교회 임직자 스쿨의 한 과정으로서 이단에 대한 이해와 대응을 위한 강의를 바른미디어 발행인 조 믿음 목사님께 들었습니다.
이 분은 이단 문제뿐만 아닐 '중독'에 대해서도 강의와 저술을 통해 사역하고 계십니다. 먼저 '중독'에 대한 내용을 강의와 인터넷에서 정리합니다.
중독
중독의 종류도 다양하다. 스포츠가 사람을 잡는 도박 중독, 서울대로 가게 할 것 같은 에너지 음료 중독, 가상의 현실에서 살게 하는 게임 중독, 호기심으로 시작하는 흡연 중독, 더 할수록 더 빠지는 자위 중독, 상상의 날개로 시작되는 망상 중독, 서로 다른 시공간에 살게 하는 스마트폰 중독, 위로를 받으려다가 의존하게 되는 술 중독, 살기 위해 나를 찌르는 자해 중독, 영혼을 아프게 하는 종교 중독 등... 특히 종교도 그것이 사이비 종교로 흐르면 영혼을 병들게 한다.
처음부터 술을 마시면서 중독에 빠지려고 하는 사람은 없어요. 처음부터 스마트폰을 많이 해서 중독에 빠지려고 하지는 않아요. 게임을 계속하면서 성적을 떨어뜨리고, 대인관계를 망치고, 부모와 단절하려는 청소년들은 없어요. 좀 더 행복해지려고 하다가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중독에 빠지는 거예요. 청소년들은 친구들과 소통하고 대화에 끼기 위해서 게임도 해보고, 편의점에서 에너지 드링크도 사서 마셔요. 행복하고 즐겁고 재미난 인생을 살고 싶지만 잘 안 될 때 술을 마시고, 담배를 피우고, 게임을 하면서 자신의 불행한 현실을 벗어나려고 해요. 술 한 병으로 모든 괴로움을 잊으려 하고, 좋아하는 게임을 하며 흥분하고, 스마트폰으로 도박을 하면서 순간적 쾌락을 맛보는 거예요. 하지만 그러한 선택은 청소년들을 점점 중독의 길로 이끌어요.
처음에는 누구나 본인이 원하면 곧바로 멈출 수 있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시작한다. 브레이크가 고장 난 것을 알고 있으면서 자동차의 액셀러레이터를 급히 밟을 사람이 있겠는가?
중독 증상에서 벗어나기 위해서는 습관의 변화가 필요해요. “처음에는 내가 습관을 만들지만, 나중에는 첩첩하게 습관이 나를 만든다”라는 영국의 시인 존 드라이든의 말처럼, 오늘의 나는 과거의 습관들이 쌓여 만든 작품이에요. 그렇기에 나를 바꾸기 위해서는 과거의 습관을 버리고 새로운 습관을 만들려는 노력이 필요해요.
청소년들의 결핍은 다양한 이유로 생겨요. 부모님에게서, 친구에게서, 혹은 자신의 외모로부터 오기도 하지요. 하지만 그 결핍은 어떤 것을 집어넣어도 채워지지 않아요. 우리는 오직 우리를 잘 아시는 예수님과 함께해야 해요. 결국 그 만남이 우리의 결핍을 채워 주는 유일한 관계가 될 거예요.
음란물을 계속 보면, 일상생활 가운데서도 계속 그 음란물의 잔상이 뇌에서 떠나지 않아요. 길거리에서 보는 이성을 성적 흥분의 대상으로 여겨요. 음란물 속 대상이 아닌데도 음란하게 생각하고, 벗고 있는 모습이나 성관계를 하는 장면을 상상해요. 이것이 음란물 중독이에요. 음란물을 통해 자위 중독에 빠지면 이성을 잠재적인 성 파트너로 봐요. 하나님이 지으신 아름다운 지체로 보지 않고 자신의 쾌락의 도구로 전락시키며, 전인적인 관계를 맺지 못해요.
술을 마시고, 줄담배를 피우고, 스마트폰을 하루 종일 만지작거리는 사람은 가시적으로 증상이 나타나기에 바로 치료가 필요하다고 생각해요. 그러나 망상을 하는 사람은 대개 잘 파악되지 않고 드러나지 않아요. 이런 이유로 망상 중독에 빠진 사람들을 주위에서 찾아보기 어렵고 그리 큰 문제로 인지하지 못해요.
“너희는 스마트폰에 중독되었다고 생각하니?”라는 질문에 거의 모든 청소년은 “네!”라고 자신 있게 이야기해요. 대부분의 중독은 상담 용어로 ‘병식’이 없다고 해요. 자신이 중독되었음을 부정하는 것이죠. 그런데 흥미롭게도 스마트폰 중독은 ‘병식’이 뚜렷해요. 자신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었다는 것을 알고 있다는 것이죠. 자신이 중독되었음을 깨닫는 것이 중독에서 벗어나는 첫걸음인데, 청소년들은 자신들이 스마트폰에 중독되었음을 알면서도 벗어나지 못하고 있어요. 스마트폰이 얼마나 위험한 것인지 여전히 인지하지 못하는 이유예요.
많은 사람이 청소년들의 자해 행위에 대해 관심을 받고 싶어서 하는 것으로 오해를 해요. 하지만 조사 결과 단순히 관심을 받고 싶어서 자해를 하는 청소년은 전체의 4%밖에 되지 않았어요. 청소년이 자해를 하는 이유는 대부분 죽고 싶어서가 아니라 살고 싶어서였어요.
예수님은 우리의 아픔과 고통, 죄 때문에 고난을 당하셨어요. 그리고 십자가에 달려 모든 피를 쏟으시고 죽으셨죠. 그 피는 우리를 사랑하셔서 흘리신 피, 우리의 아픔과 상처를 치료하는 유일한 치료제예요.
이단
바른 신앙을 갖기 어렵게 하는 환경적 요인도 있다. 이단과 사이비들의 유혹이 있다. 초대교회에도 거짓 선지자들에 대한 경계가 필요했고, ‘분별’이 필요함을 얘기했다.
1)이단은 진리를 왜곡시킨다. 교회를 혼란스럽게 하고 신앙고백의 통일성을 깨뜨린다.
2) 밀착형… 기업체, 교육기관, 미디어 장악, 각종 위장 행사, 이단 모태신앙, 한국 이단의 해외진출 등으로 우리에게 이미 영향을 주고 있다. (반증교육 - 이런 도전/질문이 있으면 이렇게 답하라….로 중무장한 이단 모태신앙들이 많다. 우리는 자녀들을 위한 준비가 되어 있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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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기 : 경각심이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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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핍 : 사랑하고 계십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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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경 : 무엇을 믿습니까?
내가 믿고 고백하는 것이 무엇인지… 히 5:14 그들은 거듭된 연습을 통해서 좋은 것과 나쁜 것을 구별할 정도로 훈련된 감각을 가지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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