로 빠뜨렸다.)
말씀이 여러분 안에서 일하게 하라. 좋으신 하나님께 여러분을 내어드리라. 고난 중에 감사하고 눈물로 기도하라.
하나님은 내 두 가지 기도를 들어 주셨다. 기도한 것은 받은 줄로 믿고 확신하라. 하나님이 기쁨으로 받으시고 하나님의 연합체 팀원으로 받아주실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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